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경제의 ‘가짜 새벽’ 논쟁

성장률 ‘착시’…‘윔블던 효과’ 해결해야

최근 들어 월가를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앞으로 한국에 투자할 때 예상되는 ‘가짜 새벽(false dawn, 혹자는 잘못된 새벽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음)’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2012년 한해가 저물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가 빌딩들은 환화게 불을 밝히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1210

‘가짜 새벽’은 올 2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1%대로 당초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은 통계 기법상 ‘기저 효과(base effect)’ 등에 따른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착시 현상만 제거된다면 한국 경제가 3분기 이후 다시 어려워지고 투자수익률도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 초반으로 내려 잡고 있다. 현재 잠재성장률이 3.7%인 점을 감안하면 소득 갭(GDP gap, 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 상으로 1% 포인트 이상 디플레 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냄비 속 개구리(boiled frog syndrome)’ 등 비관론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런 비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좀비 국면’으로 빠지는 경제 주체들의 경제 의욕을 북돋기 위해 ‘한국판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뉴딜 정책은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 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1930년대 미국 경기는 유효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급락하는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 사태로 대변되는 대공황 국면을 겪었다.

한 나라의 경기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정부가 직접 나서 재정지출을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전해 줘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 케인스의 구상이자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첫 작품이 뉴딜 정책이었다. 최소한 1970년대까지 케인스 이론에 의한 정책 처방은 경기 대책으로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주식시장 외국인 비중 너무 높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경기는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이 상황에 직면해 케인스 이론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 등장한 것이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다. 이 이론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수요보다 공급 측면이 강조돼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세 체계를 개편하고 정부 개입을 줄여줘야 한다는 게 골자다.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임금은 그 어느 국가보다 하방 경직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케인스적인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단순히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도적 틀이 자주 바뀌고 경기 진단과 처방을 놓고 부처 간의 갈등이 심화돼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게 더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뉴딜 정책과 레이거노믹스 가릴 것 없이 복합 처방이 필요한 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정책 당국의 부양책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에서 부양책을 내놓고 다른 한편에서 경제 주체들의 의욕을 꺾어 놓는 역행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확한 경기 진단과 정책 처방이 잘못됐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 증권인, 그리고 증시 관련 모든 이해관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른바 ‘한국 증시의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이다. 이제는 투자자들마저 증시를 외면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고 있다.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그중에서 한국 증시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던 외국자본의 지배 문제인 ‘윔블던 효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윔블던 효과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의 금융회사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들어서는 더 심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40%를 넘어섰다. 외국인 순매수와 코스피 지수 간의 상관계수도 0.7 내외 수준(‘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뜻)까지 높아졌다.


외국자본, 국내 자본 역차별 해소 시급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포트폴리오 성격 위주의 외국자본 확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 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 기능의 선진화 ▷대외 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 발전 단계에 비해 외국인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국부 유출, 경제정책 무력화, 기업 경영권 위협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우려된다.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윔블던 효과’부터 해결하는 게 한국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많은 과제 가운데 아직도 잔재돼 있는 한국 정부의 외자 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화보유액이 논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외자 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자 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자본과 국내 자본 간의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 국민연금 등이 운용 주체 선정 과정에서 외국 회사가 포함되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고 국내 금융사가 포함되면 불안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경제 주체들이 글로벌 시대에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을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만 갖고 있다면 최근과 같은 윔블던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투자자들이 그런 자세를 갖고 있어야 외국 자금의 순기능을 십분 누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주권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 우리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돈과 기업, 투자자가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돼야 한다. 규제를 풀고 인사와 감독권을 시장에 맡기는 게 관건이다. 증권사와 증권인도 본업에 충실하고 경쟁력을 갖춰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줘야 하는 과제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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