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설국열차는 100점 만점에 80점”

정태성 CJ E&M 영화사업부문장




좀처럼 보기 힘든 한국 영화 대전이 펼쳐지고 있는 올여름, 그 중심에 ‘설국열차’가 있다. 8월 21일 기준 840만 명 관객 돌파, 600억 누적 매출액, 해외 판매액 220억 원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설국의 진격’이면에는 각 분야의 고수들이 숨어 있다. 영화의 메가폰은 봉준호 감독이 잡았지만 투자를 총괄한 이는 정태성 CJ E&M 영화사업부문장이다. 예술영화를 취급했던 백두대간부터 쇼박스와 스카이워커 등을 거쳐 현재 CJ E&M에서 영화 부문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 20년간 영화의 3대 축인 투자·제작·배급을 두루 경험하고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광해, 왕이 된 남자’, ‘베를린’ 등을 만들어 낸 영화 비즈니스 전문가다. 4개 국어를 구사하는 등 ‘해외통’으로 불린다.


‘설국열차’의 흥행을 내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설국열차’는 비즈니스와 작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성과를 일궈냈다고 자평합니다. 국내 성공은 시작인 셈이고 해외를 지켜봐야 하겠죠. 이미 167개국에 미니멈 개런티 방식으로 2000만 달러에 선판매했고 총 투자 금액 450억 원 중 해외에서 절반을 회수했습니다. 지난 한 해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총수익보다 많은 금액이죠. 이와 함께 한국에서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이제부터는 버는 겁니다. 특히 유럽·아시아·미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합니다. 겸손하게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로 성적을 매기고 싶습니다.


‘설국열차’에 국내 최대 규모인 450억 원이라는 큰돈을 투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설국열차’가 지난해 4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펀딩 조성이 안 돼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전액 투자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8년간 준비해 온 영화가 좌초될 수 있는 급박한 위기여서 일단 영화부터 만들고 그다음 판매와 유통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낸 겁니다. 이미 프리 투자로 1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상황이었는데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300억 원을 더 투자하든지, 100억 원을 날리든지 기로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두 달 후 촬영을 앞두고 일단 돈부터 내보내고 촬영하면서 계약서를 만졌습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하면 ‘디 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설국열차’는 어찌 보면 무모한 투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디 워’는 300억 원이 투입됐는데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힘든 도전이었죠. ‘설국열차’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시나리오를 좋게 봤고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 배우와 제작진 등 영화의 네 가지 요소를 봤을 때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또 한국 영화의 국제화에 대한 CJ의 비전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해외 배급이나 마케팅, 유통, 전략적 측면에서도 4000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처음 한 것 치고는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20년간 영화 산업에 종사하셨는데요. 손해 보지 않는 투자 원칙이 있습니까.
한 해에도 몇 백 편씩 투자 의뢰가 들어옵니다. A4 용지 100장을 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죠. 100억 원씩 투자한다면 담보도 없이 한 장에 1억 원을 주는 셈입니다. 저는 일단 스토리의 시대적 가치를 봅니다. 또 영화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연출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를 더하자면 관객의 반응을 생각해 보죠. ‘설국열차’도 그냥 SF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상황이 뒷받침돼 있고 전복한 사람과 전복당한 사람이 같은 처지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와 같은 스토리의 참신함과 철학이 있죠. 이렇게 판단하면 450억 원도 질러볼 만하다 생각하는 겁니다.


영화 산업 규모도 커지고 영화 투자에 관심을 갖는 곳도 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십니까.
우선 관객 수가 지난해 1억 명을 돌파했고 올해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제2의 르네상스가 열리면서 투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2005~2006년에도 한차례 영화 투자 붐이 일었었죠. 너도나도 뛰어들고 주로 벤처 자본이 들어오면서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수익률이 마이너스 40~50%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묻지 마 투자가 줄고 2009년 이후 조금씩 수익률이 개선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다시 플러스(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3%)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한국 영화가 연속 흥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돈이 유입되고 있는데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영화에 대한 이해 없이 들어오는 스폿성 자본이 많이 줄었습니다.





“ 지금도 ‘설국열차’ 이외에 보아가 주연한 ‘메이크 유어 무브’, 슈퍼주니어가 출연하는 ‘파이널 레시피’ 등 글로벌 프로젝트 두 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이 글로벌 사업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CJ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모두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CJ E&M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튜디오인 셈인데, 이 때문에 수직 계열화나 독과점 이슈 등이 나올 때마다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연간 약 1000억 원 정도를 영화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분명한 공은 제작 투명성을 확보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하고 한국 영화의 글로벌화에 판로를 열었다는 점입니다. 영화 제작 예산 운영 가이드를 도입하고 수익의 분배 및 정산에 대해 시스템을 만든 것은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또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재투자하는 섹터가 글로벌 사업으로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 및 배급뿐만 아니라 해외 관객을 대상으로 글로벌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해외 사업 비중이 지난해 처음 10%를 넘어서 2017년에는 50%대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지금도 ‘설국열차’ 이외에 보아가 주연한 ‘메이크 유어 무브’, 슈퍼주니어가 출연하는 ‘파이널 레시피’ 등 글로벌 프로젝트 두 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이 글로벌 사업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국내 상황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글로벌만 강조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100억 원, 2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블로버스터가 출현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 완성도, 니즈, 계층, 세대별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10년 전이라면 질문에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1000만 관객이 아닌 1억 명을 향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옆에 13억 명의 시장이 한 시간 반 거리에 있기도 하죠.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산업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영화는 인재가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영화 투자·마케팅·제작 등 무엇을 하든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도전 정신입니다. 새로운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필요하죠. 인문학적 소양과 열린 사고, 문화적 다양성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키는 게 중요하고 언어도 중요합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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