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리포트] 원유 사이클의 변화… 중동 안정·셰일가스가 유가 잡는다

2012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수출 금액은 1조 달러가 넘었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브렌트유 평균 가격 역시 역사적으로 가장 높았다. 상품 가격의 전반적인 약세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유의 슈퍼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다.

19세기 후반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된 이후 세 번에 걸친 슈퍼 강세 사이클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원유가 처음 생산되던 당시 기업들이 시장 진출과 파산을 반복하면서 수급 조절에 실패해 강세장과 약세장이 반복됐다.

1970년대 아랍 국가들이 자원을 무기화하면서 두 번째 슈퍼 강세장이 펼쳐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들의 수요 증가로 세 번째 슈퍼 강세장이 펼쳐졌다. 원유 가격은 여전히 역사적 고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세 번째 슈퍼 강세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투자증권은 2013년이 원유 슈퍼 사이클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원유 공급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세계 최대의 소비국 미국의 ‘에너지 독립’이다. 에너지 독립의 원동력은 바로 ‘셰일(shale) 혁명’에서 촉발됐다. 셰일가스는 퇴적암층에 매장된 가스를 뜻한다. 그동안 버려진 자원이었던 셰일가스는 시추 기술의 발전으로 ‘가용 자원’이 됐다. 그 결과 미국 내 가스 가격은 유럽의 4분의 1, 아시아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북미에서는 셰일가스 붐이 원유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즉 에너지 개발·생산 회사들이 가스 대신 수익성이 높은 원유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자원은 역시 셰일암에 매장돼 있는 원유인 셰일 오일이다. 타이트 오일은 셰일가스가 매장된 셰일 층에 굳어진 채 지하 퇴적암층에 존재하는 원유다.

그러면 미국의 타이트 오일 생산은 어느 수준까지 늘어날까. 물론 아직까지 미국의 타이트 오일 매장량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8개 광구의 가채 매장량은 33억 배럴 수준으로, 미국의 기존 원유 매장량인 25억 배럴을 가뿐히 넘어선다.

이에 따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EIA 등 국제 에너지기구에서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EIA는 2020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750만 배럴에 달하고 그중 40%를 타이트 오일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에서는 심지어 2020년쯤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 될 것

둘째는 중동의 안정이다. 먼저 이라크는 꾸준히 원유 생산을 늘리고 있다. 이라크는 2012년 일평균 300만 배럴을 생산했다. 이라크의 2013년 예산안에서 원유 수입은 전체 재정수입의 93%를 차지한다. 이라크 정부는 글로벌 메이저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해 생산량을 더 늘릴 방침이다.

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이라크가 갈등과 불안으로 얼룩졌던 지난 30년을 뒤로하고 국가 재건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을 빠르게 늘릴 계획”이라고 평가했다. IEA가 예상한 시나리오 중 중립적인 시나리오를 봐도 이라크의 1일 원유 생산량은 2020년 610만 배럴, 2035년 83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될 가능성 역시 중요하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제 원유 가격 ‘널뛰기’의 주요인이었다. 완화의 핵심 요인은 핵을 보유한 이란과 미국의 화해 분위기다. 브루킹스연구소를 비롯한 글로벌 싱크탱크들은 2013년이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과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환경을 가진 해로 평가하고 있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기 오바마 외교 라인의 성향, 국제사회의 공조, 이란 내부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군사적 해결 방식보다 외교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일괄 타결 방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외교적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가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란 핵 리스크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유화학·건설, 새 패러다임 적응해야

그 결과 2013년부터 장기적으로 유가 하락이 점진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 전반적으로 보면 유가의 하향 안정화는 소비에 긍정적이다. 가솔린 가격 안정과 이에 따른 소비 심리 회복이 나타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가가 안정됨으로써 공격적인 통화정책의 가장 큰 리스크인 인플레이션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주가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경험상 유가가 하락할 때는 특히 유틸리티·운송 업종이 강세를 나타냈다. 물론 유가에 민감한 한국의 에너지 소재 산업재 업종에 대한 우려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가 하락’ 기준에 맞춘 톱다운 분석의 지나친 단순화 논리는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유 및 석유화학 부문을 보자. 석유 정제품을 생산하는 정유 산업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석유화학 산업에서 유가의 하락은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향후 진행될 유가의 하향 안정화에 대해서는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가 하락은 정유·화학 업종 모두에 원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 산업에서는 나프타 가격이 하락해 스프레드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정유 및 화학 기업 모두 비에틸렌 계열 화학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석유화학 산업의 화두는 역시 셰일가스다. 세일가스의 생산 확대와 원료 가격 하락이 촉발한 에탄 크래커(셰일가스에서 나오는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만드는 시설) 증설은 석유화학 업종의 중요한 변화다. 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원가에서 생산되는 나프타 크래커(NCC: 나프타 가공 시설)의 가격 경쟁력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톱픽스(최선호주)는 SK이노베이션이다.

다음은 건설 부문을 따져보자. 오일 샌드, 타이트 오일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유전 개발과 이에 따른 유가 안정은 한국 기업의 수주 환경에 세 가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중동은 발전, 인프라와 정유 등으로 발주 믹스를 바꿀 것이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유전 개발은 단지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통의 이슈이며, 이는 한국 기업에 시장 다변화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한국 기업의 해외 전략은 기존의 중동 중심에서 ‘다자주의’로 전환될 것이다. 이에 따라 건설 업종은 금융 주선과 기획, 개발과 운영 등 밸류 체인의 확장을 이뤄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건설사는 삼성물산·대림산업·현대건설이다.



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한국투자증권 박중제·박기용·이경자·이수정 애널리스트가 펴낸 ‘원유 사이클의 변화: 타이트 오일(tight oil), 이라크 그리고 이란’을 선정했다. 박 애널리스트 등은 2013년이 원유의 슈퍼 사이클상 하락의 변곡점이 될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정리=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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