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연구소 전성시대] “눈앞 이익 급급하면 신뢰 쌓기 힘들어”

딱딱한 돈, 금융 이야기를 영화·드라마·소설 등 다양한 예술 문화와 접목해 풀어내 ‘머니 스토리텔링’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머니스토리랩의 신성진 소장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ING생명·에셋비 대표이사, 한국자산관리협회 이사를 거쳤고 재무 설계 및 금융 교육 회사인 네오머니의 이사로 재직시 잡지 ‘행복한 부자’의 편집장을 맡은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에 1인 연구소를 차렸다.



가정 내에서 아버지 역할 회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 운동가인 ‘아버지다움연구소’의 김혜준 소장은 국회·자유주의연대·농림수산식품부·청와대 등을 거쳤고 지난해부터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 부설 기구의 1인 연구소 소장으로 활약 중이다.

대선 후보의 정치인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이미지, 개인 브랜드 컨설팅에 앞장서는 정연아이미지테크연구소의 정연아 대표는 1997년에 펴낸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17년간 경향신문 기자로 일한 후 2006년 자녀경영연구소로 인생 2막을 개척한 최효찬 소장은 저서인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후 활발히 집필,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남들과 차별화된 전문성과 콘텐츠를 바탕으로 1인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직장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나오기 전에 가족을 먼저 설득해야 하며 반드시 자신이 하고 싶고 시대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각자 기자·증권맨·정치인 등 본래의 직업을 정리하고 1인 연구소를 세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 소장 경향신문에서 17년간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신문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차장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대신 사무실에서 취재 지시를 내리는 데스크는 제 성격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입사 5년 차부터 인생 2막을 준비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며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2005년에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됐는데 다행히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3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기자와 함께 학업·저술까지 1인 3역을 하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정작 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녀 경영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연구했던 경험과 밑천을 토대로 저만의 독특한 연구소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면서 2006년 마흔두 살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구 활동을 한 것이죠. 이후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상을 뒤흔든 위인들의 좋은 습관’,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등을 지속적으로 출간하면서 유명세도 탔고 저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신성진 머니스토리랩 소장 첫 직장이 은행이었고 보험 세일즈도 했고 재무 컨설팅 회사의 대표까지 돈과 관련된 업종을 두루 경험했어요. 그러다가 네오머니라는 금융 교육 회사에서 일하면서 잡지 ‘행복한 부자’의 편집장을 맡아 글을 쓰고 재무 설계와 관련해 주로 강의를 하게 됐어요. 다들 금융, 자산 관리, 재테크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딱딱하고 무겁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영화·드라마·소설과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온 것을 소재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게 됐어요. 돈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콘텐츠를 만들게 된 것인데, 일반인을 비롯해 금융권에 있는 분들까지 강의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를테면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이야기하면서 통장 나누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죠. 이와 함께 2011년부터 한 경제 잡지에 ‘신성진의 세상사 속 돈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이 칼럼을 지속적으로 쓰면서 저만의 콘텐츠가 많이 쌓였어요. 지속적으로 강의 요청도 들어오면서 올해 초부터는 법인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연구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집안에서 아버지의 말이 안 통하더라고요.(웃음) 이거 큰일이다 싶었죠. 주위를 보니까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현시대 아버지의 문제점에 천착하게 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의 해법들을 가정에서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버지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 문제를 담론화하기 위해 ‘아버지다움 연구소’를 만들었고 지난 1년간 활동해 왔습니다. 조만간 ‘함께하는 아버지들’이라는 아버지 단체를 출범시킬 예정이기도 합니다.





