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한국 기업 해킹 주의보, 핵심 정보 빼내 협박…정부 통제 못해

해킹이 중국 사업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조사에서는 중국 진출 미국 기업의 35%가 해킹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힐 만큼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해킹 대상도 다양하다. 기업 비밀이 담긴 e메일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전투기 F-35 등 미국의 초첨단 무기 설계도까지 빼돌리기도 한다.

해킹 피해를 본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정부를 배후로 규정한다. 올 초에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상하이에 있는 중국군 해킹 전문 부대의 정체가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중국에서 이뤄지는 해킹의 상당 부분은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후난성 경찰이 중장비 제조업체 싼이의 임원을 해킹 혐의로 구속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임원은 경쟁사인 중연중과의 회사 기밀을 빼내기 위해 재작년부터 해커를 고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해커를 고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제조업체 관계자는 “흔히 외국인들은 중국이 국가 주도하의 잘 정비된 조직을 통해 해킹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돈을 노린 해커들이 글로벌 기업들을 해킹, 비리 폭로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애플의 최대 글로벌 하청업체인 대만의 폭스콘(사진)도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IT는 ‘업’, 인력 채용은 ‘다운’

경쟁사가 아닌 해커 집단들이 먼저 기업 해킹에 나서기도 한다. 2008년 대만의 정보기술(IT) 부품 제조업체 폭스콘을 해킹했던 해커들은 오직 폭스콘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 위해 해킹에 나섰다. 폭스콘은 중국 내 140만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어 근로자 수로는 중국 내 최대 제조업체다. 애플·휴렛팩커드·델·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다시 말해 폭스콘은 이들 기업들이 사용하는 부품의 사양과 제조 공정 등 기술 전반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해당 기술의 가치가 막대할 것이라고 생각한 해커들은 e메일 해킹 등을 통해 관련 기술을 빼낸 뒤 폭스콘 측에 협박 메일을 보냈다. 요구하는 금액을 주지 않으면 해킹한 내용 전부를 경쟁 업체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폭스콘은 발칵 뒤집혔다. 해커들을 추적하는 한편 자칭린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에게까지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해커들은 경쟁 업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을 놓고 폭스콘과 경쟁하고 있던 비야디(BYD)가 대상이었다. 해커들은 폭스콘에서 해킹한 관련 핵심 기술을 BYD에 넘기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BYD 측은 자신들을 음해하기 위한 폭스콘의 함정이라고 판단해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큰 피해 없이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폭스콘 해킹 사건은 해커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어떻게 돈을 뜯어낼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컴퓨터가 젊은이들에게 친숙해지면서 해킹이 가능한 컴퓨터 실력을 갖춘 인력도 크게 늘고 있다.

해킹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방법 설명서가 거래되는 지하시장이 따로 존재하는 등 해커들이 대거 ‘육성’될 환경도 갖춰졌다. 돤하이신 칭화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중국 내에서만 110만 개 웹사이트가 해킹돼 개인 정보 유출 등으로 1억1000만 명이 피해를 봤으며 물질적 피해는 53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늘어나는 IT 인력을 흡수할만한 기업들이 적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1990년대 애국심으로 중국과 외교 마찰을 빚는 국가들의 웹사이트를 해킹하는 것으로 시작된 중국의 해킹 역사는 2세대 해커들이 컴퓨터 보안 회사에 흡수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제도권에서 자리 잡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해킹에 관심을 가져 높은 IT 지식을 갖췄지만 직장이 없는 젊은이들이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해커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중국발 해킹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브레이크가 없는 실정이다.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IT 보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이유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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