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연 1300만 원 지출…잔인한 ‘희망 고문’

4년 차 공시족 이모 씨의 고군분투 수험기

20, 30대가 선호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이라고 했던가. 공무원 고시학원이 즐비한 노량진에는 20, 30대 젊은 청년들이 넘쳐나고 있다. 9급 일반 행정직을 준비 중인 4년 차 공시족 이수현(가명·29) 씨도 그중 하나다. 이 씨는 2010년 4월 노량진 주민이 됐다.



먼저 등록한 학원과 10여 분쯤 떨어진 거리에 월세 35만 원짜리 고시원 방 한 칸을 얻었다. 대학에 다닐 때 구했던 월세방보다 비싼 값을 치렀지만 오히려 방은 더 좁아졌다. 학원 근처에 있는 월세 70만 원짜리 풀 옵션 럭셔리 고시원의 유혹을 뒤로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딱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비좁은 방을 계약했다. 학원에서 20분 떨어진 3.96㎡(1.2평)짜리 쪽방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유명한 공무원 학원의 9급 종합반 강의도 등록했다. 다섯 과목에 35만 원과 교재비 22만 원을 합하니 57만 원이다. 두 달에 걸친 수업료다. 여기에 고시원 월세까지 내고 나면 90만 원이 훌렁 사라져 버렸다.


첫해 강의료만 346만 원 들어
공시족 생활은 첫날부터 빡빡했다. 학원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되지만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학생들은 오전 6시 반부터 몰려왔다. 그 역시 새벽 공기를 가르고 나와 늘 앞자리에 앉았다. 학원 강사들은 하나같이 종합반 5과목은 ‘두 달 동안 진도를 훑는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단과반(한 과목만 집중 수업하는 반)을 들으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단과반의 가격은 과목당 15만~20만 원 선이다. 종합반 2개월에 57만 원도 모자라 단과반까지 들어야 했다. 돈이 아깝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 무표정 한 학생들은 제각기 발걸음을 바삐 한다. 이 씨 역시 밥이 있는 고시원으로 향한다. 고시원 등록 때 한 장에 3500원 하는 식권을 몇 장 사뒀다. 식비를 포함해 집에서 보내 주는 한 달 용돈은 30만 원이므로 되도록 싸게 먹어야 한다.



‘게 눈 감추듯’ 급히 밥을 먹고 다시 학원 수업을 듣는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 패턴은 똑같다. 이후 12만 원을 주고 고시원 근처 독서실을 한 달 등록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 고시원-학원-독서실이 주된 경로다.

종합반 과정을 마친 두 달 후 단과반 등록을 했다. 과목당 15만 원 하는 수업 세 개와 교재를 사니 57만 원이 들었다. 처음 종합반에 들 때 들어간 비용과 똑같다. 단과반에 들면 돈이 덜 들어갈 줄 알았던 기대는 무너졌다. 칠판 닦이나 교재 복사 등 허드렛일을 하는 학원 강사 보조 역할을 하면 학원비를 면제해 준다기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궁색해 보여 생각조차 그만뒀다.

대신 밥값을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고시원 밥 대신 노량진의 명물 1000원짜리 컵밥을 찾기 시작했다. 공시족들은 빨리 먹을 수 있고 저렴한 컵밥을 자주 찾는다. 처음엔 ‘저런 음식을 왜 먹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인스턴트 햄과 각종 조미료를 섞어 놓은 주먹밥 한 덩이는 시간도 돈도 부족한 공시족들에게는 최적의 음식인 셈이다. 그래서 서서도 먹고 인근 매장 한쪽에 빈 공간을 찾아 자리를 깔고 먹기도 한다. 뱅글뱅글 도는 안경을 끼고 후줄근한 트레이닝복과 아무렇게나 신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컵밥을 먹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오늘도 책에 파묻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빤한 하루를 보낸다. 달라진 점이라면 새벽 5시 반이면 습관적으로 일어나 학원으로 뛰어가던 것에서 이제는 오전 9시나 10시쯤 일어나 대충 씻고 독서실에 간다. 4년간 공부했으니 이제 강의를 듣지 않고 자습 위주로 한다. 공시족 1년 차 이상은 대개 그렇다. 그래도 고시원비나 독서실비, 용돈·식비·책값에 드는 잡비는 매년 똑같이 나간다. 있는 책으로 공부하고 문제집 정도 사서 풀면 될 것 같지만 매년 법령이나 규제 등이 바뀌기 때문에 새 책을 사지 않을 수도 없다.


개인적·사회적 비용 눈덩이
학원비를 줄여볼 요량으로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지도 오래다. 단과반 수업료에 비해 2만~3만 원 저렴해 12만 원 정도 한다. 또 모든 과목을 지원하고 있어 오랜 기간을 공부해도 부담이 없다. 유명 강사들의 좋은 강의를 반복해 공부할 수 있다 보니 모르는 부분을 넘기지 않고 확실하게 공부할 수 있다. 가끔은 공시족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동강(동영상 강의) 공유할 사람 구해요’ 문구를 뒤지기도 한다. 이 비용마저 아끼기 위해 동영상 강의를 두 명이서 공유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불법이지만 돈을 아낄 수 있다면 개의치 않고 ‘동강 공유자’를 찾는다.

‘2년 정도만 준비하면 되겠지’라는 각오로 시작했던 이 씨의 수험 생활은 어느덧 4년이 훌쩍 넘었다. 2011년, 2012년, 2013년 9급 일반 행정직으로 서울시·국가직·지방직 등 수차례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하는 상념에 사로잡힐 때쯤 친구가 그를 툭툭 쳐 깨운다. 법학과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동창 민영이도, 사범대를 나와 임용 고시를 준비하던 재식이도 이 씨와 같은 수업을 듣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합격이란 목표로 딱딱한 철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공시족으로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 씨의 경우를 계산해 봤다. 공무원 시험 분비를 시작한 첫해에는 다른 때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기초 과목을 정리하는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해부터는 복습과 자습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강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 씨는 첫해 고시원·독서실·강의료·책값·식비·용돈을 모두 포함해 1520만 원이 들었다. 둘째 해부터는 강의료가 크게 줄어 매년 1308만 원을 쓴 것으로 나왔다. 시험 준비기간을 2년으로 가정하면 연평균 지출액이 1414만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한국 공시족들이 쓰는 사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올해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모두 45만3301명(중복 응시 포함)에 달한다. 이들 매년 1308만 원을 시험 준비에 지출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5조 9291억7708만 원(45만3301명×1308만 원)이란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공시족으로 사는 대가는 이런 직접 비용에 그치지 않는다. 청춘의 황금기를 시험 준비에 바친 데서 발생하는 기회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것은 합격 커트라인 근처까지 올라갔던 경험 때문이다. 두세 문제만 더 맞히면 멋진 옷을 빼입고 양손 가득 부모님 선물을 사들고 어깨에 힘주고 고향에 내려갈 날이 올 것 같은데, 딱 거기까지다. 비상구가 코앞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잔인한 희망 고문 앞에 그는 오늘도 노량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채용 인원은 어차피 한정돼 있어 대부분의 공무원 준비생들이 고배를 마시게 될 텐데, 이에 따른 개인적·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극단적으로 치우친 직업 선호 현상 때문에 자칫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는 등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마저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