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판결 놓고 뒷말 무성, 왜?

‘아무래도 납득 안 가’ …법조·재계‘갸웃’

재계를 충격에 빠뜨린 최태원 SK그룹 회장 선고 결과를 놓고 재계는 물론이고 법조계 안팎에서도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1월 31일 법정 구속이라는 선고 형량에 따른 충격도 컸지만 최 회장이 수백억 원의 회사 돈 횡령을 주도했다는 판단에 대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법원이 판단한 것인 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지만 “횡령할만한 이유를 찾아보기 힘들다”에서부터 “경제 민주화 분위기 속에 억울하게 희생된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선고가 끝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세간의 지적에 대해 SK그룹은 말을 아끼고 있다. 선고 이후 줄곧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재판을 통해 다뤄야 할 사항이지 언론이나 여론에 재판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다.

다만 SK 고위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로 당사자인 최 회장은 물론이고 SK그룹 전 구성원이 상당히 충격에 빠진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재판 과정을 통해 하나 하나 소명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31일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선고 공판을 받기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2013.1.31/뉴스1

SK그룹은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

그렇다면 법조계와 재계 등에서 ‘상식적으로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재판부가 사건 전말을 새롭게 재구성한 뒤 최 회장에게 모든 책임을 지웠는데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하면 이런 접근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최 회장이 펀드 출자 및 횡령 과정 전반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최재원 부회장이 관여해 펀드 출자 및 자금 유출이 진행됐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과 전면 배치된다. 법원이 검찰의 수사 내용을 뒤집어 판단한 것도 이상하지만 최 회장이 동생인 최 부회장에게 사건의 책임을 미뤘다고 간주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검찰은 최 회장과 최 부회장에게 각각 징역 4년과 5년을 구형했다. 법원이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면 인신 구속까지 가능한 급박한 상황이었다. 개인의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 최 회장이 본인의 구명을 위해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동생은 그런 엄청난 부담을 선선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법정에서 오고 간 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사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세간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실제 재판에서는 책임 전가와 배치되는 여러 모습이 목격됐다. 공판 내내 최 회장은 ‘형’으로서 ‘동생’을 생각하는 애틋함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23일 최종 변론 공판에서 “동생의 마음을 더욱 잘 헤아리지 못한 불찰이 컸다”며 도의적 책임론을 강조했다. 또 최 부회장에게 선물 투자금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던 사유에 대해 “유산 상속 과정에서 지분을 포기하며 그룹의 위기를 함께 극복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며 개인사를 언급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단기간 사용할 선물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돈에 손을 댔다는 판단도 최 회장의 재력을 감안하면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최 회장은 2008년 당시 비상장이긴 했지만 상장 가능성이 높았던 SK C&C의 지분 44.5%를 보유했었다. 당시 시가로는 1조 원대에 달한다. 검찰은 SK C&C의 주식 담보대출이 쉽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제1금융권인 S은행을 포함해 금융권 대출이 원활히 이뤄졌었다. 담보 가치가 충분했다는 의미다.

1조 원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데도 선물 투자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돈 465억 원을 횡령했다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자금 조성 및 횡령 과정도 상식과 다르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방식을 보면 다수의 개인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반공개적으로 진행됐다. 그나마 펀드 구성과 횡령까지의 과정도 엄청나게 복잡했다.

통상의 범죄에서 발견되는 ‘기밀성’과 ‘은밀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정황은 오히려 펀드 운용사의 판단으로 투자금이 일시 유출된 후 이자까지 포함돼 정상적으로 반납돼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고 횡령에 따른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넉넉한 재력 보유한 회장이 회사 돈에 손댔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최 회장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 액수를 마련하기 위해 들킬 가능성이 높고 제3자의 이목을 끄는 방식으로 회사 돈을 횡령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재계 인사들은 1심 선고 직후 억울함이 잔뜩 묻어 있는 최 회장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재판장님이 많이 검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로서는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제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은 2010년으로 이 사건 자체를 잘 모른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다”라고 호소했다.

10대 그룹 계열사인 대기업의 한 임원은 “최 회장은 평소에도 없는 말을 하지 않고 선이 굵은 경영 스타일로 유명하다”면서 “유죄 선고 이후에 나온 최 회장의 발언에는 본인의 진짜 심경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신 구속을 앞둔 피고인의 진술 치고는 진정성이 배어 있어 법원 판단과 실체적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특유의 경영 스타일로 재판에 임했다. 본인이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는 자세였다.

성과급을 과다 지급해 부외자금을 조성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최 회장은 “방법론적으로 틀렸고 부적절했다. 정상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비용이 만들어지고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부외자금 조성을 최 회장이 주도했다고 검찰은 기소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최 회장은 재판 내내 “세심한 부분까지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낮은 자세를 취했다.

또한 최 회장은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외부의 오해가 가장 힘들었다”면서도 “제 부덕과 불찰에 의한 것이라 송구스럽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다. 2003년 글로벌 사태 때도 최 회장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당시 분식회계 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변호인은 “분식은 1970~198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만든 유산으로 현 경영진의 개입은 미미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재산뿐만 아니라 부채도 있다. 제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분식 등 그룹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상당 부분 피고인(최 회장)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다 범행에 이르렀으며 향후 투명한 경영을 다짐하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인 선고 배경으로 최 회장의 책임지려는 자세를 꼽았다. 이후 최 회장은 이사회와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 방식을 도입, 투명 경영 약속을 지켰다.

재계 관계자는 “문제 회피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해 왔던 ‘돌직구’ 스타일을 감안할 때 본인이 연루됐다면 예전처럼 책임을 인정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남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법원의 판단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재계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정황들이 많은 데도 인신 구속까지 강행한 법원 판단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항소심 과정에서 다퉈야 할 쟁점들이 산적해 있는 데도 구속으로 인해 방어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게 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1심 판결로 국가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최 회장은 올해 SK그룹의 경영 체제를 개편하면서 본인은 글로벌 경제 영역 확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손발이 묶여 버리게 돼 국가 경제에도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확산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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