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전통 산업은 지금] 지역 발전 이끌었던 주역…‘화려한 부활’꿈꾼다

설을 맞아 한경비즈니스가 던지는 화두, 전통산업이다. 누군가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고 첨단 산업 발전을 논하는 요즘, 때아닌 전통 산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산업이 과연 무엇이냐고도 물을 수 있다. 세월과 첨단에 밀려 서서히 잊혀 가고 퇴색돼 간 산업으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한때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었다. 지금도 주목받지 못할 뿐 위기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는 산업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과 눈부신 성과에 대해 연일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항공·우주·신소재 등 고도의 지식 집약적 첨단 산업은 내일의 먹을거리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첨단 이전에 뿌리 산업이 존재했다. 음식료·섬유·화학·금속·일반기계 등 과거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전통 산업이 그 주인공이다.

오래됐다고 해서 다 전통 산업은 아니다. 특허청이 발간한 ‘전통 산업 지식재산 길라잡이’에 따르면 전통 산업의 일반적인 특성은 전통성·집적성·적응성·부가가치성 등을 지닌다. 다수의 전후방 연관 산업이 집단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환경 변화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전통 자원과 전통 기술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일례로 보성 녹차는 지역 특산품인 녹차 자체의 매출뿐만 아니라 녹차 음료 등 가공 산업, 녹차 체험 등 관광 상품 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전통 산업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와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돼 소외돼 온 것이 사실이다. 전통 산업과 IT산업 사이의 생산 격차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확대돼 산업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실제로 전통 산업이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전통 산업 기업의 매출액은 연간 5억 원 미만이 34.1%로 그 규모가 매우 영세하다. 전통 산업 기업이 고용하는 종업원은 5인 이상 10인 미만이 31.7%로 가장 많다.



서울의 전통 산업 재조명

김재덕 서울시 경제정책과 특화산업팀장은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전통 제조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점차 가격 경쟁력에 밀리면서 영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영세성은 상품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자재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다. 인력이 대부분 고령화돼 있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젊은 인력이 기피하면서다.

하지만 ‘전통’의 또 다른 특징은 계승·발전에 있다.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도 오랜 생명력으로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전통 산업이 적지 않다. 고창 복분자, 한산 모시, 원주 옻, 울릉도 호박엿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친 결과 지역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고유의 전통 산업이 있다. 종로3가 귀금속, 을지로 인쇄, 성수동·중구 염천교 일대 수제화 등이 그것이다. 광장시장의 한복이나 약령시장의 한약도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전통 산업에 속한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공통점은 영세한 환경 속에서도 매일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허름한 건물 속에서 일하며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종로 광장시장 건물 한 쪽방에서 한복 바느질을 하는 김정숙 (52)씨는 “이곳에서 숙식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다. 한복은 선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손바느질을 해야 맵시가 산다”고 자랑했다.

기계와 비교하면 속도나 정교함에선 뒤질 수 있지만 고유의 ‘멋’을 살리는 데는 첨단 기술이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지금부터 서울 곳곳의 전통 산업을 하나씩 만나보자. 흔히 지나쳤던 그 장소에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 우리의 전통이 있다.



종로3가 귀금속

서울 종로구 묘동 53 일대(14만855㎡)에는 귀금속 산업이 밀집해 있다. 대로변에 많은 귀금속 판매점 이외에도 안쪽 골목마다 연관 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 청계천에 기초 산업들이 생겨날 때부터 시계·금은보석 산업도 자리 잡아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를 자랑한다. 원자재 유통, 제조, 도·소매 등이 다 이곳에서 이뤄진다. 공장 수만 500여 개, 총 2915개 업체들이 귀금속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얼리 업체 ‘주어링’ 최점락 대표를 따라 한 공장에 들어가 봤다. 공정에 따라 디자인부터 깎고 다듬고 광택을 내는 작업까지 분업화돼 있다. 이곳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일하고 있다. 60대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20대는 컴퓨터를 많이 활용한다. 하나의 샘플을 완성하면 기계를 활용해 빠르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귀금속은 전통 산업 중에서 현대화에 성공한 대표 산업이다.


