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악’ 소리 나는 공무원 시험 현황·실태
입력 2013-08-12 11:33:53
수정 2013-08-12 11:33:53
응시자 갈수록 늘어…최고 경쟁률 774대1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은 한 해에 45만 명 이상이다. 안전행정부·법원행정처·국회사무처·경찰청·소방방재청 등에 따르면 올해 행정·입법·사법부 국가공무원 공채에 원서를 제출한 인원은 모두 35만8678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지난해 경기도 등 17개 시·도 지방직 7·9급 공무원 공채 시험 응시자와 올해 지방 교육직 공무원 9급 시험 응시자 9만4623명을 더하면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 공채 지원자 수는 45만3301명에 달한다. 공무원 시험의 결시율이 20~30%로 높은 편이고, 여러 시험을 치르는 중복 응시자가 포함됐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45만 명은 어마어마한 숫자다.45만 명이란 규모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11월 시행된 2013학년도 수능 응시자 62만1336명 중 일반계고 재학생 수인 43만6839명을 웃도는 숫자다. 또한 올해 대학 졸업자는 4년제와 2년제를 합쳐 48만여 명 정도다. 즉 한 해 수능에 응시하는 고교 졸업생 수와 대학 졸업생 수와 비슷한 숫자가 공무원이라는 관문 앞에 몰려 있는 것이다. 또한 서울 서초구(43만8128명), 경기도 평택시(43만8064명), 의정부시(42만9881명)의 인구보다 많다. 흔히 인구 50만 명이 넘으면 대도시라고 불린다. 이만하면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족)’ 45만 명을 모아 도시를 하나 만들어도 될 규모다.
불황으로 취업난이 심해지고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평택시 인구보다 많은 인원이 매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을 졸업해도 오갈 데 없으면 “9급 공무원이나 하지 뭐”라는 말을 캠퍼스 내에서 흔히 접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 졸업생들은 증권사나 대기업 등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한 해의 공무원 총 선발 인원은 9667명이다. 이는 고위직이건 하위직이건 평균 46.9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관료 사회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
고교생·직장인·주부까지 뛰어들어
2013년 여름, 하위직 공무원을 하겠다고 나이·학력·경력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난 7월 27일 치러진 국가직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안전행정부 집계로 20만4698명이 원서를 제출했다. 지난해보다 4만7000여 명이 늘었다. 공무원 공채 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원자가 20만 명이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응시자 13만7639명에서 5년 만에 1.5배 증가했다.
올해 응시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전국 시험장도 지난해보다 55개 늘어난 249개에 달했다. 세종시에도 처음 시험장이 설치됐고 경기 북부 지방은 양주시, 경기 남부는 용인시에 시험장이 추가로 개설됐다.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도 대거 시험 감독관에 동원돼 올해 감독관 숫자는 1만2000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1.5배 증가했다. 안전행정부는 출제비용과 시험지 인쇄비용 등 전체 관리비용으로 지난해보다 10억 원 늘어난 44억 원의 예산을 썼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지원자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올해 처음 ‘선택과목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고졸 출신의 공직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시험 과목에 변화를 줬다. 행정법총론과 행정학개론이 필수였지만 올해부터는 사회·과학 등 고교 이수 과목이 추가된 다섯 과목 중 두 과목만 선택하면 된다. 올해 채용 예정 인원은 행정직과 기술직 등 모두 2700여 명으로 작년보다 600여 명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은 75 대 1까지 치솟았다.
선택과목제의 영향으로 올해 9급 공채에서 고교생 응시자가 늘어난 게 특징이다.
지난 6월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공직 박람회’에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대학생 등 취업 준비생 외에도 특성화 고교생 2만여 명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무원 시험 사설 학원에는 최근 방학을 맞아 등록한 고교생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 학원은 전체 수강생 400여 명 중 고교생이 20여 명으로 약 6%에 달했다.
이와는 별도로 예년처럼 이번 지원자들도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시험장에는 사회 초년생인 20대 후반 외에도 고등학생, 가정주부, 40대 중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의 지원자가 눈에 띄었다. 출산·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가정주부나 명예퇴직 등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중·장년층의 공무원 시험 도전도 늘고 있는 추세다. 현재 공무원 공채 시험 연령 제한은 폐지된 상태다.
