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1억 집짓기 프로젝트] “살고 싶은 집은 직접 그려야 제맛이죠”

김병만 Mission 1. 가족 맞춤식 집을 설계하라


최근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서 벗어나 전원주택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직접 건축에 나서면 고비용 때문에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누구나 자기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로망을 반영해 ‘도전의 아이콘’ 김병만이 최근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집 짓기에 나섰다.

이른바 ‘1억 주택 짓기 프로젝트’. 건축주가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공법, 공사 기간 단축 등으로 건축비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실험이다. 건축주 김병만은 단지 전문가에게 의뢰만 하는 게 아니라, 설계·공사·인테리어 등 집 짓는 모든 과정에 직접 나선다. 한경비즈니스는 수개월에 걸친 김병만의 집 짓기 과정을 밀착 취재, 앞으로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개그맨 김병만(37)은 서울 반포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 주거 공간이 아닌 넓은 정원, 자신과 가족의 취향에 맞게 설계된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키워 왔다. 또한 그의 드림 하우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지어 보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김병만은 그동안 방송을 통해 정글에서 나무를 엮고 나뭇잎 지붕을 얹으며 비록 임시 주택이지만 집을 지어 본 경험이 있다. 또한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바람은 ‘전원주택 짓기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저렴하면서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신개념의 보급형 주택을 만들어 보겠다’는 젊은 건축가들을 만나면서 현실화됐다.



2013년 2월 20일 첫 설계 회의

대치동의 한 건축사사무소에 김병만과 건축사, 시공사 대표 등이 모여 앉았다. ‘1억 집 짓기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와 개괄적인 계획을 공유하기 위한 첫 만남이었다. 건축 전문가들은 신개념 주택에 도전하기 위한 사전 조사를 마쳤고 김병만도 집을 지을 부지 선정을 마친 상태였다.

김병만의 집이 들어설 곳은 경기도 가평이다. 가평은 서울 강남에서 약 40분이면 닿을 수 있고 북한강 등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전원주택을 짓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이 지어질 부지는 서울~춘천 고속도로 설악 나들목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신선봉 중턱이다. 가평 일대 병풍같이 펼쳐진 산들을 조망할 수 있고 정남향 조건을 갖춘 661㎡(200평)의 부지다. 지가는 3.3㎡당 약 150만 원, 총 3억 원 규모에 해당된다. 이 부지에 지어질 주택은 주거 생활공간으로 선호도가 높은 122㎡(37평)의 2층 주택으로 정했다.

“사람들은 모두 내 마당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거실에서 바로 나오면 마당이 펼쳐지는 느낌이 살아있는 집을 짓고 싶어요.”

김병만과 건축가들은 이제부터 어떤 재료,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 집을 지을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선 골조를 어떤 재료로 할지 정해야 했다. ‘땅콩주택’으로 알려진 경량 목구조,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RC 기둥 구조 등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서양에서 대중적인 목조 주택은 빠르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진·태풍 등에 취약하고 다양한 공간 구성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철근·콘크리트 주택은 다양한 공간 구성이 가능하지만 여러 공정이 필요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김병만은 “마다가스카르에서 흙을 그대로 벽돌처럼 잘라 구워 집을 짓는 부족을 봤다”며 황토로 짓는 집도 검토했지만 구조적 취약점 때문에 선택 사항 중에서 제외했다. 결국 그는 “집은 우선 튼튼하고 봐야 한다”며 철근·시멘트 벽식 구조를 선택했다. 그는 “단열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이며 이를 염두에 두고 다음 단계인 집의 형태를 어떻게 할지 고민에 들어갔다.

보통 설계사가 제안하는 3~5가지 설계안 중 건축주가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는 방식이 이제까지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면 건축주가 원하는 집의 구조와 형태를 100%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했다. 김병만은 건축가들에게 “다른 사람도 집을 지을 때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 과정이 좀 더 쉽고 간편했으면 한다”며 “그래야 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고 주택 건축이 더 보급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첫 번째 회의를 마쳤다.



3월 6일 블록 쌓기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의 생각을 보다 많이 반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건축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건축 과정이나 도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자기가 갖고 싶은 집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설계를 맡은 디엔비건축사사무소에서 레고처럼 블록을 쌓으며 곧바로 집의 모양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방·거실·부엌 등을 상징하는 블록을 하나씩 놓고 빼면서 공간 크기와 위치를 금방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면만으로는 공간 구상을 하기 어려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회의에 앞서 디엔비건축사사무소 측에서는 스티로폼을 잘라 여러 블록을 준비하고 김병만을 맞았다. 김병만은 한 개당 13㎡(4평)에 해당하는 블록을 이렇게 저렇게 놓으며 집의 형태와 구성을 고안해 나갔다.

“하나하나 블록을 놓으며 조립하다 보니 머릿속에 집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지 입체적으로 그려져요. 재밌는데요.”