사회 1인 연구소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이를 위한 자신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정연아 정연아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 여기 계신 세 분 다 콘셉트를 너무나 잘 잡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아버지, 자녀 교육, 자산에 대한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 않습니까. 이처럼 1인 연구소를 기획할 때는 그 시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고민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냉철한 눈과 독특한 콘셉트가 이들만의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는데 1991년에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번역서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어릴 때부터 남들을 매력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제 열정이 드디어 제대로 된 직업을 찾은 것이었죠.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이미지 메이킹연구소를 세웠고 연이어 1997년에 펴낸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완전히 저만의 브랜드가 생겨났어요. 전 그 책의 덕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개인 브랜드를 만드는 입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책을 써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게 첫 단추예요. 또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알아주지 않아요. TV 출연이든, 신문 인터뷰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신성진 소장 저도 지난해에 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돈에 대한 불편한 진실 41’을 비롯해 공저까지 총 4권의 책을 써 왔고 연구소를 하면서 1년에 한 권 정도의 집필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매력·실력과 함께 ‘협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1인 연구소를 하는 이들 가운데 네트워크를 통해 파트너를 찾고 함께 일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서로 이야기는 해볼 수 있어도 함께 강연을 기획한다거나 공동으로 책을 쓰거나 하는 게 어렵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저를 소개하고 함께할 수 있는 소재가 있다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1인 연구소를 하면서 동문회 활동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코칭 강연을 들으면서 만난 동기들과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죠. 회사에 있을 때보다 인맥 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최효찬 소장 대부분의 1인 연구소 소장들이 처음에 베스트셀러 내서 이름을 알리고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강의 요청에 정신없이 불려 다니다 보면 1~2년 후 내공이 고갈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되죠. 저 또한 그랬어요. 처음 연구소를 만든 후에는 50만 원 짜리든, 100만 원 짜리든 들어오는 강의를 가리지 않고 다 했어요. 대학교의 시간강사도 했고 도서관 강의, 학부모 대상 강의 등 이 모든 걸 다 뛰다 보니 결국 자기 방전의 시기가 왔죠. 이렇게 자기 성공에 도취돼 에너지 배분 없이 다니다 보면 결국은 힘이 다 소진돼 다음 단계로 뛰어넘지 못해요. 그걸 느낀 후부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했어요. 일단 강의를 과감히 줄였고 제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 투자하기로 했죠.





사실 당시에 한경비즈니스에 3년간 고정으로 ‘최효찬의 문사철 콘서트’라는 북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게 제겐 엄청난 충전의 시기였어요. 2008년부터 초서(抄書: 책에서 내용을 발췌하는 것으로 다산 정약용이 강조하기도 했다)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저만의 특별한 자산이 됐죠. 단지 명문가의 자녀 교육이라는 콘텐츠만 탐구하는 게 아니라 고전부터 현대 소설까지 모든 문학적 소재 속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을 뽑아내는 작업을 했는데 그것을 3년간 하다 보니까 또 다른 저만의 콘텐츠가 생겼고 문체도 다채로워졌습니다.

사회 초기에는 창업비용이 부담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점도 불안했을 것 같고요.
김혜준 소장 저는 엄격히 말해 구조적인 면에서는 1인 연구소가 아닐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라는 단체의 부설 기구이기 때문이에요. 사실 아버지라는 키워드로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 단체도 만들고 신문도 발행했는데 저 혼자 하기에는 인프라도 부족하고 여러모로 아쉬워 제 철학과 유사한 기관을 물색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라는 단체가 1969년부터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부모 교육, 학교 바로 세우기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일면식도 없는 그 기관에 찾아가 설득했죠. 이 기관에 없는 아버지다움에 대한 부분을 책임지고 제가 맡아 연구 활동을 하겠다고 말이죠. 그렇게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이 단체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고 있어요. 일단 전국에 31개의 지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탄탄해 사회운동을 하기에 적합하고 개인 사무실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초기 창업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덜게 됐죠.

