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양극화 후유증…‘감사’의 마음 가져야

‘한국인은 불행하다.’ 통계만 보면 그렇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해 말 148개국에서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의 행복 순위는 97위로 나타났다. 갤럽은 조사 대상자들에게 어제 생활에서 ▷잘 쉬었다고 생각하는지 ▷하루 종일 존중받았는지 ▷재미있는 일을 했거나 배웠는지 ▷즐겁다고 많이 느꼈는지 등 5가지 질문을 한 뒤 “그렇다”고 답한 비율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한국은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63%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통계는 이 밖에도 많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에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36개국(브라질·러시아 포함) 중 24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은 11개 평가 항목 가운데 고용(28위), 환경(29위), 건강(33위), 일과 삶의 균형(33위), 공동체 생활(35위) 부문은 최하위권으로 조사됐다. 유엔이 공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10점 만점에 5.7점으로 전체 156개국 중 56위에 그쳤다.



한국인은 왜 불행한가

국내 기관에서 발표한 통계도 마찬가지 결과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지난 1월 발표한 자아행복지수(SQ)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일상에 만족감을 느끼는 행복한 상태의 국민은 5% 미만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0월 24일부터 12월 17일까지 약 3개월간 10~60대 국민 5011명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결과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포커스컴퍼니가 작년 말에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들은 행복지수에 대해 100점 만점에 평균 60.6점을 매겼다.

한국인들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다. 1977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겨우 1000달러였다. 2012년 1인당 GDP 2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이른바 ‘20-50’클럽에 세계에서 7번째 국가가 됐다. 1인당 GDP는 30년 만에 20배로 늘어났지만 과연 그때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반면 돈과 행복의 관계는 그리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수두룩하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경제학)와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가 발표한 ‘한국의 경제행복지수 측정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한국인들이 느끼는 경제적 행복과 GDP 성장률의 상관관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팀은 1인당 소비지출, 지니계수, 절대적 빈곤율 등 24개 변수를 종합해 ‘한국적 경제행복지수’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3~2010년 한국인의 경제행복지수와 한국의 GDP 성장률을 비교했더니 상관관계는 0.14에 지나지 않았다. 상관관계는 0일 때 아무 관계가 없고 1일 때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남 교수팀은 “경제의 성장에 비해 소득분배, 사회의 안정성 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이나 양극화는 낮은 행복지수의 주범이다. 행복은 개인의 가치관이 중요한 주관적 판단 요인이다. 하지만 주관은 객관적 환경을 반영하는 법이다. 소득 불균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한국은 1990년 0.26에서 2011년 0.2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상대적 빈곤율도 7.1%에서 12.4%로 증가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높은 범죄율, 청년 실업, 비정규직, 여성 차별 등 국민 행복을 저해하는 사회적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제학자 김승식 씨는 자신의 저서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에서 “한국인의 삶의 질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직접적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된 계층 간 소득 격차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은 세계 최고의 불평등 국가가 됐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열악한 근무 환경도 행복지수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2011년 2090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00시간 넘게 일한다. OECD 통계에는 근로시간이 짧은 시간제 근로자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더 늘어난다. 더구나 비정규직에 대한 심각한 차별은 더 문제다.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같은 일을 하더라고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소득 양극화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면서 다수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도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지난해 3~4월 2012년 입학생 215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월평균 가계소득 500만 원 이상인 가구에 속한 신입생이 47.1%나 됐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월평균 가계소득 500만 원을 넘는 가구는 25.5%에 불과하다. 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신입생이 87.4%나 됐다.

그러면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극화 해소가 첫 번째로 거론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평균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균이 높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국가가 있다. 바로 히말리아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 부탄이다. 지그메 시기에 왕추크 부탄 국왕은 1974년부터 국민의 행복지수 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나라의 통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건강, 시간 활용 방법, 생활수준, 공동체, 심리적 행복, 문화, 교육, 환경, 올바른 정치 등 9개 분야의 지표를 토대로 GNH를 산출해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부탄의 국토는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 인구는 약 70만 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달러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국내 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면서 국민의 97%가 행복한 나라가 됐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의 가치관을 바꿔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디어리서치가 2009년에 발표한 행복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행복 수준은 14.37로 나타났다. 점수가 14점 정도면 평균 수준이다. 10점 이하면 하위 10%에 해당하고 17점 이상이면 상위 80% 수준이다.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행복 수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들의 행복지수 평균은 16.6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행복지수(8.9)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긍정의 심리학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갤럽은 지난 50년 동안 행복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다섯 가지 테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다섯 가지 테마가 전체적으로 알맞은 밸런스를 유지할 때 진정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즐기고 좋아하는지다. 직업적 웰빙(caree wellbeing)이다. 둘째, 강력하고 끈끈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내 곁에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이다. 셋째, 재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경제적 웰빙(financial wellbeing)이다. 넷째, 훌륭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에너지로 육체적 웰빙(physical wellbeing)이다. 다섯째,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참여 의식 봉사 활동 등에 관한 것으로 커뮤니티 웰빙(community wellbeing)이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