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오리온의 ‘동양 지원 불가’ 비하인드 스토리
입력 2013-10-04 14:28:55
수정 2013-10-04 14:28:55
이 부회장 ‘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토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형제 기업인 동양그룹의 지원에 대해 “불가하다”고 밝혔다. 오리온 대주주의 지원이 무산되자 동양그룹은 “계열사 매각 등을 포함한 자구 계획을 가속화하겠다”고 알렸다. 동양그룹은 기업어음(CP)과 회사채의 대규모 만기 도래에 따른 유동성 위기설이 제기되는 중이다.오리온그룹은 9월 23일 “오리온그룹과 대주주들은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 의사가 없으며 추후에도 지원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담 회장은 이날 오전 열린 임원 회의에서 “오랜 시간 고심했지만 오리온의 경영권 안정과 배임 여부 등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로 지원 불가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사내 게시판 통해 직원들에게 ‘아픈 마음’ 전해
오리온그룹 및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 의사가 없다고 밝히기까지 매우 치열한 내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화경 부회장의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의 둘째 딸로, 모친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과 언니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는 각별한 사이이기도 하다. 담 회장은 이화경 부회장의 남편이다.
오리온그룹은 2001년 동양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한 후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을 영위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타 그룹과 달리 어머니와 언니 간의 가족애가 돈독해 재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국내 제과사 중에서 독보적인 글로벌 매출 실적을 기록하며 성공 신화를 써 가고 있다. 2012년 해외 매출만 무려 1조2600억 원에 이른다. 또한 2001년 그룹 계열 분리 당시 7400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2조370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번 결정은 오리온그룹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오리온그룹의 자금 여력이 없는데도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다면 심각한 경영권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이 부회장은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며 최종 의사결정의 순간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사내 인트라넷에 글을 올려 ‘아픈 마음’을 오리온 사원들에게 직접 토로하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최근 동양그룹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저희는 불면의 밤을 보내며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고민했습니다. 불현듯 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가족’이란 단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지, 절절할지 몰랐습니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 사회적 책임과 꿈, 비전으로 연결된 가족 사이에서 고심 끝에 저희는 오리온은 영원한 존속과 번영을 지속해야 하고 또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야 하며 나아가 그 근간을 흔드는 어떠한 리스크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믿음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가슴에 평생 안고 갈 빚이 될 테지만, 우리와 오리온그룹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독립 경영을 할 것이며 동양그룹이 요청한 자금 지원은 하지 않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혈연 앞에서조차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경영자’라는 이름의 자리가 이번만큼 힘든 적은 정말 없었습니다.”(이화경 부회장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글)
오리온의 지원 불가 방침이 전해지자 현재현 동양 회장은 “동양매직 등 계열사 매각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