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 속지 말라, 사대주의는 정치와 이념에 그치지 않는다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지난 1월 5일은 소한(小寒)이었다. 대한이 소한에게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 아닌 속담처럼 호되게 매운 추위여서 그 말이 그대로 실감났다. 그런데 왜 소한이 대한보다 추운 걸까. 그걸 의심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의 24절기가 중국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음력을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음력으로 착각하기 쉬운 24절기는 태양력, 즉 양력이다. 그 절기가 대강 하루 이틀쯤의 오차로 매년 비슷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음력은 매년 편차가 심해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에 따라 특징지은 계절적 구분이 바로 24절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은 자연스럽게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북경이 있는 화북 지방이었다. 그러니 우리보다 대충 보름에서 한 달쯤 이른 셈이다. 그래서 겨울 끝자락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 입춘이고, 반소매 차림인데 입추가 되는 것이다. 물론 미리 시간 여유를 갖고 대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절기도 사실 중국의 것을 따라 왔다. 그런데 막상 지금 우리는 그게 마치 우리의 고유한 풍속인 양 착각한다. 좋은 것을 두고 내 것 네 것 가리고 따지는 것이 이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뿌리는 알고 살아야 한다. 사대주의나 제국주의는 군대나 돈으로만 힘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정말 가장 심각한 것은 문화적인 것들이다. 가랑비에 솜바지 젖듯이 시나브로 스며들어 삶의 양식을 지속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흔히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일컬어 장삼이사(張三李四)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장씨가 그렇게 많은가. 이렇게 물어보면 금세 눈치 챌 것을 물어보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뜻만 통하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굳어진 것은 그 말이 중국 성씨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3대 성씨는 이·장·왕씨로, 각각 7.9%, 7.4%, 7.1%다. 이 성씨만 합쳐도 무려 총 2억7000만 명에 달한다.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데 북방에는 왕씨가, 양쯔강 유역에는 이씨와 장씨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장삼이사라는 말은 적절하다.



중국에서 온 ‘장삼이사’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김·이·박씨다. 200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김씨가 21.6%, 이씨가 14.8%, 박씨가 8.5%였다. 그러니 굳이 우리 식으로 한다면 이삼김사(李三金四)쯤이 맞다. 굳이 성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까칠하게 구는 것이 구차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무디게 우리의 지식이나 문화를 배우고 쌓아 왔는지 생각하면 그런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을 숙지하는 데 들이는 품이 훨씬 적다는 뜻이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그러나 그런 익숙함 속에 알게 모르게 보지 못하거나 잃게 되는 고갱이가 있다면 그건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 아무리 경제적이라고 한들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희석된다면 하나를 얻고 둘을 잃는 어리석은 짓이다. 익숙해지면 자신의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함포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금세 안다. 당장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그렇게 함포와 총칼을 앞세우고 침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러면 제국주의는 사라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그 양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제국주의는 자본과 기술의 형태로 침략하고 지배한다.

우리가 1997년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때를 생각해 보라.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심리적으로는 ‘우리 자본’이라는 일종의 민족주의적 자본 개념이 있었다. 개발독재 시대의 ‘매판자본’에 대한 저항감은 그렇게 자본에 대한 심리적 국수주의가 어느 정도 형성되게 만들었다.

1997년 3월, 그러니까 외환위기 직전에 미도파 주식이 갑자기 올랐다. 당시 신동방그룹이 미도파 주식을 집중 매수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신동방그룹은 단순 투자라고 해명했지만 그 수준을 이미 넘었고 홍콩의 페레그린 자금이 들어왔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미도파를 소유한 당시의 대농그룹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미도파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더 가관인 것은 이른바 백기사를 자처하면서 대농을 위해 주식을 매입한 기업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회장들이 같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외국의 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신호탄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페레그린과 신동방그룹은 본래의 의도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집중 매도했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물론 그들로서는 손해날 게 없었다. 이미 시세 차익을 충분히 챙겼으니까. 대농은 선대 회장이 세웠고 그룹의 대표 기업이라고 생각한 미도파를 방어하기 위해 밀어 넣은 자본을 불과 몇 달 사이에 날려버렸다. 새로운 업종을 강화하려던 대농의 움직임은 그 일로 좌절됐고 결국에는 그룹 전체가 와해됐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했다면 주가가 올랐을 때 미도파를 처분, 유동성을 확보해 신사업에 투자했어야 했지만 그룹은 늘리는 것이지 줄이는 게 아니라는 관습적 사고가 그런 판단을 막았다. 익숙함이 결국 긴 역사를 지닌 그룹을 통째로 날려버린 셈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외화보유액은 금세 바닥이 났고 결국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금융회사의 부실, 차입 위주의 방만한 기업 경영에 따른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채 급증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결과였다. 이런 허술한 일들이 관행처럼 굳어져 일상화돼 버린 한국 경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실 이미 바로 직전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그런 조짐들이 보였지만 정부와 기업은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거나 우리는 펀더멘털이 튼실하다며 태연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가지 않아 일이 터지고 말았다. 뭐든지 만연하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면 밖으로부터 작은 시련만 닥쳐도 꼼짝 못하고 당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문화 종속이 더 큰 문제

사실 가장 위험한 것은 문화 정체성의 상실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력 침략은 금세 알고 경제나 기술에 의한 침략은 그보다 늦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자신이 종속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문화는 알아채기 어렵거나 알아도 무시하기 쉽다. 가랑비에 솜옷 젖듯이 야금야금 파고든다. 자기 문화의 전통과 정통성 그리고 정체성이 채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들에게 문화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 속에 용해된다.

그리고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의 문화를 상실한다. 그게 어느 정도의 고급문화라면 자기 문화에 자극이 되고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저급한 문화는 그 자극성으로 인해 빠르게 청소년 문화를 잠식한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문화의 종속성은 이미 널리 퍼져 있게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친근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쉽게 그릇된 것을 가려내기 어렵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남의 장단에 춤추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내 것 남의 것 가리고 차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만 들여 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더 익숙해 남의 것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기 전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진짜 고갱이는 금세 사라진다. 24절기가 왜 실제 기후보다 한 달쯤 빠른지, ‘장삼이사’가 왜 우리 성씨가 아닌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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