건축주와 설계사가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3개월에 걸쳐 건축주 주문에 따라 도면을 수정하며 6~10회 정도의 회의를 거친다. 하지만 블록을 통한 설계는 건축주가 그 자리에서 직접 간단히 설계 작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단 2~3번의 회의만 거쳐 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블록을 하나 놓으면 공사비가 얼마나 추가되는지도 바로 계산할 수 있어 비용을 계속 고려하는 건축주가 견적을 예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디엔비건축사사무소의 조도연 대표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한옥 형태를 제안했다. 블록을 놓다 보니 한옥처럼 ㄱ, ㄴ, ㄷ, ㅁ, ㅏ, ㅜ 등 한글 자음과 모음형으로 놓아졌기 때문이다. 김병만은 이렇게 블록 설계로 만들어지는 집을 ‘한글 주택’이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모두 찬성했다.

건물 가운데 공간이 생길 수 있는 ㅁ, ㄷ자형 건물에 김병만의 관심이 쏠렸다. 중정(中庭)에 강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중정 때문에 열 손실이 크지만 않다면 중정을 꼭 두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베란다에 큰 화분을 많이 뒀어요. 거실에 누워 있을 때 화분들을 보면 편안한 마음이 드니까요. 새로 짓는 집의 거실에 있을 때 중정에 나무를 심어 놓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김병만은 1층에 중정이 가능하도록 5개의 블록을 놓아 ㄷ자형으로 결정했다. 1층에는 방을 두지 않고 넓은 거실과 주방·식당·화장실만 두기로 했다. 넓은 거실에는 중간에 미닫이문을 두어 이를 닫으면 손님이 왔을 때 묵을 수 있는 사랑방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2층은 ㄴ자로 구성해 한 블록에 해당하는 넓이의 열린 테라스를 만들기고 했다. 이 테라스는 김병만 딸의 방과 연결돼 있어 아이가 바로 테라스로 나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아침 볕을 보고 싶은 김병만은 동쪽에 안방을 두고 넓은 창을 내기로 했다. 안방과 연결된 작은 공간에는 교사인 아내가 일할 수 있는 작은 작업 공간과 서재를 마련했다. 화장실은 큰 창을 달아 욕조에서 밖을 조망할 수 있으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병만은 블록 9개로 집의 형태와 구성을 결정지었다. 블록 하나당 건축비는 약 1100만 원으로 설정돼 있다. 즉 9개 블록을 놓았으므로 대략 9900만 원 정도의 건축비가 산출됐다. 마감재나 인테리어 등 추가 비용이 있으므로 약 1억 원대 초반이 될 것으로 견적이 나왔다.

참고로 이 설계안의 견적을 시중 시공사에서 뽑아봤다. 3곳으로부터 받은 공사 견적은 1억9000만~2억200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이 견적에는 조경(1000만~ 2000만 원), 인입비(전기·수도·가스·통신 등 약 600만 원), 인허가 비용 및 세금(1000만 원 이상), 가구 공사(싱크대·신발장·붙박이 등 1000만~2000만 원), 우오수 시설(빗물·하수 1000만 원), 토목비(1000만 원), 정화조(700만 원) 등이 빠진 금액이다. 따라서 약 8000만~1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다 합치면 일반적으로 주택 건축비는 약 3억 원에 달한다.

이제 1억 원대 주택 짓기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 시공비를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3월 13일 ‘나만의 맞춤 집에 들뜬 마음’

이날은 원래 미팅을 갖기로 예정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병만이 해외 촬영을 가기 불과 4시간 전에 불쑥 건축사사무소를 찾았다. 지난 회의 때 결정한 내용을 조금 수정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다고 갑자기 온 것이다. 현관문과 계단의 위치를 바꾸고 아내를 위한 업무 공간을 더욱 아담하게 꾸미는 등 지난 회의 이후 쭉 생각했던 내용들을 풀어놓았다.

설계사는 지난 회의에서 김병만이 정한 대로 도면을 그리고 외형을 3차원 그래픽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집의 외형을 확인한 김병만은 뭔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외관에서도 나만의 스토리를 담고 싶다”며 군데군데 자신만의 표시를 남기고 싶다고 주문했다. 한글 주택인 만큼 정면에서 봐도 한글의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포인트를 주기로 했다. 도전의 아이콘 김병만을 상징할 수 있도록 ‘도전’의 ‘ㄷ’을 2층 안방 부분에 넣었다. 그리고 서쪽 옆면과 천장에 김병만 이름의 ‘ㄱ’을 두 개 넣어 멋을 더했다. 수정 작업을 마친 김병만은 얼마 남지 않은 비행기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공항으로 떠났다.



3월 25일 설계 완료

가평에서 모두 모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과 시공을 맡은 발트하임의 박정진 대표 사무실에서 설계안의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졌다. 이제까지 논의하고 결정된 사항들을 도면과 내·외부 3D 애니메이션으로 김병만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최종안에 대해 김병만과 건축가들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시공만 남겨두고 있다.

“공사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겁니다. 저는 예전에 벽돌도 쌓아 봤고 대형 간판도 만들어 봤고 용접도 할 수 있어요. 시골 아버지 집을 지을 때도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공사를 다 했었죠(웃음). 이번에 전문가들에게 배우면서 집을 짓고 싶어요. 나도 이렇게 집을 지었으니 누구라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날 가평에서는 김병만과 함께 그동안 수고했던 건축가들, 그리고 매니저까지 모두 모여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 촬영을 위해 뉴질랜드로 떠났다.

취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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