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경제 민주화 넘어 창조 경제로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창조 경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정책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이나 인도의 기업처럼 낮은 임금으로 승부하면 이겨낼 재간이 없다.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방법밖에 없다. ‘창조 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연구·개발(R&D)과 신사업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품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를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익이 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단기적 수익에 집착하는 자본으로는 어렵다. 수년 또는 수십 년을 내다보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단기 주가 상승에만 집착했던 전문 경영인들이 지적되며 이러한 자본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의 단기주의를 통제할 수 있어야만 고성장 기업(hight-growth companies)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일자리도 늘어난다. 미국에서 전체 기업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고성장 기업들이 전체 신규 일자리의 40%를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 경제의 원형으로 꼽히는 구글(Google)이 대표적인 고성장 기업이다. 구글은 2004년 기업공개(IPO)를 할 때 일반 주주들이 지나치게 경영에 간섭하면 단기 주가 상승에만 집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 창업자들의 경영 철학과 창의적이고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실현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창업자들이 일반 투자자들보다 10배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 의결권 주식을 보유했다. 창조 경제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에서 구글과 같이 차등 의결권을 통해 오너 경영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기업들이 최근 늘고 있다.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창조 경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정책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1주 1의결권 원칙과 소유·지배 일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반민주적 소유 구조로 간주한다. 적은 지분만 소유하고도 그 이상의 지배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순환 출자 구조를 금지하려고 한다. 차등 의결권 주식은 금기어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렇게 소유 구조만 규제하려는 게 아니다. 지배 구조 규제도 강화하고자 한다. 이사회의 감독 기능과 소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해 지배 주주의 지배권을 강력히 통제하려는 상법 개정이 진행 중이다. 결국 소유 구조와 지배 구조를 사전적으로 규제해 오너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것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기업집단에서 초래될 수 있는 오너의 지배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오너가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지난 6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으로 불리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법안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 규제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아예 그 전 단계인 소유 지배 ‘구조’ 자체를 규제하려는 것이다. 역시 우리나라만의 규제들이다. 입구와 출구를 빈틈없이 틀어막으면 오너의 사익 추구 행위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창조 경제가 질식당할 수도 있다. 창조 경영이 숨 쉴 수 있도록 입구는 열어 놓아야 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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