정원헌(61) 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 회장은 “주얼리 산업은 유일하게 중국 제품이 침투하지 못한 영역이다. 종로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이곳에서 직접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전통 방식과 첨단 기계의 융합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 이후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주얼리 시장이 ‘예물 시장’으로 축소되며 점진적으로 악화 일로를 걸었지만 디자인 인재를 육성하고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이곳 귀금속 단지에는 온기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문화·관광산업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서울시가 지역 전략 산업을 육성하려는 취지에서 종로 귀금속 단지를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선정하고 앵커 시설(종합지원센터)인 ‘종로 주얼리 비즈니스센터’ 예산을 편성해 사업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앞으로 공방 거리, 체험 거리 등이 조성되고 숨어 있는 장인들이 고객과 만나는 장으로 펼쳐질 계획이다. 정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생산 업종의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인재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동안 사치 산업이라는 오해를 받았다”며 “도시 집적화 산업이자 문화 산업으로 도약하는 주얼리 산업의 내일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성수동·염천교 일대 수제화

수제화는 의류·패션 분야의 대표적인 전통 산업이다. 가죽에 그림을 그리고 자르고 붙이며 구두 한 켤레를 완성하기까지는 5~6번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부자재만 30여 개가 쓰인다. 서울의 대표 수제화 밀집 지역은 성수동 일대다. 이곳에 약 350개의 구두 제조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금호·명동·충무로 등에 퍼져 있던 공장과 업체들이 저렴한 땅값을 찾아 몰려왔고 구두 제조부터 피혁 제품, 부자재 등이 다 한데 모여 있다.

성수동 수제화의 특징은 주로 유명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진이 적고 그나마 중국 시장에 밀리며 점점 침체됐다. 기술은 있지만 제품 인지도 저하로 소규모 하청 영세업자로 전락하는 업체가 많고 열악한 작업 환경에 젊은 인력이 기피한다.

사려져 가는 전통 수제화 산업을 지역 특화 산업으로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 서울시와 성동구청 등이 산업 정책적 지원에 나선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구두 공동 매장을 개설하는 등 2015년까지 디자인·제작·판매·지역마케팅 등 다각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곳에는 최근 자생력을 키우려는 업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성동제화협회를 중심으로 성수 수제화 공동 매장(SSST)을 오픈하고 구두 전문 기능 교육을 위한 수제화 직업교육장도 열었다. 공동 대응력과 시너지 효과를 위해 수제화 협동조합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당장 눈에 띄게 달라진 변화는 없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성수역 일대보다 조금 먼저 수제화 타운을 형성한 지역은 서울 중구 염천교 제화거리다. 1950년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도매업을 시작했다. 이곳 수제화는 명동의 제화점 구두보다 값이 저렴해 인기를 누렸다. 도매업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점포마다 여성화·남성화·댄스화 등 특정 품목으로 제한해 판매하고 있다. 주로 1층에서 판매하고 2층에는 공장이 있다. 이곳 역시 구두 장인들의 나이는 60~70대다.

하지만 수제화에 대한 수요가 줄고 저렴한 중국 제품에 밀리면서 현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염천교에서 만난 한 상인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 하루 3~4켤레 팔면 많이 판 것”이라며 몇 달째 밀린 전기세 고지서를 보여줬다. 서울 도심에 자리해 월 임차료는 165만 원에 달하지만 매달 임차료 내기도 팍팍한 상황이다. 이곳엔 현재 50여 개 업체가 남아 수제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장시장 한복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제작하던 우리의 한복도 대표적인 전통 산업이다. 현재 서울에서 한복의 제작·유통 등이 한데 모인 최대 집적지는 종로5가의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은 먹을거리, 구제 패션, 농수산물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는 전통 시장이지만 한복 유통에 있어서도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구·진주에서 생산되는 한복 원단이 모두 서울로 집결해 다시 지방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복 관련 업체들이 생겨났다.

현재 이곳에는 1000여 개 업체와 3000여 명의 관련 종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한복 도소매는 물론 신발·가방 등 관련 부품 업체, 금박·은박·자수 업체, ‘바느질 방’으로 불리는 500여 개 한복 생산 업체 등이다.

특이한 점은 광장시장을 둘러싼 건물 2층 이상은 대부분 ‘바느질 방’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 보면 7~33㎡(2~10평) 남짓한 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층 매장에서 영업하면 이곳 바느질 방에서 한복을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고춘자 의상실을 운영하는 고춘자(48) 장인은 “개인적으로는 딸까지 3대째 한복을 만들고 있지만 점점 기술자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복 수요가 급감한 데다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일을 젊은 세대가 기피하기 때문이다. 최근 명절 특수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감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광장시장의 한복 관련 공실 점포가 30% 늘었다.

한복은 손으로 만들고 고유의 선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대량생산할 수 없지만 일부 아동 한복과 남성복은 중국·베트남·북한 등에서 제작하면서 점차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조성근 우리한옥 한복 대표는 “여성 한복 저고리와 같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부분은 아직 기술이 필요해 할 수 없어 시장을 지키고 있지만 한복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통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에서 지금 광장시장은 제2의 부흥을 외치고 있다. 올해부터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한복 체험관을 만드는 한편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자체 이벤트 및 행사를 계획, 진행 중이다.




