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일본] 4050 싱글 증가…근본 원인은 ‘빈곤’

열도에 넘쳐나는 중년 독신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과거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수명 연장 덕분이다. 장수 트렌드는 다양한 변화를 야기했다.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서 경제활동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반면 금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배금주의는 더 세졌다. 돈 없는 노후의 구체화된 절대 공포다. 현대 일본의 병리 원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축 성장은 돈 벌 여력을 떨어뜨린다. 사회 안전망이라도 탄탄하면 좋겠지만 실상은 각자도생의 복지 충당이 엄연한 현실이다.

시대 변화에 맞서려는 자생 노력은 그래서 눈물겹지만 합리적이다. 가족 재구성이 대표적이다. 장수 시대의 가족 재구성은 원심력과 구심력의 정반합에서 진행된다. 단절·분화·해체의 원심력에 반발한 새로운 융합·조합·결집의 구심력이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원심력이 세다. 그 파워에 주눅 든 가족 재구성의 구심력은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여전한 독신 가구 증가세가 그 증거다. 고립·파편화된 싱글의 독주다. 생애 주기를 완성했던 연애·결혼·출산·분가의 전통 패턴이 줄고 평생 홀로인 1인 가구가 유력 모델이 됐다.



성별 역할 변화도 싱글 부추겨
옅어진 성징(性徵) 추세도 한몫했다. 여성의 남성화와 남성의 여성화다. 중성화는 그 절정이다. 본능 유지에는 그에 걸맞은 돈이 필요하니 아예 성징을 포기하려는 선택이다. 그래서 저성장과 맞물린 장수 사회의 싱글족 확산은 피하기 힘든 대세 현상 중 하나다. 이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이다. 결혼을 미루다가 포기하는 싱글 가구의 증가가 그렇다. 흔해진 이혼 때문에 중년 이상의 싱글 생활자도 의외로 많다.

일본은 이미 늙어버렸다. 4명 중 1명이 노인(65세↑)이다. 약 3000만 명(23.4%)에 이른다. 저성장과 맞물린 인구 변화는 라이프스타일에 직격탄을 날린다. ‘취업→연애→결혼→출산’으로 진행되는 행복 보장의 컨베이어적인 생애 주기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대신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추세가 일상화됐다. 즉 가족 빈틈의 확대다.

단독·독신·독거 등 1인족 싱글 인구가 그 결과다. 이에 따라 싱글 인구는 표준 모델로까지 거론된다. 전체 가구(5093만 호) 중 단독 가구(31.2%)가 1589만 호로 가장 많다(국세 조사, 2010년). 1980년 19.8%에서 이번에 30%를 넘겼다. 반면 4인 가구는 같은 기간 42.1%에서 14.9%로 줄었다. 싱글은 연령·지역 불문 확산 추세다.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뿐만 아니라 4050세대의 중년은 물론 사별(이혼)이 많은 고령 인구조차 일반적이다. 특이한 건 4050세대의 싱글 증가다. 평생을 단독 가구로 살아갈 확률이 높은 후보 그룹의 탄생이다. 고독사의 무연사회를 부추긴다며 우려 시각이 많은 이유다.

일각에선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비자발적 독신 방치에서 자발적 싱글 선택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결과다. 가치중립적인 입장 선회다. 싱글 배경은 다양하다. 고령화 진전과 가치관 변화 등 수없이 많다. 다만 근본 원인은 하나다. 빈곤화다. 가난이야말로 짝을 찾는 연애·결혼 작업의 최대 장벽이다. 돈 없는 청년 양산이 전체 생애의 싱글 추세로 정착된다.

독신 사회는 무연 사회의 직전 단계다. 취업 빙하기로 거론되는 청년 그룹의 최초 취직부터 중년 이상의 상시적 구조조정에 따른 정규직 탈락 세태까지 복합적인 빈곤 함정이 원인이다. 빈곤 심화가 촉발한 인간관계의 사막화다. 결혼 무용론의 인식 변화도 있다. 기존제도에 얽매이기보다 자유롭고 간편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 결과다. 남녀의 성별 역할 변화도 싱글을 부추긴다. 맞벌이의 불가피성과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기본 배경으로 거론된다.

