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금융 위기 어디서 터질까, 신흥국 가능성 높아…민간 부채 억제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비롯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어느덧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투자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는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암울한 시기였다.

현재 금융 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주가 등 금융 변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제 리먼 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물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금융 위기 극복 경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특정국의 금융 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 경기 위기’순을 거치는 게 전형적인 경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 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된다.



글로벌 유동성 신흥국 유입

‘위기 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시점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지만 금융 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 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 과제는 벌써부터 출구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정책 당국이 관장해야 할 단계는 지난 상황이다.

금융 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위기를 낳게 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두 번째 금융 시스템 정비 단계도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돼 왔다. 위기 이후 모든 금융 활동에 준거의 틀이 될 미국의 금융개혁법이 추진된 데다 다른 국가들도 독자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부실 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 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대적인 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글로벌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글로벌 증시도 위기 직후 극단적인 비관적 전망이 잇달아 나왔고 위기 극복 과정에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지만 비교적 순조로운 흐름이 전개돼 왔다.

이 때문에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위기 극복이 부진한 국가들이 경기를 끌어올리는 게 우선적 과제다. 위기 극복이 빠른 국가들도 재정 절벽과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애프터 클라이시스(after crisis)’ 혹은 ‘애프터 쇼크(after shock)’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남아 있다. 이 과제 해결이 늦어지면 ‘주기론’에 따라 또다시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

현재 정책적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계속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양적 완화 정책을 계속해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유럽·중국도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활력 지표인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도 최악의 상황을 지나 위기 과정에서 퇴장했던 유동성도 시중에 방출되고 있다. 한때 3배 이내로 축소됐던 레버리지 비율도 10배 내외로 회복됐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선진국에서 잇달아 악재들이 터져 나오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빠르게 신흥국으로 유입되고 있는 점이다. 2012년 이후 신흥국으로 유입된 글로벌 유동성은 약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올 들어 이 같은 추세는 더 빨라지고 있다. 다음 금융 위기에 대한 경고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일 중국 장쑤성 동남부에 위치한 난통시에 롯데마트 중국 100호점인 룽왕치아오점이 개장한 가운데 중국 소비자들이 할인행사에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있다. 난통시 롱왕치아오점은 마트 2500평 임대시설 3000평을로 이뤄진 주상복합건물로 롯데마트가 직접 개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2.9.19

이미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시장 구성원과 금융 상품, 금융 감독 등에서 발생하게 될 변화를 잘 정리해 화제가 됐던 ‘JP모건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금융 위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탐욕과 공포의 줄다리기에서 탐욕이 승리할 때 또 다른 버블이 형성되고 공포가 탐욕을 누를 때 시장은 위기를 맞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다음 위기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민스키 모델에서도 인간의 욕망이 도를 넘어 탐욕 수준으로 변질되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변하면서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돼 결국은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금융 위기를 맞게 된다. 대표적으로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발 신용 위기 등과 같은 10년 주기설을 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갈수록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금융 위기가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JP모건은 지금까지 금융 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을 종합해 볼 때 다음 금융 위기는 신흥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신흥국에서 발생했던 마지막 위기는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사태로 10년이 넘으면서 신흥국은 공포의 기억이 잊혀 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거품 징후가 뚜렷한 상품 시장과 위험수위를 넘은 민간 부채로 지목돼 왔다. 이 중 상품 시장은 1999년 이후 13년 동안 지속돼 왔던 ‘슈퍼 사이클’ 국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원자재 확보 전략이 위안화 국제화 전략으로 바뀌는 데다 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선물환 시장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되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 신흥국들의 민간 부채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많아졌다. HSBC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들의 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에 달한다. 금융 위기 직전에 82%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너무 빨리 늘어났다. 같은 기간 중 미국 등 선진국들이 디레버리지로 민간 부채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비가 되는 현상이다.



‘서든 스톱’ 가능성 대비해야

그렇다면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 어떤 위기가 올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단기 통화 방어 능력, 중·장기 위기 방어 능력에 해당하는 해외 자금 조달과 국내 저축 능력, 자본 유출 가능성을 보는 자본 유입의 건전도 등으로 파악하는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 판단 지표로 볼 때 동유럽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높게 나오지 않는다. 주가수익률(PER) 등 증시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인 이머징 마켓의 주가는 적정 수준보다 밑돌고 있다.

이 때문에 신흥국의 과도한 민간 부채로 당장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풀린 글로벌 유동성이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신흥국에 몰리고 있다. 이 자금도 대부분이 매수에 치중(long-only)하는 자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열 양상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볼 수 있다. 각종 위기 판단 지표로 볼 때 아직까지 위기가 발생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은 두 가지 각도에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하나는 외국 자금의 과도한 유입과 어느 시점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서든 스톱’ 가능성에 동시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국 내에서 민간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대출을 억제해 나가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시아 신흥국들은 과도한 민간 부채에 시달리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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