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얻고자 한다면 씨를 뿌려라

이상진 중소기업진흥공단 교수

아버지는 천생 농부셨다. 밭을 일구는 것에 행복하셨고 그 누구보다 잘하셨다. 그 시대의 우리 어르신들이 그러했듯이 집안이 매우 가난해 한 평의 밭이나 논이 없었기에 그 좋아하시던 고향을 떠나 내 동생을 둘러업고 이부자리 하나 없이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셨다.




얻고자 한다면 노력해야 하고 일은 우선순위를 정해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 잘 처리된다는 것을 농사를 통해 배운다.


농작물을 일구겠다는 농부로서의 목표를 자녀를 키우고 일구겠다는 목표로 바꿔 도시의 건설 노동자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지만 항상 틈만 나면 주변 자투리 땅을 활용해 농사를 짓고 신선한 과실을 늘 자녀들에게 안겨주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장난감이 더 좋았고 오락실에 더 가고 싶었기에 아버지의 소중한 교훈과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후 난 행운으로 텃밭을 일굴 수 있는 환경(중소기업연수원)에서 직장을 다니게 됐다. 주변이 다 산이라 아이들이 자연과 어울려 놀기엔 무척 좋은 환경이지만 친구도 없고 주변에 편의점도 30분 이상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라 너무 적적한 나머지 아내는 텃밭을 일구자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농사를 싫어했던 나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의 몸을 핑계 삼아 하지 말자고 했지만 아내는 달랐다. 큰아이와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인적이 드문 외딴곳에 이사 왔기에 적적한 시간을 텃밭에서 운동 삼아 아이와 함께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결국 방울토마토만 심기로 하고 시작한 우리네 농사는 다섯 살 몸집만한 밭이 늘어나기 시작해 165㎡(50평) 정도의 규모로까지 늘어났다.

서울에서만 자란 아내는 농사란 것을 아예 모르는 사람임에도 시아버지를 믿고 점점 밭을 키워 갔다.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가 텃밭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우렁 각시처럼 알게 모르게 도와 주셨다. 그렇게 아내는 5년을 배웠다. 이제는 삽자루와 호미만 손에 쥐어 주면 잡초 제거, 고랑, 비닐 멀칭을 척척 해낸다. 열 살짜리 아들과 여섯 살짜리 딸아이도 자기 몸보다 큰 텃밭을 스스로 관리한다.

올해 큰아이는 상추·고추·참외·수박을 선택했고 작은아이는 오이·방울토마토·큰토마토를 심었다. 아이들은 주먹 만한 모종부터 시작했던 게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토마토와 오이를 보며 키 재기를 한다. 더운 여름날 작은아이가 키워 온 오이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시원하게 나눠 먹을 때도 있었고 키워 왔던 오이 잎이 노랗게 변해 버린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워 오이 덩굴 앞에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한다. 텃밭에 물을 주며 새들이 토마토와 참외를 쪼아 먹을까 걱정하지만 새들은 맛있는 것을 잘 알아보기에 쪼아 먹힌 것들이 분명 더 맛난 것이라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농사의 진정한 의미를 40대에 와서야 다시금 되새기면서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때(time)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가을에 많은 과실을 얻으려면 봄에 씨앗을 뿌려야 함을, 귀찮다는 이유로 물을 줄 때와 밭을 일굴 때를 놓치면 수많은 잡초들로 열매가 제대로 맺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얻고자 한다면 노력해야 하고 일은 우선순위를 정해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 잘 처리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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