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국내 최대 도매시장 가락시장의 비밀

서울 송파구의 가락시장은 국내 농산물 유통의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다. 연간 5조 원이 거래되고 서울 시민이 먹는 농산물의 50%를 공급한다. 가락시장도 다른 도매시장처럼 시대에 맞춰 변신해 왔다. 하지만 1985년 설립 당시의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있다. 바로 물류의 핵심인 하역이다.

가락시장에서는 산지에서 온 농산물을 트럭에서 내려(하차) 경매 장소에 진열한 뒤 중·도매인에게 운반하는 작업이 일일이 손으로 이뤄진다. 지게차가 있어도 이들의 힘을 빌리는 것은 3%에 불과하다. 국내 농산물의 하역 기계화율 34%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가락시장의 이러한 약점은 물류비용을 높이는 한편 농산물 신선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통 구조 개선을 국정 과제로 내건 정부와 서울시가 최근 문제 해결에 착수한 이유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특유의 업무 구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서 하역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1142명. 3개의 하역노조에 소속된 조합원들이다. 하역노조는 1970년대 용산 재래시장 등에서 하역 일을 맡다가 가락시장이 설립된 후 이곳의 하역 사업권을 독점해 왔다. 과거 항운노조가 부산항 등 전국 항만에서 노무를 공급했던 것과 같은 형태다. 하역노조 역시 전국항운노조에 소속돼 있다.

노조이지만 고용주가 없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이라면 노조로 인정받기 어렵겠지만 1970~1980년대엔 이 같은 형태로 설립 신고가 많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당시엔 정부가 합법적인 노조를 통제권에 두기 위해 사업권을 주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 생긴 공영 도매시장엔 이 같은 형태가 많지 않다.

하역노조의 수입은 하역비다.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출하자나 법인, 중·도매인 등으로부터 낙찰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은 뒤 여기서 일정 부분을 하역비로 떼어내 노조에 전달한다. 노조는 이를 출근 일수에 따라 조합원에게 지급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노조가 사실상 용역회사의 기능을 하는 셈”이라며 “하역 설비 도입이나 복지 수준도 노조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하역노조와 시장 이용자들의 이해가 종종 부딪친다는 점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계로 하역을 처리하는 게 낫다. 규격화된 운반대인 ‘팰릿(pallet)’으로 농산물을 출하하면 지게차 등을 이용해 빠르고 경매 장소나 낙찰 업체로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08년 현장 조사한 결과 5톤 트럭 한 대(10~12kg 규격품 기준)를 하역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10만 원, 기계 하역으로는 4만 원이 들었다. 사람 4명이 2시간 동안 일할 분량을 지게차와 운전자 1명이 12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20일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하역노조원들이 수박을 하역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30620


30년간 지켜 온 ‘수작업 하역’

정부나 지자체 역시 물류 효율화를 위해 기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하역노조 입장에서 기계화는 곧 일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하역비가 줄어들고 인원을 줄여야 할 상황에 부닥친다. 하지만 사 측이 없다 보니 인원 감축 대신 기계화 거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변화는 더욱 더디다. 서울시는 하역노조 문제를 놓고 지금까지 4차례 연구 용역을 실시했지만 대안 마련에 실패했다. 노조는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고용주가 없다 보니 사회보험 가입이 불가능한데다 퇴직금 등 복지제도도 허술한 상황이다. 근로시간이 불규칙하고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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