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진실, 맹자 어머니는 몇 번 이사 갔을까?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맹모삼천지교는 말 그대로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씩이나 이사하면서 아들을 가르친 교훈이라는 뜻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기꺼이 이사를 마다하지 않은 그 열성과 지혜는 분명 본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 갔는가의 문제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으니 당연히(?) 세 번 이사 갔을 것이라는 건 잠깐 미뤄두자. 그 말이 정확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맹자와 그 어머니는 처음에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다(장소 1).

왜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았을까. 어떤 주석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맹자의 성찰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다. 대학자에 대한 존경이 만들어 낸 과한 해석이다. 단순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따질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 살았던 것은 가난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묘지 근처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값이 쌌을 것이고 가난한 살림에(분명 맹자네도 묘지 근처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죽고 땅에 묻히는 것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부수적인 일이다.




고사에 등장하는 이사 횟수는 2번

그런데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은 도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어디서 방울 하나를 주워 와서는 날마다 흔들며 놀았단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북망산천 날 부르네 … 애고애고 ….” 그 모습은 바라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칫 상여꾼이나 되겠다 싶은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현대적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맹모는 교육 환경론자였던 셈이다. 가난한 동네에 살면 아들 역시 가난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저잣거리로 이사한다(장소 2. 이사 1). 지금도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은 상업 중심지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 생각에는 가난한 동네에 살아서 생긴 문제이니 부자 동네로 이사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요즘 부모들도 강북 집 팔아 부득불 강남에 전세를 살더라도 자식들을 이끌고 강남의 8학군으로 몰려간다. 강남에 가면 저절로 아이가 좋은 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맹자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전 집이며 살림 다 처분해 봐야 시장에서 겨우 사글세나 얻었을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한 저잣거리에서 맹자가 지내는 꼴이 다시 어머니의 근심거리였다. 맹자는 천 쪼가리 따위를 하나 가득 주워다가 쌓아 놓고는 손뼉을 치며 외치는 게 아닌가. “골라! 골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이러면서 말이다. 그걸 본 맹자의 어머니는 기가 찼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 힘겹게 좋은 환경(?)으로 이사 왔더니 기껏해야 장사치나 만들겠다 싶어서 낙담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맹자 어머니는 다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한 번 해 본 일은 되풀이하기 쉬워서일까. 과감하게 집을 옮겼다. 이번에는 서당 근처였다(장소 3, 이사 2). 아들 맹자는 그제야 ‘학이시습지 불역낙호(學而時習之 不亦樂乎)’ 운운하며 책 읽는 흉내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자라서 맹자는 나중에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 맹자가 그렇게 위대한 학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 덕택이다. ‘장한 어머니 상’을 받고도 남을 어머니가 아닌가. 분명 맹자의 어머니는 교육적 부모의 좋은 본보기다.

그러나 따져볼 게 없지 않다. 우선 ‘삼천(三遷)’이 제대로 이뤄졌느냐의 문제다. 뜻만 통하면 됐지 그런 사소한(?) 문제로 시비하는 건 교각살우(矯角殺牛: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 잘못된 점을 고치려다가 그 방법이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으로 쓰임)가 아니냐고 윽박지를 게 아니다. 특히 고사성어처럼 일단 굳어지면 그 내용의 진위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뜻만 통용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정관념이 아닐 수 없다. 맹자네는 이사를 몇 번 갔을까. 세 번이 아니라 두 번이다. 이사 간 곳이 세 군데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맹모이천지교’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삼천지교’라는 말을 썼을까. 옛사람들은 홀수는 남성의 수, 짝수는 여성의 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라는 숫자 대신 ‘삼’을 썼다.

그렇게 굳이 ‘삼’을 써야 한다면 ‘맹모 삼소(三所)지교’, 혹은 ‘삼처(三處)지교’ 또는 ‘삼재(三在)지교’ 등으로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건 아들을 위해 ‘이사’를 한 어머니의 용기와 지혜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옮길 천(遷)’을 의도적으로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이다. 세 장소가 세 번의 이사로 눙친 것이다. 굳이 시비를 따지자면 이건 일종의 트릭이었던 셈이다. 물론 시시비비를 따진다고 해서 의미가 바뀌거나 변질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서당 옆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사실 이 고사성어에는 더 큰 문제가 감춰졌다고 할 수 있다. 맹자 어머니는 과연 슬기로웠고 교육적이었을까. 자식의 교육 환경을 위해 과감하게 집을 여러 차례 옮긴 모정의 위대함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이 고사를 잘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환경이 자식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어머니였다면 당연히 아들에게 가장 좋을 환경을 찾아 더 늦기 전에 이사를 가야 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어떤 곳이었을까. 당연히 서당 근처다. 그런데 맹자의 어머니는 무리하면서까지 시장으로 첫 번째 이사를 했다. 그것도 가장 비싼 생활비가 드는 곳으로…. 어머니로서 자식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건 분명 눈물겨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다 두 번째 이사한 곳이 서당 근처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아홉 번쯤 돼서야 거기에 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맹자는 그 이전의 환경에 익숙해진 때문에 서당 근처에서 조무래기들 코 묻은 돈이나 빼앗는 건달이나 양아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맹모구천지교(孟母九遷之敎)라는 말이 생겨 어리석은 어머니가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맹자의 어머니가 서당 근처로 이사한 건 그야말로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인 셈이다(물론 처음 이사한 시장에서 아들이 하는 걸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번에는 심사숙고해 서당 근처로 이사했겠지만 만에 하나 그냥 무작정 이사를 했다면 말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랜덤 럭(random luck)’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맹자의 어머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슬기롭되 덜 떨어진’ 사람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맹자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자 그대로 그 배경을 살펴보면 생각과 달리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점이 있다는 점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진짜 제대로 된 맹모가 되는 데에는 차분한 지혜와 명석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저 맹자 어머니의 시늉이나 내다가 부모도 힘들고 아이도 멍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잘된 경우만 봐서 그걸 모르는 척할 뿐이다. 너도나도 강남으로 몰려들어 나라의 교육뿐만 아니라 부동산까지 들썩이게 해서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 되는 현실을 나 몰라라 할 뿐이다. 어설픈 맹모가 아이도 망치고 나라도 망친다. 그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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