[스페셜 인터뷰] “건설 법안 통과, 예산 확대 통해 건설업계 숨통 틔워 줘야 합니다”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

약학을 공부하던 한 젊은이는 아버지의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가족을 돕기 위해 학업까지 중도 포기하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부친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친척 형의 건설 회사에서 2년간 현장 소장으로 근무하다가 1971년 건설 회사 ‘동지’를 인수하며 독자적으로 건설업을 시작, ‘이화공영’으로 간판을 바꾼 후 건실한 업체로 키워 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국의 ‘벌판’을 일터 삼아 우직하게 현장을 지켜 온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 업계의 거목, 바로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이다.



지난 10월 8일 강남구 논현동 대한건설협회에서 만난 최 회장의 표정과 말투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묻어났다. 회장직과 동시에 이화공영의 대표로 여전히 건설 업계에 몸담으면서도 대기업에서부터 영세업체에 이르기까지 7000여 회원사들의 살림살이를 챙기느라 여유가 없기도 했다.

10월 정기국회 기간을 맞아 최 회장의 일정은 더욱 바빠졌다. 고사 직전의 건설 업체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쪼그라든 2014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확대하고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주택 시장 정상화 법안들이 하루빨리 처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상반기 국내 상장 건설사의 절반 가까이가 벌어들인 돈으로 은행 이자를 갚기에도 빠듯한 실정이고 올해 1건도 수주하지 못한 업체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건설 업계는 200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했다.


반세기 동안 건설 업계에 몸담아 왔다. 회장에게 ‘건설업’은 어떤 의미인가.
부친을 시작으로 나를 거쳐 내 두 아들도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건설업에 뛰어든 후 50년간 공공토목·학교·환경 등 공공 시설을 비롯해 공장·빌딩 등의 업무·연구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건설 산업과 맥을 같이해 오며 시공 경험을 축적해 왔다. 최근에는 최첨단 제약 시설 시공에 이르기까지 기술력을 키우며 후회 없이 열정을 쏟았다. 사실 갑자기 건설업에 몸담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가며 건설 회사를 이끌어 온 데다, 건설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회장으로서의 책임까지 맡고 있는 것을 보면 건설은 내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느끼고 있다.


