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 위기’ 용산 개발 사업, 돌파구 없나

부도 초읽기…‘정치적 해결’ 필요

‘단군 이후 최대의 개발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사업의 좌초를 막기 위해서는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오는 3월 12일까지 금융 이자 59억 원을 막지 못하면 개발 주체의 부도가 불가피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하 용산 개발 사업)은 말 그대로 매머드급 개발 사업이다. 예상 사업비만 31조 원에 달한다. 용산 개발 사업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일대 용산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와 서부이촌동(12만4000㎡)을 합친 56만6000㎡ 부지에 국제 업무 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 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용산 개발 사업은 크게 두 조직에 의해 이뤄진다. 하나는 PFV(Project Financing Vehicle)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다. PFV는 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하는 페이퍼 컴퍼니다. 이 회사에는 코레일을 단독 최대 주주(지분율 25%)로 건설사·사모펀드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를 운영하는 자산관리회사(AMC) 용산역세권개발(주)이다.

이 회사는 롯데관광개발이 지분 70.1%를 가지고 있는 최대 주주다. 시작 당시에는 삼성물산이 지분 45.1%를 가지고 있는 주간사였다. 하지만 2010년 롯데관광개발에 보유 지분을 넘기고 주간사 지위를 내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용산 개발 사업은 애초부터 확실한 사업성 분석 없이 일종의 ‘정치 논리’에 의해 시작된 사업이라는 평가다. 용산 개발 사업은 정부가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진 빚 4조5000억 원을 코레일에 안기면서 시작됐다.

경부고속철은 개통 첫해에 6062억 원의 막대한 경영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에 놀란 정부는 철도 경영 정상화 대책이라는 이름의 방안을 내놨다. 골자는 코레일이 보유한 용산차량기지를 개발하고 이에 따른 개발 이익으로 코레일의 부채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한강르네상스’가 화 키워

여기까지만 해도 당시의 부동산 경기를 따져볼 때 ‘무리’라고 할 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구조 역시 코레일이 민간 사업자에게 땅을 팔아 빚을 갚고 민간 사업자는 그곳을 개발해 이익을 가지면 되는 단순한 구조였다.

문제의 발단은 당시 코레일의 ‘욕심’, 즉 개발 사업에 직접 참여한 데서 시작된다. 코레일은 정부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말 그대로 재정 건전성이나 국민 편의를 우선해야 하는 공기업이다. 그런데 코레일이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민간 개발 사업에 대규모 지분 참여를 한 것이다. 이후 계속해 벌어지는 코레일 대 민간 기업들의 ‘기싸움’은 사업이 자꾸 늦어지는 큰 원인이 됐다.

이보다 더 핵심적인 이유는 2007년 서부이촌동을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포함한 것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변 서부이촌동이 포함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자신의 대표 사업으로 내세우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애초 용산차량기지만 개발하면 되는 사업에서 서울시의 의지에 따라 민간 주택지까지 끼어든 것. 당연히 복잡한 보상 문제로 개발에 필요한 시간이 늦어지고 필요 자금이 더 커졌다.

결정타는 2010년 금융 위기였다. 그해 9월 급격한 경기 악화에 삼성물산이 주간사 지위를 포기하면서 용산 개발 사업은 첫 번째 중단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정치적·사회적 부담 때문에 코레일은 중소기업에 불과한 롯데관광개발에 삼성물산의 모든 권한을 넘겨줬다.

언뜻 보면 롯데관광개발은 재계 최상위권 그룹사인 롯데그룹의 계열사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롯데관광개발은 롯데그룹과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다. 롯데관광개발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의 막대동생 신정희 씨의 남편 김기병 회장이 운영하는 자본금 55억 원의 중견기업이다. 오히려 롯데그룹과는 ‘롯데’라는 명칭을 두고 사업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롯데관광개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출신인 박해춘 회장을 영입해 사업의 선봉장으로 세웠다. 그러나 박 회장의 실적은 홍콩의 한 사모 펀드로부터 115억 원을 투자 받은 것이 전부다.

물론 박 회장 한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 용산 개발에 참여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간보기’만 거듭하고 있는 게 문제다. 코레일 측에 따르면 현재 용산 역세권 개발이 조달한 전체 사업 자금 4조 원 중 78.4%에 달하는 3조1408억 원을 코레일이 부담했다는 설명이다.

코레일 측은 “2007년 10월 공모 당시 재무적 투자자인 우리은행·삼성생명·국민연금·등이 15조 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아직까지도 재무적 투자자의 대출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전략적 투자자인 미래에셋과 CJ 등도 공모 시 오피스, 상업 시설 매입 등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실제 투자 금액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핵심 부지인 코레일 철도정비창 부지가 공사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9.25


‘새 개발 방안 마련해야’

물론 민간 투자자들도 할 말은 있다. 특히 건설사들은 경기 악화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수준이다. 어설프게 투자금을 늘렸다가는 회사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롯데관광개발은 만약 사업이 무산되면 10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본다. 회사의 존폐 자체가 걸려 있는 것이다. 사실 코레일의 경우 3조1408억 원을 부담했다고는 하지만 토지 대금(이자 포함)으로 이미 2조9271억 원을 받아 챙겼다.

난항을 겪고 있는 용산 개발 사업이 벼량 끝에 왔다는 이유는 다름아닌 ‘부도위기’ 때문이다. 당장 3월 12일 만기가 돌아오는 이자가 59억 원이지만 현재 은행 잔액은 9억 원 정도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용산역세권개발(주)은 코레일에 도움을 청했다. 코레일의 자산을 담보로 3073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하자는 것.

문제는 코레일 측이 이 안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코레일 측만 부담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다.

결국 해법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시작됐으니 ‘정치적 해법’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용산이 지역구인 진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후 용산 사업의 해결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서울시, 코레일, 민간 출자사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역시 2월 21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의 부도 위기는 정부의 특단의 조치와 대책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코레일은 2월 21일 민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용산 개발 사업을 공공 단계 개발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이 같은 내용을 정부에 보고하고 자금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년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호황기 때 마련된 계획만 고집할 수 없다는 것.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ABCP만이 아니라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통해 공동으로 자금 조달을 추진하면 된다”면서 “사업 계획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민간 출자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보다 현실적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개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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