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자산 관리 최강자’ 삼성증권의 다음 선택은

‘양동작전’ 돌입…기업·법인 집중 공략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자사의 경쟁력을 꼼꼼히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 경쟁사의 경영전략을 꾸준히 체크하는 일도 절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증권업은 극도의 불황에 빠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증권사들은 구조조정, 경영전략 재검토, 신사업 발굴 등 ‘지기(知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연히 증권사들은 ‘지피(知彼)’를 하는 데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이런 움직임 가운데 재미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물론 가장 민감하게 ‘지피’를 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브랜드 파워’일 것이다. 국내 최대의 그룹사인 삼성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이 국내 최대의 증권사 중 하나로 성장한 비결로 이 브랜드 파워 그리고 삼성그룹 내 시너지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삼성증권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확실한 터닝포인트에 대해 증권업계 사람들은 ‘강력한 자산 관리 영업’ 때문으로 평가한다. 자산 관리 영업의 장점은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성이다. 자산 관리 영업은 쉽게 말해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남기는 일이다. 금융 상품은 대부분이 어느 정도 ‘투자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구입한다. 당장의 생활비도 없는 투자자가 펀드에 투자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 보니 자산 관리 영업에 주력하면 자연스럽게 고액 자산가의 비중도 높아진다. 즉 고객의 자산이 늘어날수록 더 큰 금액의 재투자가 이뤄지며 매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상품마케팅실’ 부사장급으로 격상
실제로 삼성증권은 지난 회계연도에 연결 기준 174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9.4% 감소한 수치지만 작년 업계 전체의 순이익이 반 토막 난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선방한 결과다. 지난해 삼성증권의 자산 관리 수수료 매출은 323억 원에 달한다. 웬만한 중소형 증권사의 영업이익 전체와 맞먹는 수준이다.

고액 자산가들도 삼성증권에 특히 많다. 삼성증권의 리테일 고객 예탁 자산(주식+예탁금+금융상품)은 2012년 4분기에 116조5000억 원을 기록하면서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이 중 고액 자산가 고객의 자산은 59조2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의 이런 성장 히스토리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는 ‘자산 관리 영업 강화’가 일종의 큰 트렌드가 됐다. 실제로 최근 들어 웬만한 증권사들은 자사가 ‘자산 관리의 강자’라고 자처한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시장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식거래 규모가 줄어들고 투자은행(IB) 부문 등에서 별 수익이 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그나마 꾸준히 시장이 커지는 자산 관리 영업 부문에 더욱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결과 자산 관리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이다.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고객들은 좋겠지만 증권사로서는 수익성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이 ‘삼성증권’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삼성증권이 ‘자산 관리 영업’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어 성장했지만 자산 관리 영업이 점차 ‘레드오션’이 돼 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전략을 통해 성장할지 궁금한 것이다.

특히 삼성증권은 최근 국내 증권업계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진행하던 ‘해외시장 공략’에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일례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홍콩법인에 대해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전체 직원 중 10분에 1에 달하는 100여 명의 직원들을 그룹 내 타 계열에 전환 배치하며 군살을 뺐다. 이쯤 되면 더 큰 도약을 위해 ‘확실하게’ 몸을 움츠린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삼성증권의 행보를 보면 ‘차세대 성장 전략’은 일종의 ‘양동작전’으로 보인다. 기존의 자산 관리 부문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약점으로 거론되던 브로커리지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브로커리지 확대는 당장의 수익성보다 장기적 포석으로 보인다.

먼저 자산 관리 부문 강화에 대한 의지는 지난 7월 1일 단행한 조직 개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조직 개편의 핵심은 기존의 ‘상품마케팅실’을 부사장급 조직으로 격상한 것과 ‘상품전략담당’을 신설한 것이다. 즉 삼성증권에서 판매하는 금융 상품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다.

자산 관리 영업에서 특색 있는 금융 상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금융 상품에 익숙한 고객들이므로 보다 ‘내 구미에 맞는 상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최근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참신한 금융 상품을 속속 내놓는 중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7월 15일 세계적 독립 운용사인 레그메이슨의 미국 성장주 펀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이 펀드는 해외에서 설정된 역외 펀드로 환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이 있다. 이보다 앞서 3월에는 업계 최초로 ‘자문형 ELS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상품은 투자 자문사가 랩어카운트에 편입할 기초 자산을 선정한 뒤 이 기초 자산에 따라 5개 내외의 ELS에 분산투자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는 게 특징이다.

상품 차별화와 함께 삼성증권이 자산 관리 영업 강화를 추진하는 마케팅 방식은 기존에 비해 더욱 구체적이고 세련돼 됐다. 초고액 자산가 및 법인 고객에 대한 전략은 더욱 치밀해진 게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6회째 진행한 ‘공익법인 재무전략포럼’이다. 이 포럼의 참석 대상은 재단, 협회, 준정부 기금, 공사 등의 공익법인을 이끄는 대표와 실무 책임자다. 즉 저금리 상황에서 채권이나 예금 위주로 구성된 투자 포트폴리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익법인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포석이다.


CEO 대상 투자 세미나도 ‘눈길’
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및 최고재무책임자(CFO)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세미나 ‘분당포럼’, ‘강북 법인포럼’을 개최한 것도 눈에 띈다. 최근 증권사들은 ‘수출 제조업 기업 고객 잡기’에 혈안이 돼 있다. 현재 국내 경제에서 가장 큰 ‘부’를 쥐고 있는 곳이 ‘수출 제조업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번에 바뀌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삼성 등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국내 5대 증권사들이 종합 금융 투자 사업자로 변신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 즉 이제는 기업들이 은행처럼 삼성증권에서 자금을 빌릴 수도 있다. 증권사로서는 기업 대출을 통해 은행의 ‘예대 마진’과 같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증권은 어찌 보면 자산 관리 영업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브로커리지 영업의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사실이다. 꼼꼼히 짚어 보면 단기적인 수수료 수입 확대라기보다 일단 시장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증권의 2012년 기준 브로커리지 점유율은 키움증권(15%)·미래에셋증권(7%) 등에 이은 6위(5.2%)에 그친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은 지난 3월부터 신규 고객(100만 원 이하 휴면 계좌 포함)을 대상으로 모바일 거래 시 올해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또한 이 고객들은 내년에도 업계 최저 수준인 0.010%의 수수료만 낸다.

브로커리지 영업은 특히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거래가 단말기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은 지난 5월 ‘3세대’ IT 시스템을 업계에서 첫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2011년 초부터 2년 반의 구축 기간과 300여 명의 개발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매수·매도 조회 속도가 타 증권사보다 3배 정도로 빨라진다는 게 큰 특징이다.

그러면 왜 삼성증권은 수수료 면제와 대규모 투자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브로커리지 점유율 확대를 노릴까. 업계에서는 대체 거래소(ATS) 설립 허용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대체 거래소는 쉽게 말해 기존 거래소를 대신해 주식거래를 담당할 수 있는 곳으로, 이 제도가 도입되면 한국거래소의 독점 구도가 깨지고 투자자가 어떤 거래소에서 거래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가 일종의 거래소가 되는 것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큰 시장이 열릴 수 있다. 국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삼성증권은 일찍이 ATS에 관심이 많았고 내부적으로 많은 준비가 돼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차세대 시스템 오픈도 이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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