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내 첫 ‘사위 총수’… 딸들도 경영 가세

동양 오너 일가는 누구?

동양가(家)의 내력을 들여다보자. 국내 재벌가에서 처음으로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곳이 바로 동양그룹이다. 동양의 첫 ‘사위 총수’는 이번 동양 사태의 핵심 인물인 현재현(64) 동양그룹 회장이다. 그의 아내는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맏딸 이혜경(61) 동양그룹 부회장이다. 이 창업주는 교사 출신인 아내 이관희(84) 여사(현 서남재단 이사장)와의 사이에서 딸만 둘을 낳았다. 둘째 이화경(57) 오리온그룹 부회장은 화교 3세인 담철곤(58) 오리온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동양그룹의 ‘사위 경영’은 1989년 이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본격화됐다. 창업주의 뜻대로 맏사위인 현 회장은 동양그룹을,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승계했다. 현재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에서 빠져나온 것은 현 회장과 담 회장이 각각 독자적으로 경영해 오다 2001년 9월 계열 분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위 경영 1989년 본격화
현 회장은 경영인 출신이 아니었다. 이화여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한 혜경 씨와 1976년 결혼할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이었다. 현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을 나왔다. 대학교 3학년 때 12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촉망받는 법조인이었다. 이후 해군 법무관을 마치고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에 결혼하며 재계에 입성했다. 현 회장은 이 창업주로부터 철저한 경영 수업을 받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하기도 했다.

이후 현 회장은 199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1983년 1월 동양시멘트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현 회장은 34세에 불과했다. 이후 19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19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당시 국내 재벌가에서는 처음 사위가 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아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현 회장의 집안 역시 이 창업주의 집안 못지않은 명망가였다. 이 창업주의 집안이 부를 가졌다면 현 회장의 집안은 학식과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할아버지,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 교수가 그의 아버지다. 현 회장의 4형제 역시 모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 회장 내외는 슬하에 정담(36·여), 승담(33·남), 경담(31·여), 행담(26·여) 등 1남 3녀를 두고 있다. 네 명의 자녀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해 현 회장과 동문이다. 장녀인 현정담 (주)동양 상무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2006년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해 현재 (주)동양 가전사업부문 마케팅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현승담 동양시멘트 상무보는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역시 MBA를 졸업했다. 현재 동양네트웍스 IT부문 동양온라인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정담 씨와 승담 씨는 동양그룹 후계 승계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다. 차녀 현경담 (주)동양 부장은 같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동양온라인에 입사, 현재 (주)동양 패션부문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담 회장도 동양가 사위 경영의 한 축이다. 담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은 오랜 연애 끝에 1980년 부부의 연을 맺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담경선(28) 씨는 미국 뉴욕대를 졸업했으며 담서원(24) 씨는 군 복무 중이다. 2001년 9월 계열 분리할 당시 동양그룹은 자산 규모 4조1000억 원대, 오리온그룹은 1조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식품과 미디어 부문에서 탄탄한 사업을 이끌어 온 오리온은 자금난에 허덕여 온 동양에 견줘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다. 오리온은 승승장구한 반면 동양은 심각한 자금 위기에 몰리면서 자매의 처지가 역전됐다.

동양 일가는 자매 회사, 사위 경영으로 늘 서로가 서로의 비교 대상이다. 이혜경·화경 자매는 닮은 듯 닮지 않은 행보를 걷고 있다. 이혜경 부회장은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화경 부회장은 동양제과 인턴 사원으로 입사해 경영 능력을 키워 왔다. 한마디로 여장부 스타일이다. 재계에서는 “이화경 부회장이 창업주를 빼닮았다”고 말한다.



사위들도 다르긴 마찬가지다. 현 회장이 정적인 스타일이라면 담 회장은 동적인 경영인으로 분류된다. 현 회장은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동양과 오리온 두 집안을 잘 아는 재계의 한 인사는 “담 회장이 이 부회장과 결혼할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며 “현 회장과 담 회장의 스타일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두 집안 관계가 썩 나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서로 엇갈린 형제 그룹의 운명
그런데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현 회장은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현 회장의 경영 체계는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현 회장의 경영 능력, 도덕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그룹 정상화 기회를 여러 차례 놓친 경영 능력 부재에다 특혜 대출 의혹, 기업어음(CP)·회사채 개인 투자자 피해 등 도덕적 해이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 회장이 동양그룹의 최고경영자로 데뷔한 지 30년 만에 최대 위기다.

먼저 현 회장의 일가가 지난해부터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 지분을 사들인 점이 의문이다. 최근 1년여 동안 현 회장 일가는 동양네트웍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왔다. 현 회장의 장남 승담 씨는 지난해 5월 한 달에만 10여 차례에 걸쳐 동양네트웍스 지분을 매집했다. 1년여 전만 해도 단 한 주도 없던 그는 현재 92만6340만 주를 확보했다. 개인 주주 기준으로 현 회장과 어머니 이혜경 부회장에 이어 3대 주주가 됐다. 이후 승담 씨는 6월 이 회사의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차기 승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동양그룹 일가에서 동양네트웍스로 힘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현 회장의 장모인 이관희 이사장의 사재 출연도 의아했다. 자금 압박을 받는 (주)동양이나 동양레저가 아닌 동양네트웍스에 이 이사장 소유의 1500억 원 상당의 오리온 주식을 무상 증여했다. 또 현 회장은 장모가 빌려준 주식으로 현금을 만들어 부동산을 매입했다. 1년 가까이 팔리지 않았던 경기 안성의 웨스트파인 골프장을 동양레저에 800억 원을 주고 사들였다. 이 이사장이 아끼는 부동산으로 알려진 종로구 가회동 한옥도 160억 원을 주고 샀다. 그룹은 해체 위기에 놓였는데, 경영 정상화에 매진하기보다 부동산 매입 등 마치 제 몫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10월 3일 현 회장이 현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경영권 유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 이번 사태가 예고된 당일 이미 막지 못한 이번 사태에 추가적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긴급히 법원에 모든 결정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가족의 모든 경영권 포기가 자동으로 수반돼 있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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