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부활에 베팅하라] 제조업 승승장구… 내수·수출 콧노래

경기 회복 이끄는 독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경제성장률이 18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은 8월 14일 유로존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라고 밝혔다.


<YONHAP PHOTO-2288> A worker cleans a gearbox of German manufacturer Schaeffler at the Hanover Messe 2011 technology fair on April 3, 2011 in Hanover, central Germany. According to the organizers, exhibitors from 65 countries will present their latest products during the trade show running until April 8, 2011. France is this year's partner country. AFP PHOTO PATRICK LUX /2011-04-03 22:44:31/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성장을 이끈 것은 이 지역 경제의 중심인 독일과 프랑스다. 독일의 2분기 성장률은 0.7%를 기록하며 확실하게 반전했다. 독일의 2분기 성장률은 전문가 예상치인 0.5%를 뛰어넘은 수치다. 독일 통계청은 내수와 수출 증가로 경제성장률이 호조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로존 내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2012년 기준 EU의 전체 GDP 규모는 15조7000억 달러 수준이다. 이 중 독일의 GDP는 3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독일이라는 한 나라가 27개 국가연합인 EU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나 되는 것이다.

독일과 함께 EU의 경제 ‘투 톱’으로는 프랑스가 거론된다. 그러나 막상 두 나라의 경제 규모를 비교하면 꽤 차이가 난다. 프랑스의 2012년 GDP는 2조7000억 달러 수준이다. 프랑스가 EU 내 GDP에서 차지하는 수준은 17%에 그친다. 당연히 이탈리아(2조700억 달러, EU 내 GDP 규모 3위)나 스페인(1조4000억 달러, 4위)은 ‘투 톱’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즉 독일 경제가 살아나야 EU 경제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물론 EU 내에서 독일의 역할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독일 경제의 핵심은 강력한 제조업이다. 독일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 수준이다. 또 독일은 제조업 제품을 수출해 먹고사는 전형적인 무역 국가다. 독일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51%에 달한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의 제조업 비중과 무역수지의 상관관계는 0.79로, 튼튼한 제조업이 수출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EU 경제 통합 후 큰 수혜를 본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무역 흑자가 계속되면 자국 화폐의 가치가 올라간다. 화폐가치가 올라가면 수출 상대국에서의 가격도 올라 무역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독일은 유로화를 쓴다. 이 때문에 제품을 팔아 아무리 돈을 벌어들여도 화폐가치 상승에 대한 걱정이 덜하다. 이유는 유로화의 환율이 독일이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변동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수출에서 역내(EU)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3.3%(2010년 기준)에 달한다. 그래서 작년 경제 위기에 빠졌던 일부 남유럽 국가들은 “위기의 원인은 유로존 출범 후 독일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부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독일·EU GDP 중 23% 차지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독일의 제조업이 유로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얻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독일 제품의 질’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좋은 제품이 있었기에 가격 경쟁력이 빛을 발했다는 의미다.

독일 제조업이 강한 원인에 대해서는 수많은 분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포인트는 수많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야별 세계 시장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매출액 40억 달러 이하의 강소기업)’이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절반에 가까운 1307개가 독일에 몰려 있다. 독일 인구 100만 명당 히든 챔피언 수는 독일이 16개로, 미국(1.2개)·일본(1.7개)·중국(0.1개)·한국(0.5개) 등을 압도한다.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유독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근대 독일이 매우 늦게 통일됐다는 점이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한 것은 1871년 1월이다. 이전 독일은 여러 작은 나라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작은 나라의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화가 필수였다. 또한 각 국가들의 기업은 지역마다 자신만의 장기를 가지고 역량을 축적했다. 일례로 독일의 남서부 흑림(黑林) 지역은 수백 년 전부터 시계 공업이 발달했다. 이는 정밀 기계공학 활성화로 이어졌다. 현재는 정밀 기계공학을 필요로 하는 의료 기술 관련 업체 400여 곳이 이 지역 인근에 모여 있다.



당연히 각 국가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는 곧 혁신을 통한 ‘제품의 질’ 향상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산업구조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라의 혁신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특허 출원 건수가 있다. 2010년 유럽특허청이 발급한 특허 건수를 살펴보면 독일은 1만2553건으로 2위인 프랑스(4536건)를 압도한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히든 챔피언들은 제조업 전체에 상승작용했다. 예를 들면 좋은 베어링이 나오니 좋은 엔진이 나오고 좋은 엔진이 있으니 좋은 자동차가 나오는 식이다. 이에 따라 독일 경제는 중소·중견·대기업들이 산업의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해준다. 사실 최근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이 주목받고 있기는 하지만 독일의 제조 대기업들은 이미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폭스바겐·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BMW·보쉬, 의약품의 바이엘, 전자제품의 지멘스·아에게, 화학의 바스프, 철강의 티센크루프 등이 그곳들이다.


‘일관성’ 추구한 메르켈의 리더십
독일 정부의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은 최근의 ‘독일식 경제’를 다시금 세계가 주목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독일 정부는 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맞게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전임 정부의 경제정책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독일은 한때 통일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 결과 ‘유럽의 문제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독일 경제의 개혁 청사진인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며 독일식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어젠다 2010’은 고용·연금·의료·세제·교육 등을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였다. 정년을 상향 조정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먼저 구축한 뒤 해고보호법 등 과도한 고용 보장 정책을 개혁하며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가져 왔다.

2005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 정책을 계승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좌파인 사민당 출신이고 메르켈 총리는 우파인 기민당 출신이다.

일부 정책에 자신 만의 색깔을 입히기도 했다. 기업의 조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세제 개혁이 대표적이다. 그는 8개 조항을 담은 ‘연방주의 개혁’을 발표했다. 관료주의 타파, 기술 혁신, 창업 지원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또 ‘성장촉진법’을 제정해 호텔업 같은 일부 업종의 부가세를 19%에서 7%로 대폭 인하했다.

그 결과 독일은 미국·유럽 등에 연이어 터진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2006~2012년 사이 매년 평균 2.7% 성장했다. 같은 기간 유로존 평균인 1.6%를 훨씬 뛰어넘는 숫자다. 이 기간 동안 경제의 ‘체질’은 훨씬 좋아졌다. 고용자 수는 2004년 3546만 명에서 2011년 3974만 명으로 늘렸고 실업률도 2005년 11.3%에서 2012년 5.9%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아직 섣부르지만 독일 경제는 당분간 순항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유는 경기 상승과 하락의 가늠쇠가 되는 각종 선행 지표들도 속속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독일의 6월 경기선행지수(CLI)는 전월보다 0.1 포인트 오른 100.1을 기록해 100을 넘었다.

CLI는 약 6~7개월 후인 가까운 장래의 경기 동향을 전망하는 지표다. 100 이상에서 상승하면 경기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 6월 CLI는 독일이 유로존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 기간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8월 13일 독일 민간 경제연구소 유럽경제연구센터(ZEW)는 8월 경기 예측 지수가 42.0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7월의 36.3보다 5.7 포인트 뛴 결과다. ZEW 지수는 기관투자가들과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조사를 근거로 산출돼 6개월 후 경기 전망을 반영한다. 역사적 평균치는 23.7 수준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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