건설협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업계의 숙원이랄 수 있는 ‘최저가 낙찰제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들었다.
회장에 부임한 후 ‘제값을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시설물의 품질 저하, 산재 증가 등 각종 문제점을 발생시켜 온 공공 공사의 최저가 낙찰제 폐지에 가장 역점을 뒀다. 최저가 낙찰제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지역 건설 경기 회복을 위한 최저가 낙찰제 확대 철회 촉구 결의안’을 국회의원 202인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11년 정부가 최저가제 대상 공사 규모를 300억 원에서 100억 원 이상으로 확대해 추진하려고 했던 것을 2년간 유예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새 정부의 대선 공약 및 국정 과제에 ‘최저가 낙찰제 폐지’를 반영시켰고 마침내 정부는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최저가 낙찰제 폐지 방침을 보고하고 현재 대체 방식으로 선진국형 종합 심사 낙찰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발주 기관들이 공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추가로 들어가는 간접비를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아 건설사들을 힘들게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난 8월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이 선제적으로 공기 연장 간접비를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기획재정부도 국토부의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그간 간접비 반영을 어렵게 했던 관련 규정인 ‘총사업비 관리 지침’을 개선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소업체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일부 발주 기관이 예산 절감 등의 이유로 표준 품셈을 삭감해 예정 가격을 산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건설사로서는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되다 보니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지곤 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정부가 지난 6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위한 부당 단가 근절 대책’에 예정 가격을 산정할 때 표준 품셈의 삭감 금지를 의무화하는 것이 반영됐다. 한국전력공사는 공사비 삭감수단으로 이용되던 ‘설계 조정률’ 제도를 지난 7월 폐지했고 조달청도 지난 5월 공사 금액의 삭감 조정 내용을 나라장터에 공개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국회에서도 발주 기관이 공사비를 부당 삭감할 때 업체가 이의신청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올해 정기국회의 회기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도급 하한제를 개선해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소규모 공공 공사의 범위를 확대하고 2012년에 정부의 적격 심사 낙찰 하한율 폐지 방침을 유보해 연간 2300억 원의 중소 규모 시장의 공사비가 삭감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지자체 100억 원 이하 공사에 관할 시·도에 있는 지방 업체들만 입찰이 가능하도록 해 온 규정을 한시 규정에서 영구 적용 규정으로 개선했다. 또한 조달청의 등급 제한 공사에서 해당 등급 내의 업체가 대형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지역 업체끼리 단독으로도 입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바꿨다. 특히 내년부터 300억 원 이상의 공공 공사에 시범 사업을 거쳐 도입할 예정인 ‘종합 심사 낙찰제’ 평가 항목에 지역·중소 건설 업체 참여 여부를 반영해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 건설 업계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4·1 부동산 대책 이후 건설 경기에도 실질적 영향이 있나.
건설 경기가 오랜 시간 침체된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4·1 대책이나 최근의 8·28 전월세 대책 등은 건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장에 확신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나 분양가 상한제 운용 개선 등 4·1 대책에서 언급된 사안의 대부분이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건설이나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이 국회의 벽을 번번이 넘지 못했고 이번 대책마저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태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사이에 이미 250만 명의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가 양산되고 있고 건설업을 비롯해 인테리어·부동산중개업 등 직간접 종사자 1000만 명의 생활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지역 경제와 서민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해당 법안들이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내년 SOC 예산은 23조2621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 원 정도 줄었다. 건설 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복지와 일자리 예산은 크게 늘어난 반면 SOC 분야는 축소됐다. SOC를 줄여 복지에 투입하는 것은 매우 단기적인 정책이라고 본다. 복지라는 게 노년층에게 돈을 주고 어린이집을 많이 짓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보다 생활 밀착형 SOC를 늘려야 한다. 교통 정체가 심한 곳에 도로를 넓히고 상습적으로 홍수 피해를 보는 지역에 상하수도 시설을 보수하고 방제 시설을 짓는 등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정책을 시행하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이고 중·장기적으로 복지 혜택을 재생산할 수 있으니 한편으로는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복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에서는 당장의 인기를 얻기 위해 단기적인 정책에 집착하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어 안타깝다. 내수 경기를 회복시키고 생산적인 복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SOC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현행법 가운데 건설 업계의 활동을 위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 잘못을 해도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현재 건설 업체는 한 건의 위법행위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국가·지방계약법,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등 여러 법률에 따라 각각 제재를 받고 있다. 일단 행정형벌 외에도 과징금을 부과 받고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되고 입찰 참가 자격 사전 심사(PQ)에서도 감점을 받는 등 그야말로 ‘다중 처벌’을 받는다.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제재는 건설 업체의 영업 활동에 큰 제약이 된다. 신규 수주를 딸 수 없게 되니 기업을 운영하는 데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중 제재를 받아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 하도급·자재·장비 업체 등의 협력업체와 소속 건설 근로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연관 업계 전체가 생존의 기로에 놓인다. 게다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때도 많다. 잘못한 행위를 한 ‘사람’을 벌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영업마저 못하게 해서 기업의 활동을 막아선 안 된다고 본다. 동일 사안에 대한 행정처분은 처분 주체와 시기를 일원화할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건설 분야의 경제 민주화와 불공정한 ‘갑을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건설업은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제조업과 다른 큰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제조업에서는 대기업이 ‘갑’이고 하청을 받는 기업이 ‘을’이 될 때가 많은데 수주 산업인 건설업은 원도급자보다 일을 주는 발주자가 ‘슈퍼갑’의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발주자가 ‘슈퍼갑’으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공사의 원가를 부당하게 줄이기도 하고 공기 연장에 대해 추가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등 ‘을’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갑을 관계를 원하도급자로 국한해 원도급자에만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다 보니 발주자나 하도급자의 불공정 행위가 발생해도 규제에 묶인 원도급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만약 A 건설사가 발주자에게 돈을 지급 받아 하도급자에게 전달했는데, 하도급자가 현장 근로자 등에게 줘야 할 임금을 주지 않고 도망가게 되면 A 건설사가 온갖 비난을 듣고 돈을 물어줘야 하는 사례 등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갑을 관계는 건설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슈퍼갑’인 발주자를 포함한 원하도급자, 2차 협력사, 건설 근로자 등 거래의 모든 단계별로 종합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현 정부의 국정 기조인 창조 경제의 시대에 건설 업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수의 전문가들이 창조 경제에 부합하는 산업으로 정보기술(IT)·건축 등을 꼽고 있고 유엔에서도 건축을 창조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건축이나 건설은 환경·IT·생명공학(BT)·에너지·문화 등 모든 영역과 유기적으로 융합될 수 있는 유일한 산업이다. 하지만 창조 경제를 기조로 내건 이번 정부에서 건설은 오히려 소외받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보다 IT 쪽에 무게 추를 두는 듯하다. 알다시피 세계적인 관광지의 건축물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프랑스에 여행을 가면 반드시 에펠탑을 보고 이집트에 가면 스핑크스를 꼭 본다. 우리나라도 경복궁·불국사 등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창조적 건축물이 많다. 하지만 불합리한 규제, 최저가 낙찰제 등의 폐해로 독창적인 건축물과 건축 문화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어려운 여건이 조성됐다. 건설 산업이 창조 경제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업 내에서부터 각종 분리 발주 등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규제를 혁신하고 가격 경쟁보다 품질 경쟁 위주의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국내 건설 업계의 해외 진출 현황은 어떠한가.
최근 국내의 건설 경기가 어려워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이 정말 많아졌다. 심지어 하도급 업체마저도 해외 진출을 꾀할 정도다. 지난해 해외 누적 수주액은 5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에도 700억 달러어치의 수주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 대한 정보나 경험도 부족하고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업체가 많지 않고 국내 기업끼리의 경쟁도 심화돼 수익성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사실 작은 규모의 업체들은 해외에서 공사를 한 건만 실패해도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보 제공의 체계를 구축해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에 정말 필요한 내용을 알려줘야 하고 금융이나 보증 지원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학교를 지어 주는 원조 사업을 진행한다면 국내 업체에 기회를 줘 해외 공사에 대한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4·1 대책에서 언급된 사안의 대부분이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고사 직전의 건설업계를 살리려면 주택 시장 정상화 법안들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앞으로 건설 업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건설 시장이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부단하게 기술을 개발하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으로 재편해 자생력을 키우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IT·BT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건설 산업이 이런 분야와 연계해융·복합화 산업으로 바꾸는 식으로 틈새시장을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스마트 SOC, 제안형 민·관 복합 개발, IT·BT·문화와 결합된 새로운 건설 수요 창출 등 새로운 건설 일감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설맨으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
오래도록 건설업과 동행해 온 삶이지만 건설은 할수록 정말 어렵다. 스스로의 지식이 필요하고 엄청난 인내력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일을 일로 생각하지 말고 푹 빠져서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어려움을 참으면 빛을 볼 것이다. 나는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좌우명으로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조용히 한걸음씩 걷다 보니 이 정도밖에 오지 못했다.(웃음) 하지만 잔꾀를 부리지 않고 살아온 삶이 내게 큰 재산이 됐다고 믿는다.


대담 김상헌 편집장┃정리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