최효찬 소장 사실 처음에 1인 연구소를 차릴 때는 사무실 임대료, 집기, 각종 운영비 등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 김 소장님은 매우 현명한 방법을 택한 것 같아요. 저도 초창기에는 광화문의 한 사무실을 빌려 일했는데 혼자 있다 보니 이게 감옥처럼 느껴지는 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연세대 도서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도서관이 곧 제 사무실이죠. 자료도 많고 산책도 할 수 있어 아주 좋더라고요. 고정 지출도 막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죠. 1인 연구소를 하는 분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아지트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또한 저는 경향신문을 퇴사하고 나오면서부터 인세, 원고, 강의 수입이 불안정했는데, 과외 교사를 했던 아내가 보습 학원을 차리면서 가계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정연아 대표 초창기에는 직원을 4명까지도 뒀는데 지금은 몸집을 많이 줄였어요. 이미지 컨설팅을 받으러 고객들이 워낙 자주 사무실에 오다 보니 공간을 갖춰 놓고 있지만 1인 연구소를 하려는 분들에게는 절대로 사무실을 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매달 나가는 임대료, 비서나 직원들의 월급까지 내는 게 결코 만만치 않거든요. 초기에는 지출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봅니다.

사회 내가 나를 고용했다는 측면에서 다들 1인 CEO에 속하는데요. 연구소 운영을 위한 나름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신성진 소장 저는 지난해까지 혼자서 연구소를 운영하다가 세금 문제 등이 발생해 아예 법인을 등록했고 올해부터는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파트너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분이 제가 가진 콘텐츠를 다양한 기관 등에 마케팅을 하기도 하고 스케줄도 조절해 주고 있어요. 또한 직장인·공무원·어린이·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에 적합한 강의 기획을 함께 세워 보기도 하고요.

김혜준 소장 저는 선약을 지킨다는 철칙을 고수합니다. 얼마 전에 지방의 한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을 받았고 뒤이어 같은 날에 인기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앞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아쉬웠지만 뒤에 들어온 섭외는 거절했거든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대신 이런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저에 대한 신뢰가 이곳에서 굳건히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최효찬 소장 연차가 쌓이다 보니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 또한 고려하게 되죠. 제 철학과 맞지 않는 청중 앞에서는 굳이 강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에서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자녀 교육에 대해 코칭해 달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습니다. 제 강의에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인 CEO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의 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의 포지션에 맞는 마케팅과 전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1인 연구소는 일종의 직장이자 놀이터일 수 있죠. 1인 연구소 운영의 묘미는 무엇입니까.
신성진 소장 네오머니에 근무하면서 잡지도 만들고 칼럼을 쓰면서 너무 재미있어 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이런 일을 계속하면서 먹고사는 게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구소 일을 시작하게 됐죠.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기획해 보고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아내도 전문 바리스타로 커피와 관련된 강의를 하는데, 콘셉트를 잡고 기획하는데 도움도 줄 수 있어 그것 또한 기쁩니다.

정연아 대표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1인 연구소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내가 하는 일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인지, 내 콘텐츠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절로 몰입을 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하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표정부터가 달라요. 저 또한 요즘 컬러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주제를 놓고 매일 밤마다 연구하는데요, 이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건 자신 스스로 몰입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김혜준 소장 제 전문 분야의 생각들을 모으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매우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내일신문의 제호 옆에 ‘밥·일·꿈’이라고 적혀 있어요. 꿈과 밥 사이에 일이 존재하는데 이 일이 단순히 밥벌이를 위한 일이 되고 굉장히 피곤하죠. 하지만 꿈을 이뤄가는 수단으로 일하면 보다 넘치는 에너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가정의 가치, 아버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제 꿈인데 이러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니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 1인 연구소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최효찬 소장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생활이 지겹고 그럴싸한 직함도 생기니까 거기에 끌려 연구소를 차리겠다는 분들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그건 도전이 아니라 도피라고 볼 수 있죠. 스스로 끌리는 주제가 있고 열정이 있다면 하십시오. 저는 2006년에 연구소를 시작해 올해로 7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초창기에 제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명문가의 자녀교육’ 시리즈는 마무리하고 이제는 각종 영화,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자녀 경영의 아이디어를 찾는 ‘인문학적 자녀 교육’이라는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시즌 2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탐구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학습과 발전이 없다면 1인 기업가는 일회성 기업가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혜준 소장 1인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자기 관리와 재충전이 필수입니다.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독·다상량·다작.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정리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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