은퇴 임박의 중년 그룹이 싱글 생활에 안주(?)하는 최대 이유는 청년 시절부터의 타성과 강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결혼은 가족 구성을 위한 최초이자 최대 행사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중년까지 홀로 살 확률이 높다. 문제는 낮아진 통과 확률이다. 결혼은 악화된 고용 환경 때문에 소득수준이 열악해진 2030세대에게 심각한 두통거리다. 돈이 없으니 자신감마저 사라지고 그래서 연애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청년 그룹이 적지 않다. 처음엔 미루지만 나중엔 포기다.


‘고남’,‘독남’ 등 자조적 유행어 인기
실제 통계 추세를 보자. 현재 1500만 독신 가구의 주역은 2030세대다. 싱글 가구의 30%에 달한다. 이들은 생애 미혼율(45~55세의 미혼비율)의 평균치를 벌써 급격히 끌어올렸다. 2010년 남녀 각각 20%와 11%로 20년 전(1990년)의 각각 6%와 4%보다 2~3배 늘었다. 남성은 30년간 10배 증가했다. 즉 35세 남자는 2명 중 1명이 미혼이다.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2030년 남녀 각각 29%, 22%로 가히 우려스럽다. 절망적인 결혼 확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통계를 종합하면 무려 90%의 청년이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에서 현실은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차별적인 것은 성별에 따른 경제력이다. 남자는 돈이 없어, 여자는 돈이 있어도 결혼을 포기한다는 극단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청년 세대의 독신 생활이 성별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의미다. 남자는 대졸 초임이 평균 20만 엔 정도에 불과해 비정규직이면 연애조차 사치에 가깝다. 그러니 풀만 먹는다는 온순한 성격의 ‘초식남’이 싱글 청년의 60~80%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청춘 여성은 되레 지갑 사정이 좋아졌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좋아지면서 20대 성별 소득은 2010년을 계기로 여성이 남성을 능가했다. 애인·결혼 상대로 동년배의 배고픈 청년보다 안정적이고 포용적인 중년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다. 이들이 배우자를 정하기 위한 결혼 조건은 까다롭다. 배우자감의 기대 연봉은 600만 엔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타협 최저 라인조차 300만 엔이 평균적이다. 동년배 청년 중 이를 통과하는 이는 별로 없다. 은퇴 직전의 4050세대의 싱글 추세도 그 관건은 경제력이다. 40대부터 싱글 생활은 만족보다 불안이 지배적인 키워드로 등장한다. 직장 커리어를 둘러싼 위기와 기회의 공존 타이밍과 겹쳐 갈등과 번민은 한층 깊어진다. 물론 자녀·가정 문제 등 기혼 세대 특유의 고민거리는 없을지 모르지만 평생 혼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독·소외 공포는 절대적으로 심화된다. 무연 사회의 희생자인 ‘고독사’ 예비군으로서 구체화되는 현실 압박이다.

주요 언론은 일찌감치 독신남의 대량 고독사를 경고했다. ‘고남(孤男: 한 번도 애인이 없었던 남자)’에 이어 ‘독남(毒男: 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독신남)’ 등 자조적인 유행어가 인기다. 중년 동정도 많다. 40대 초반의 동정 비율은 7.9%다(가족계획협회, 2004년). 과거 통계지만 현 상황에 치환해 추정하면 평생 혼자 살 중년 동정이 증가했을 확률이 높다. 화제를 모은 ‘중년동정(中年童貞)’이란 책은 40대의 10%가 이에 해당한다며 그 폭을 넓혀 잡았다. 중년 동정은 대부분이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 혼자 살아가는 게 확실시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물론 일부의 중년 독신은 화려한 싱글 생활을 영위한다.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노후 준비의 트릴레마(삼중고)에서 적어도 자녀 교육은 빠지니 한층 여유롭다. 조기 은퇴, 해외 체재(long stay) 등의 꿈을 그리며 외로울망정 부담 없는 노후 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이렇듯 나이가 들면 은퇴기로 접어든다. 60대 이상 고령 세대의 싱글 생활은 상황이 각양각색이다. 싱글 이유가 미혼·사별·이혼 등 다양한데다 장수할수록 홀로 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 고령자의 단독 가구 구성 비중이 특히 높다. 고령 인구 중 단독 가구는 15.6%(458만)다. 남성 10명 중 1명(10.4%), 여성 5명 중 1명(19.5%)이 싱글 거주자라는 얘기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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