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CEO] 이재용 1위…김택진·이수만 ‘두각’

한국인 900명이 뽑은 ‘10년 후 한국의 대표 기업·대표 CEO’



현재 재계는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주요 대기업 창업자의 손자와 손녀에 해당하는 3세대들이 서서히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벤처기업 등을 통해 급부상한 젊은 기업가들이 가세한다.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역들이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향후 10년 동안 활약할 최고의 차세대 최고경영자(CEO)’ 1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랐다. 응답자 9.3%가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EO’ 조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각각 17.9%, 11.1%로 1~2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해 이 부문은 득표율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 차세대 CEO들의 역량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건희 회장 일가에서는 외아들인 이 부회장 외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위)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17위)이 톱 25에 포함됐다. 현대·기아차그룹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위에 올랐다.

LG그룹에서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7위), 신세계그룹에서 정용진 부회장(9위),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10위)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CJ그룹은 이재현 회장(12위),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14위),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15위),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23위)이 톱 25에 진입했다.

정보기술(IT)과 엔터테인먼트 분야 젊은 창업자들도 예상 밖의 강세를 나타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각각 3위와 5위에 올라 이런 흐름을 대표했다. 이들 외에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6위)과 김정주 NXC 대표(8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11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18위), 박지영 컴투스 사장(20위)이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다.



‘벤처 신화’ 김범수 6위·김정주 8위

대기업 전문 경영인으로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16위)과 조준호 LG 사장(19위), 하성민 SK텔레콤 사장(20위),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24위)이 톱 25에 포함됐다. IT 기업에서는 김상헌 NHN 사장(13위)과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20위)가 유망 CEO로 꼽혔다.

금융 업종에서는 이렇다 할 차세대 CEO가 눈에 띄지 않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25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 유일했다.

차세대 CEO 1위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작년 연말 그룹 정기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91년 삼성전자 사원으로 입사한 지 21년 만이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해외 협력 업체 및 거래처 관리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부회장으로서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함께 경영 전반을 챙기는 중책을 맡게 됐다.

2위를 차지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4.11%)은 재계 3세 경영인 가운데 선두 주자다. 2005년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기아차 사장에 임명돼 ‘디자인 경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우디 디자이너 출신인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해 디자인이 강조된 박스 카 쏘울, K5를 선보이면서 자동차 시장에서 기아차 돌풍을 일으켰다.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다.

3위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07%)가 차지했다. 2위와 3위의 득표율 차이는 0.04% 포인트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해 대한민국을 온라인 게임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경쟁사인 넥슨과 손을 잡는 승부수로 큰 화제를 모았다. 자신의 보유 지분을 넥슨에 매각해 1대 주주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지만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4위에 오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0%)도 재계의 주목 받는 차세대 경영자 중 한 명이다. 2001년 기획담당 부장으로 호텔신라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면세점 사업을 키우며 회사의 성장을 주도했다. 과감한 추진력, 강한 승부 근성 등 부친인 이건희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이건희’로 불린다.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도 겸하고 있다.

차세대 CEO 5위로 선정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3.6%)은 대중음악 ‘한류’ 열풍의 주역이다. 인기 가수로 전성기를 누리던 1981년 미국 유학을 떠나 선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경험한 뒤 귀국해 SM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을 설립했다. H.O.T.를 시작으로 보아·동방신기·소녀시대 등 스타급 아이돌 가수들을 발굴해 ‘케이팝’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상헌 13위…권오현 16위

6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3.4%)은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다. 삼성SDS에서 PC통신 유니텔 개발에 참여했던 김 의장은 1998년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한게임을 창업했다. 이후 네이버와 합병해 NHN 성공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 NHN을 떠나 카카오를 창업했다. 2010년 선보인 무료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은 6개월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전 세계 카카오톡 사용자는 7600만 명에 달한다.

7위를 차지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3.1%)은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LG전자의 부활을 이끌었다. 2010년 LG전자는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해 위기에 직면했다. LG전자의 사령탑에 오른 구 부회장은 ‘독한 LG’를 내걸고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추진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스마트폰 부문의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8위 김정주 NXC 회장(3.0%)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NXC는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 업체인 넥슨의 지주회사다. 지난해 엔씨소프트를 인수해 세계 7대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넥슨과 엔씨소프트 매출 합산 기준)로 올라섰다. 26세 때인 1994년 넥슨을 창업해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다.

9위에 오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2.96%)은 2009년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2011년 회사를 백화점 부문과 이마트 부문으로 분할했다. 서로 업태가 다른 만큼 분할을 통해 전문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였다. 그 후 이마트는 ‘업의 본질 회복’을 통해 가격과 상품 경쟁력을 강화했고 신세계백화점은 대형화·복합화를 통해 ‘지역 1번점’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복합 쇼핑몰을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10위를 차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2.7%)은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03년 소버린 사태를 계기로 이사회 중심 경영 등 지배 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강력한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이어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2.3%), 이재현 CJ그룹 회장(2.2%), 김상헌 NHN 사장(2.0%),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9%),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1.8%)이 차례로 11~15위에 올랐다.

박진영 대표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함께 대중음악계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다. 2001년부터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GOD·박지윤·비·별·원더걸스·2AM·2PM 등 스타 가수들을 길러냈다. 이재현 회장은 2002년 CJ그룹 회장에 올랐다.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꾸준히 그룹을 키워 왔다.

2011년 우여곡절 끝에 국내 최대 물류 인프라를 갖춘 CJ대한통운을 인수했다. 김상헌 대표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LG그룹 법무팀 부사장을 거쳐 2008년 NHN에 합류했다. 2009년 CEO에 올라 4년째 NHN을 이끌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06년 그룹 정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롯데쇼핑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시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많은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축소 경영에 나섰지만 롯데는 이때 비축한 실탄으로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2011년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올랐다. 대북 관광 사업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특유의 결단력과 뚝심으로 난관을 돌파해 ‘현다르크’로 불린다.

16~19위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1.6%),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1.4%),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1.3%), 조준호 LG 사장(1.2%)순이다. 이어 박지영 컴투스 사장(1.1%),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1.1%), 하성민 SK텔레콤 사장(1.1%)이 공동 20위를 차지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0.04% 포인트 차이로 23위에 이름을 올렸다. 24위는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1.0%), 25위는 금융권에서는 유일하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0.9%)이 차지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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