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인상으로 가정경제 ‘휘청’
아베호의 돛에 순풍이 불었다. 7월 22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의 압승을 거뒀다. 47개 선거구 중 1곳을 뺀 모든 선거구에서 자민당 당선자를 냈다. 언론의 표현대로 ‘자민당 천하’의 확인이다. 이로써 아베노믹스의 추진 동력이 한층 탄탄해졌다. 다음 선거까지 3년 임기가 사실상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디플레→인플레’의 총공세에 뒷심이 보태진 셈이다. 한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 여지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의 갈망은 그만큼 컸다.정부가 제시했고 국민이 응원하면 정책은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다소간의 엇박자에도 불구하고 정책 의지를 꺾기는 힘들다. 다만 좀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부작용이 거세지면 생각지도 않은 악재가 뒷덜미를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아베노믹스는 모순·이중적이다. 애초부터 선순환과 부작용이 칼의 양날처럼 세팅된 정책이었다. 양적 완화로 돈을 풀겠다는 것 자체가 물가 인상을 목표로 했는데, 물가 인상이 되레 가계 소비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단계적이고 차분한 물가 상승 대신 차별적이고 급격한 인플레 발생 우려다.
걱정은 일부 확인됐다. 국채 금리 급등에서 확인됐듯이 불규칙·불안정한 물가 인상이 염려된다. 최대 복병은 수입 물가다. 엔저 유도로 수출 기업은 좋아져도 내수 시장은 힘들어진다. 엔저만큼 비싸게 수입할 수밖에 없다. 필수 소비재는 엔저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인플레만큼 소득이 증가했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기업의 엔저 수혜→가계의 소득 증대’는 아직 연결 고리가 없다. 가계로선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 인상분 만큼 지출이 늘어나니 박탈감은 당연하다. 일각에선 ‘물가 인상+경기 침체’의 스태그플레이션마저 걱정할 정도다.
필수 소비재 줄줄이 가격 인상
엔고 시대의 일본 가계는 그래도 저물가가 반가웠다. 소득이 줄어도 물가 부담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면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엔저 전환 이후 상황은 나빠졌다. 당장 수입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생활필수품의 지출 압박이 커졌다. 연초부터 수입 물가의 고공 행진이 반복된다. 월별 ±10%나 뛰면서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피해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기료 인상 요구가 거세다. 이 밖에 밀가루·식용유 등 필수 소비재의 가격 인상이 줄줄이 예고된 상태다.
당장 소비가 줄었다. 전국 슈퍼마켓의 5~6월 판매액은 연속 하락세다.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식료품의 하락 폭이 특히 크다. 소비 감소로 판매 업체는 일단 가격 인하에 나섰다.
물론 벤치마킹 사례도 있다. 전국 642개 점포를 운영 중인 고베물산을 보자. 이 매장은 저가 판매로 유명하다. 다만 원료 메이커로부터 납품 가격 인상 요구가 계속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선택은 지금까지 유지해 온 ‘저가 고수’다. 가격 인상 압박 회피는 ‘제조·판매’의 일체 강화로 풀어볼 요량이다. 회사는 외부 환경에 가격 결정권이 휘둘리지 않도록 생산·제조·판매를 한꺼번에 통제해 인상 압박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대규모 농장을 비롯해 목장·양계장은 물론 최근엔 어선까지 매입했다. 식품 공장만 전국에 20개를 보유했다. 이들 돌파구로 여름 소비 시장의 저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한계는 있다. 모든 원료를 생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