약령시장 한방

서울 제기동·용두동 일대 약령시장(28만688㎡)은 총 1044개의 업체가 모여 국내 최대 규모의 소비지형 한약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약재 및 의약재 도·소매 16.7%, 약국·한약국 16.6%, 한의원 10.9%를 비롯해 한약방, 한약재 가공·제조, 한약 수출입 업체가 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60년대 청량리역과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약재가 유통되며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한약업사 시험제도가 없어진 이후 명맥이 끊긴 한약업사들도 이곳에선 40여 명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약재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낮아지는 등 시장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조재흥 우남한약방 원장은 “우리나라 보건 의학을 담당했던 한약이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약령시장이 꾀하는 활성화 방안은 먹을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가능한 관광 상품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화장실·주차장·쉼터가 없는 것을 약점으로 분석하고 올해 정부 지원을 받아 주차장 신설에 들어갔다. 또한 한방 카페를 개설해 직접 개발한 한방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현재 중소기업청은 약령시장을 문화 특성화 시장으로 선정해 2년에 걸쳐 지원하고 있다.



중구 인쇄

중구 충무로4, 5가, 인현1, 2가, 을지로3, 4가, 오장동 일대(29만2143㎡)는 국내 최대의 인쇄 산업 중심지다. 경 인쇄, 스크린 인쇄, 제판 및 조판업, 제책업 등 인쇄와 인쇄 관련 산업을 주로 영위하고 있으며 전문 디자인 업체와 서적 출판업, 광고 대행업 등 연관 산업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국내 인쇄 산업 생산액 추이는 1999년에서 2009년까지 연평균 11.3% 성장하고 있지만 중구 지역 인쇄거리는 침체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인쇄 시장은 첨단 장비와 디지털로 흐르고 있는 반면 이 지역은 대부분 5인 이하 사업장으로 영세해 전통 인쇄 방식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전성시대도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4가지 색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4도 기계가 나오고 컬러 인쇄 시대가 오면서다. 40년 동안 인쇄업에 몸담은 서국원 동남인쇄사 대표는 “당시엔 선불을 주고 일을 부탁하는 곳도 많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인쇄 자체의 수요가 줄고 인쇄업소 간 경쟁이 심화되며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인쇄 업종의 양극화가 일어나 대형 업체는 경기도 파주로 진출했고 이곳에는 영세 업체가 주로 남게 됐다. 인쇄도 대량에서 소량으로 변했고 품목도 책보다 명함·박스·전단지 등으로 다변화했다.

이곳 사람들이 느끼는 인쇄 산업의 미래는 밝지 않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해 있어 임차료는 이면 골목 30㎡(9평) 기준 150만 원 선인데 반해 인쇄 가격은 업체 간 경쟁으로 낮기 때문이다. 또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다른 재개발이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임차료가 오르거나 인쇄 업종의 이탈 우려가 있다. 한편으론 인쇄 기계가 낡으면서 소음 등으로 지역 주민과 갈등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명함을 주로 생산하는 한 영세 인쇄 업체 대표는 “전자 출판으로 추세가 바뀌면서 종이 인쇄 수요도 줄고 있는데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계 인쇄 추세인 디지털·친환경 중심의 인쇄정보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는 생각에서 산업개발진흥지구 대상지로 선정하고 첨단 장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인터뷰 김종계 충남공작소 대표
“아들 있으면 대를 잇고 싶다”

서울 신당동 한양공고 일대에는 100여 년 전부터 대장간이 있었다. 동국대입구 근처에서 시작해 재개발로 동대문역사박물관 일대로 다시 한양공고 맞은편으로 이동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단 4개 업체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한 곳인 충남공작소를 찾았다.

“20년 전만 해도 18개 정도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지금은 이렇게 남았네요. 신당동 이외에도 문래동·천호동·용두동·청량리·불광동 등에 조금씩 흩어져 있습니다.”

대장장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하는 김종계(64) 씨의 말이다. 이전엔 대장간끼리의 모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김 씨가 만드는 물건은 철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칼·망치·도끼 등 연장과 각종 농기구와 장식품·작두 등을 주로 만들었다. 최근엔 주로 건축 자재를 만들고 있다.

“울퉁불퉁한 쇳덩이를 불에 달궈 종일 두드리면 날렵한 연장이 되죠. 작업 환경이 새까맣다는 것 말고는 만족스러워요. 만약 아들이 있었으면 대를 이어 시켰을 겁니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 역시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제가 막내에요. 다른 분들은 70대죠. 기술을 왜 배우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배워두면 정년도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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