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주식 투자에서의 트라이앵글 ‘골든 룰 경영’
입력 2013-08-21 15:50:10
수정 2013-08-21 15:50:10
제조업·알파라이징·POP에 투자하라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들어 예측 기관과 투자은행(IB)들이 새롭게 제시하는 화두다. 세계 증시도 1990년대 초반 이후 20년 만에 제조업이 이끌고 있다. 미국 3대 지수 가운데 제조 업종이 많이 편입된 다우존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보기술(IT) 업종이 대부분인 나스닥 지수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각국이 발표하는 제조업 지표는 일제히 호조세다. 전반적인 제조업 동향을 알 수 있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미국·유럽·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50’을 넘고 있다.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회복 국면을 의미한다. 2분기 일본의 단칸지수도 1분기에 비해 무려 12포인트나 급등했다. 한국만 유일하게 부진하다.
제조업 지표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는 것은 각국의 거시경제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종전처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일자리, 그중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게 요즘 각국의 경기 대책이다. 그만큼 청년층 실업이 이제는 인내할 수 있는 임계 수준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국이 추진하는 제조업 중시 정책은 처한 여건에 따라 독특하다. 미국은 세제 지원을 통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제조업 재생(refresh)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은 엔저를 통해 ‘제조 수출업의 부활(recovery)’ 정책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계속해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는 ‘제조업 고수(master)제’, 중국은 잃은 활력을 다시 불어넣는 ‘제조업 재충전(remineralization)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화의 일환으로 해외 진출을 권장했던 제조업을 이제는 안으로 끌어들이는 ‘리쇼링(reshor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각국 산업 정책 제조업에 포커스
또 인수·합병(M&A) 시장을 통해 제조업 부활에 주력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M&A 시장은 거래되는 매물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상적인 기업이 거래되는 ‘프라이머리 시장’과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세컨더리 시장’이다. 바로 후자에서 나오는 부실기업을 인수해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점이 주목된다.
각국의 제조업 중시 정책은 글로벌 증시 입장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IT 업종은 라이프사이클이 매우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 순응성’이 심해진다. 경기 순응성은 경기가 과열될 때 정점이 더 올라가고 침체될 때 저점이 더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어느 국면이든 진입하기가 어렵지 일단 진입하면 오래간다.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이 축소되는 ‘안정화’ 기능이 강화된다. 주가도 고개를 들면 그 기간이 오래가는 ‘랠리’가 형성된다.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제조업 르네상스발 골디락스 증시’에 대한 기대가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조업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출구전략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새로 적용될 평가 잣대에 맞춰 전략을 짜기에 부심하고 있다.
종전에 기업을 평가하고 주식을 고르는 잣대로 주로 재무제표가 활용돼 왔다. 경영진은 경제적인 이윤 추구에 집중하고 투자자들은 매출과 이익을 근거로 우량 기업을 골라내는 것이 정형화된 기준이었다. 주식 투자에서는 주가수익률(PER)·자기자본이익률(ROE)·주가순자산배율(PBR) 등 재무 지표와 관련된 지표가 사용됐다.
이런 잣대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당시 나이키나 코카콜라처럼 비재무적인 이슈들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속속 발생했다. 이 현상은 인터넷·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이 발달하면서 한층 더 두드러져 부정적인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매출 감소 등으로 해당 기업에 되돌아오는 ‘네트워킹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이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감안해 소비자·주주·종업원 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속 가능 경영’이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지속 가능 경영은 책임 경영, 지배 구조 개선, 윤리 경영, 투명 경영, 열린 경영, 사회 공헌 활동, 환경 경영 등 한마디로 비재무적 리스크까지 감안한 경영 활동을 말한다.
금융 위기 후 지속 가능 경영 중요해져
금융 위기 이후 경영 환경에서는 지속 가능 경영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지속 가능 경영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불이익을 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경향을 수용해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경영 표준을 정하고 속속 경영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금융 위기 이후 새롭게 주력 산업으로 떠오를 이른바 ‘알파라이징 업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알파라이징 업종’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이 붙은 용어다.
현재 연구·개발(R&D) 중이거나 개발이 완성돼 출시를 앞두고 있는 다양한 제품 가운데 ‘알파라이징 업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세데 주력 업종으로 ▷주인을 알아보는 카드 ▷건강을 가져다주는 바이러스 ▷기름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 ▷사용한 종이 기저귀가 거름이 되는 상품 ▷세계 언어 동시 번역기 ‘하쿠나 마타타’ 등이 꼽힌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이드 섀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공생적 게임 이론의 대가다.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 이론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는 일환으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BOP, 즉 빈곤층 대상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수익과 빈곤층 자립 기반 조성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BOP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동반자 관계 설정, 각종 기부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과 함께 가는 제3의 길인 ‘임팩트 경영’에도 주력하고 있다. ‘임팩트(Empact)’는 감정이입을 뜻하는 ‘엠퍼시(Empathy)’와 사회적 연대를 나타내는 ‘팩트(Pact)’가 결합된 용어로, 사회적 연대 경영을 말한다.
기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선도 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알파라이징 업종, 섀플리-로스 공생 업종 간에 ‘3:4:3’ 혹은 ‘4:4:2’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선도 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 원칙을 ‘트라이앵글 골든 룰 경영(triangle golden rule management)’이라고 부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선도 기업들의 ‘트라이앵글 골든 룰 경영’에서 중시하는 업종들은 친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면에서 공통적이다. 금융 위기 이후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이 점을 중시해 주식 종목을 선택하고 있다. 선도 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과 버핏 회장의 신투자 기법은 국내 기업인과 투자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