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북극해 시대] 국내 첫 ‘북극항로 시범 운항’ 지상 중계

7일 만에 북극권 진입…자원 개발 ‘한창’

한국 국적 상선 사상 처음으로 현대글로비스가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나섰다. 시범 운항 일정은 9월 16일 발트해 인근 우스트루가항에서 출발해 10월 16일 전남 광양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운항을 책임질 선박은 스웨덴 스테나해운에서 빌린 ‘스테나폴라리스’호다. 이 배를 빌리는 데 드는 비용만 하루 약 1억 원이다. 러시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총 두 명의 선장이 이끄는 스테나폴라리스는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길이 183m, 너비 40m의 6만5000톤, 최고속력 15.5노트(시속 28.7㎞)로 유빙이나 빙하에 강한 내빙선이다.

항해는 북극 전문가인 황진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북극해남북협력연구실장과 선박 전문가인 남청도 한국해양대 기관공학부 교수, 이동섭·장은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등이 함께하며 항로, 해양, 자원 개발, 운항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한다. 현대글로비스에서는 수석 항해사 출신인 이승헌 해기사가 동승하며 북극해 운항 절차와 노하우를 습득한다.

스테나폴라리스에 승선한 현대글로비스 관계자와 신경훈 한국경제신문 기자와의 e메일 교신 등을 통해 항해 일지를 지상중계 한다.



9월 16일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됐다. 부두에 모인 환송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스테나폴라리스는 발트해를 가르며 서북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번 운항의 총 거리는 1만5000km, 총 30일이 소요된다. 전체 코스 중 약 4200km가 북극해 구간이다. 선박은 여천NCC가 수입하는 나프타(공업용 석유화학) 4만4000톤을 싣고 러시아·핀란드·에스토니아에 둘러싸인 발트해 연안 핀란드만을 떠나 북극해에서 한국 광양항을 잇는 코스다. 이 코스는 기존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남방항로(약 2만2200km)보다 7000km의 거리와 10일 정도의 기간이 줄어드는 항로다. 물류비를 30% 절감할 수 있다.



9월 20일 새벽 무렵 배는 덴마크 북단의 스코항 앞 바다에 잠시 멈췄다. 북해 진입을 앞두고 기름 탱크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북해는 배출가스통제구역(ECA)이어서 이 지역에 들어가는 배는 모두 저 유황 중질유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한다. 급유를 마친 스테나폴라리스는 다시 천천히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북극해로 가는 1차 관문 격인 북해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북해의 왼쪽에는 영국이, 오른쪽엔 노르웨이가 있다. 노르웨이 서해안 자락에는 관광지와 어항으로 유명한 베르겐이 있다. 눈에 띄지 않던 어선들이 분주하게 오고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9월 23일 밤 12시를 넘긴 시간, 선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북위 66도33분, 드디어 북극권에 들어섰다.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시작하고 발트해와 북해, 그리고 노르웨이해를 거쳐 7일 만이다.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바람도 매섭다. 배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북극권의 가을은 심한 강풍과 함께 찾아온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북극해는 유빙들이 둥둥 떠다닐 듯하지만 노르웨이해는 푸른 물결만 출렁이고 있다. 스테나폴라리스가 내빙선이지만 최대한 유빙을 피해 운항해야 하기 때문에 유빙을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2012년 9월 북극의 빙하 면적은 한겨울의 2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녹아 역대 관측 기록 중 최소 면적이었다. 급격한 북극 해빙은 걱정스러운 게 틀림없지만 그 덕분에 북극항로 모든 구간의 빙하가 완전히 녹아 배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선박들이 7월에서 10월까지 4개월 정도 극지방을 피해 북극해의 북위 75도 아래쪽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9월 24일 하루쯤 흘렀을까. 노르웨이 북쪽 해안을 따라가다가 러시아 쇄빙선 기지인 무르만스크에서 쇄빙선과 만났다. 쇄빙선은 스테나폴라리스를 에스코트하며 평균 두께가 2~3m인 해빙을 깨며 길을 터준다. 이때 빙산과 북극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빙 지대를 피하기 위해 아이스 파일럿(얼음 식별 전문가) 2명이 유조선에 동승해 안전한 항로로 안내한다. 무르만스크항 부근의 녹아내린 빙산은 세계적인 관광 자원이 됐다. 러시아는 쇄빙선을 타고 빙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관광 자원화한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의 지하자원이 풍부해 이를 확보하기 위한 개발 사업도 한창이다.



9월 27일 본격적인 북극항로에 진입했다. 북위 70도가 넘는 북극권을 지나더라도 빙산과 유빙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제 초가을에 접어든 데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기 때문이다.

바렌츠해·랍테프해·동시베리아해·척치해를 지나 북극해를 빠져나가면 베링해로 들어선다(출발 후 20일째 예상).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렌츠해는 노르웨이가 석유를 캐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아직 접근하지 못한 알래스카나 캐나다 보퍼트해 주변은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유전만 400개가 넘는다. 북극항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격전지를 지나 동해를 거쳐 광양항으로 입항하면(10월 16일 예상) 이번 운항은 끝이 난다.

현대글로비스가 시범 운항에 성공한다면 북극항로를 통한 한국과 유럽 사이의 화물 운송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북유럽과 중동산 원유를 한국 내 정유 시설로 실어 나르면 광양항과 울산항이 새 물류 중심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900억 배럴의 석유와 1669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북극권 자원 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다. 당장 경제 효과를 수치로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처음으로 우리 명의의 선사가 북극항로를 운항한다는 상징적 효과도 큰 성과다.

해양수산부는 국적 선사의 첫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계기로 한국 선사들의 북극항로 진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부터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국내항만에 입·출항할 때 항만 시설 사용료를 50% 감면하고 대량 화물 할인도 도입하기로 했다. 대략 선박 1척에 항만 시설료를 600만 원 정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항로 활성화 지원 협의체를 구성해 선주와 화주의 북극항로 동반 진출도 지원한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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