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북극해 시대] 영유권 확보 ‘사활’…최후 승자는

열강들의 자원·영토 쟁탈전

8월 2일, 러시아의 북극 탐사 팀이 세계 최초로 북극 해저 4.3km에 도달했다. 그들은 심해 바닥인 로모노소프(Lomonosov) 해령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설치했다. 북극 탐험 직후 러시아는 “북극점을 통과해 캐나다 연안까지 연결되는 로모노소프 해령이 러시아의 동시베리아와 대륙붕으로 연결된 과학적 증거를 발견했다”며 이곳과 연결된 해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북극해 개발 정책과 함께 북극권 국가를 중심으로 북극해에 매장된 자원 확보 및 영유권 분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북극해 연안 5개국인 미국·캐나다·러시아·노르웨이·덴마크를 비롯해 이누이트족·유럽연합·북극이사회·독일·중국에 이르기까지 각국은 북극에 대한 영유권을 공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극의 방대한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다.

북극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2009년 미국의 한 연구 발표에 의해 더욱 고조됐다. 2009년 5월 지질학자 도널드 고티에 박사가 이끄는 미국지질조사국(USGS) 연구팀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북극권 자원에 대한 종합 평가를 발표했다. USGS는 “북극권에 원유 1600억 배럴, 천연가스 44조㎥가 매장돼 있다”고 밝혔다. 석유는 세계 수요량의 5년, 천연가스는 10년 분량을 소화할 수 있는 양이다.


북극 둘러싸고 관련 국가 긴장
이에 따라 북극해에 대한 관심은 에너지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자원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북극에는 석유와 가스 자원뿐만 아니라 광물·수산·생물공학 자원이 있다. 막대한 양의 금·다이아몬드·백금·은·구리·아연·니켈·납 등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미국·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 등 관련국들이 북극권 자원 탐사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북극해 에너지는 상당량이 러시아 내륙에서 북극으로 이어지는 바다에 매장돼 있다. 고티에 박사는 “북극권 에너지가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러시아의 천연가스 장악력과 전략적 통제 가능성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북극 지역을 관리하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여타 북극권 국가보다 가장 활발하다.

러시아는 현재 북극해 확보 문제로 미국과 논쟁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에서는 북극 지방의 경제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덴마크·노르웨이·캐나다·아이슬란드·스웨덴·핀란드 등의 국가와의 논쟁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극의 로모노소프 해저산맥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에 따라 러시아령 북극 대륙붕 경계가 새롭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극권 국가 간 갈등이 복잡한 모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극해에서 발생되고 있는 분쟁은 대륙붕 연장, 자원 관할권, 도서 영유권, 북극항로 관할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북극권 국가들이 내놓은 북극 정책들이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분쟁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0년과 그 이후까지의 러시아 북극 정책 요강’, 2009년 1월에 공표된 미국의 ‘신북극 지역 지침’, 2009년 7월 캐나다의 북방 전략을 담은 ‘캐나다의 북방 전략-우리 북극, 우리 유산, 우리 미래’란 제목의 보고서가 연이어 발표됐다. 이로써 북극권 국가들의 북극 정책과 함께 북극해 해양자원 관할 및 영유권 논쟁이 더욱 더 선명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4월에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간에 바렌츠해와 북극해 해상 국경선 획정에 합의하면서 지난 40년간 지속해 온 바렌츠해 해상 국경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하지만 양국 협력이 기본 합의에 불과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합의 문서를 도출하기까지는 해결해야 될 정치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북극해 자원 개발 및 북극항로 이용권 확보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요인들이 북극권 국가들을 분쟁의 바다로 유인하고 있다. 러시아·캐나다·덴마크 등이 북극해에 대한 영유권을 유엔에서 확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도 북극해 영유권 확보 경쟁에 가세했다. 개별 국가들의 이러한 정책 행위는 북극권 갈등 구조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북극에서 추가 영유권을 획득하려는 나라는 국제법이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국제해양법협약을 비준한 나라들은 유엔특별위원회에 추가 영유권을 신청할 수 있다. 이때 해당 국가들은 그들의 영토가 해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 땅 지켜라’…곳곳에 군사기지 설치
북극 문제는 영토 주권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각국의 북극 영토를 보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에 따라 현재 북극권에는 상당수의 군사기지가 설치돼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 캐나다는 자국의 북극 지방뿐만 아니라 북서항로를 따라 기지를 설치하고 있다. 또 덴마크는 그린란드, 노르웨이는 자신의 북극 연안에 기지를 설치했다. 러시아 역시 북동항로를 따라 기지를 설치하고 있으며 북해 함대와 태평양 함대의 전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북극해를 동서로 관통하며 육·해·공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군사 활동 역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덴마크는 북극 지역 군사작전을 전담하게 될 특수 부대 창설을 발표했고 노르웨이는 첨단 전투기로 북극 영공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핵잠수함의 순찰 활동 및 정찰용 장거리 폭격기가 캐나다 영공으로 접근하면서 미국과 캐나다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북극권 국가의 그 어느 누구도 북극해 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북극권 국가들은 북극해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본 원칙에 동의하고 있지만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을 통해 연안국들이 경제수역으로 인정받아 온 200해리를 350해리까지 확대해 달라고 유엔을 압박하고 있다.

북극해는 연안국 사이에 ‘협력과 갈등’이라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북극해 자원 확보 및 영유권 경쟁 등 북극해 연안 5개국이 벌이고 있는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거대 게임(New great game)’에 비유되기도 하는 북극해 쟁탈전. 이 북극해가 갖는 전략적 및 경제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화해·협력의 21세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신냉전의 중심 무대가 될 가능성이 더 한층 높아지는 듯하다.


이영형 한림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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