공무원 시험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2004년 9급 공무원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26.4세였지만 2012년 29.1세로 2.7세가 많아졌다. 7급 시험도 마찬가지로 2004년 28.9세에서 30.3세로 높아졌다. 이는 중·장년층의 지원이 많아진 이유와 함께 경쟁률이 치솟으면서 시험 준비 기간도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까지 늘어난 원인도 있다는 분석이다.
공무원 직종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올해 ‘공무원 100만 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말 공무원 수는 99만4291명으로 전년보다 약 2만5000명 늘었다. 국가공무원 공채가 마무리되면 올해 공무원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9급 공무원 시험은 공무원 시험 중 가장 많은 수를 선발한다. 다음으로 지방교육직 9급(1770명), 사회복지직 9급(1439명), 경찰순경공채(1332명), 국가직 7급(630명), 소방공채(613명), 국가직 5급·법원 9급(380명)순이다. 가장 적은 수의 공채는 국회사무처 9급으로 8명을 선발한다. 직렬·직종에 대한 관심보다는 공직 사회에 발을 들이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는 이들이 많아 선발 인원에 많은 시험에 지원자가 몰린다. 합격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보려는 의도다. 응시생들은 특정 전문직 외에는 대부분이 한 해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되는 공무원 시험을 모두 응시한다. 지난 7월 말에 있었던 국가직 9급 공무원 응시자 대부분이 8월 24일에 지방직 9급 시험도 보고 9월에 있을 서울시 공채도 지원한다. 시험 과목이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응시자들은 어떤 직렬·직종을 선호할까. 경쟁률 순위로 나눠보면 가장 치열한 시험은 국회사무처 8급이다. 올해 13명 선발에 무려 1만69명이 지원해 77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2006년에는 공무원 시험 사상 최고 경쟁률인 979.1 대 1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장애인 쿼터 1명을 제외하면 경쟁률은 1011 대 1(19명 모집에 1만9216명 지원)까지 올라간다. 국회 근무는 연봉도 다른 직렬보다 높고 자긍심과 보람도 더 크기 때문에 지원자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또한 최근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도 서울 여의도의 국회 근무를 선호하게 된 요인이다.
국회 근무 공무원 인기 ‘하늘 찌를 듯’
이어 입법고시는 18명 선발에 4500명이 지원해 25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입법고시는 국회사무처에서 실시하는 입법부 일반직 5급 공무원 공채 시험이다. 2000년 이후 선발하는 인원이 연간 13~25명에 불과해 각종 고시 중 경쟁률이 가장 높은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입법고시 출신은 국회 사무처의 주요 요직을 휩쓸고 있다. 특히 입법조사관은 공무원을 그만두더라도 높은 몸값으로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에 영입될 수 있어 전망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지원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입법조사관은 주로 입법고시 출신이며 국회 법안 제·개정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입법조사관은 이에 대해 타당성을 조사한 뒤 검토 보고서를 첨부해 법안과 함께 제출하는 등의 일을 한다.
마찬가지로 고시인 법원행정고등고시가 경쟁률 215.4 대 1이고 14개 시·도 지방직 7급이 150.1 대 1, 국회사무처 9급이 126.3 대 1, 국가직 7급이 113.3 대 1, 서울시 지방직 7급이 105.3 대 1순으로 나타났다. 당연하겠지만 고위 공직자를 뽑는 시험일수록 경쟁이 치열했다. 반면 사회복지직 9급과 지방교육직 9급은 경쟁률이 각각 17.1 대 1, 17.9 대 1로 공무원 직종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한편 공무원 시험 제도의 변경 사항을 체크해 보면 앞으로 공무원 선발 때 선발 예정 인원 중 지역 대학 졸업자 등 지역 인재를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도록 하는 ‘지역 인재 채용 목표제’가 5급에서 7급으로 확대된다. 지금까지 공무원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따라 5급 공무원을 임용할 때 채용 목표제 비율에 따라 서울을 제외한 지방(경기·인천 포함) 출신 인재들을 선발해 왔다. 현재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과열되다 보니 지역 인재 안배 제도에 대해 응시자들은 역차별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준비생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분야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청년층(15~29세) 61만4000명 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 31.9%인 19만6000명에 달했다. 즉 취업 준비생 3명 중 1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성장 시대 채용 시장의 위축으로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젊음을 저당 잡히고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을 꿈꾸는 공시 열풍은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