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이동통신 타고 와이브로 부활하나 “‘통신료 30% 낮춘다’…2개 업체 도전장”

비즈니스 포커스

이동통신 업계에서 와이브로는 미운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다. 한국이 개발한 토종 기술로 2006년 첫 상용화와 함께 화려한 주목을 받았지만 세계 표준 경쟁에서 유럽의 롱텀에볼루션(LTE)에 밀리면서 고전해 왔다. 사업권이 있는 KT와 SK텔레콤도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와이브로 관련 산업 발전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작년 4월 와이브로 주파수 재할당 때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통신 사업자들은 내심 할당받은 주파수를 다른 용도로 쓰고 싶어 하지만 ‘와이브로 육성’을 고수하는 정부 방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가운데 지난해 와이브로 사용자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방통위의 ‘유무선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와이브로 가입자는 2011년 말 79만9000명에서 2012년 11월 101만2000명으로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와이브로 트래픽도 작년 1월 2685테라바이트(TB)에서 같은 해 11월 3255TB로 늘어났다. 지난해 통신 3사가 보조금 전쟁을 불사하며 LTE 마케팅에 열을 올렸고 와이브로 존폐 논란까지 불거졌던 걸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와이브로는 살아있다

물론 벌써 14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한 LTE와 비교하면 아직은 초라한 성적표다. 하지만 통신사의 무관심과 전용 단말기의 부재라는 악조건 속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재 소비자들이 와이브로용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011년 이후 국내에서 단종됐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와이브로 신호를 와이파이로 바꿔주는 ‘에그(KT)’나 ‘브릿지(SK텔레콤)’ 같은 라우터형 단말기나 와이브로가 내장된 노트북이 전부다. 이는 와이브로를 쓸 때 스마트폰과 별도로 항상 와이브로 단말기를 하나 더 휴대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작년 최신형 LTE 스마트폰이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와이브로의 이례적인 인기는 데이터 요금 문제와 연관돼 있다. 이통사들이 LTE를 도입하면서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자 ‘요금 폭탄’을 피하는 대안으로 와이브로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KT는 LTE에서 매월 10GB의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월 7만2000원(부가세 제외)짜리 72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LTE 34요금제(월 3만4000원)와 와이브로 콤비10G 요금제(월 5000원)를 결합하면 훨씬 저렴한 월 3만9000원에 같은 양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지난해 12월 말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심사에 뛰어든 업체들이 전면에 내건 것도 바로 통신 요금 인하다. 새로 선정되는 이통사는 와이브로 통신망을 기반으로 통신 사업을 펼치게 된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이은 4번째 이동통신 사업자다.

방통위는 와이브로 활성화를 위해 2010년부터 새로운 기간통신 사업자 선정을 추진해 왔다. KT와 SK텔레콤이 기존 사업과의 충돌, 중복 투자 우려 등으로 와이브로 사업에 소극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에 신청서를 낸 것은 한국모바일인터넷(KMI)과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등 두 곳이다.

그동안 제4 이통통신 선정은 신청 업체들이 평가 점수 미달로 탈락하면서 번번이 무산돼 왔다. KMI는 4번째, IST는 2번째 도전이다. KMI는 정보통신부 국장을 역임한 공종렬 대표가 이끌고 있다. 중견·중소기업을 비롯해 890여 개 법인과 개인 주주가 참여한다.

8133억 원의 자본금을 구성했으며 사업권을 획득한다면 내년 중에 1조2000억 원의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국내외 네트워크 장비 업체로부터 현물출자도 받을 예정이다.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대표를 맡고 있는 IST는 허가 신청 자본금으로 7000억 원 정도를 적어냈다. 중소기업이 주축이고 외국자본도 15%를 차지한다.

당락의 관건은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만한 재무 능력이 있느냐다. 합격점에 못 미친다면 두 곳 모두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통신 요금 인하와 중소기업 육성을 약속한 만큼 제4 이동통신의 탄생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 신청 업체들의 판단이다.

KMI는 와이브로를 통해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30% 정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가계 가처분소득이 약 9조 원 늘어나고 매년 15만3900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월 2만8000원에 데이터 무제한, 월 3만5000원에 데이터와 음성통화 무제한’ 등 구체적인 요금 계획도 공개했다.

IST도 현재 이통사들이 월 6만2000원에 음성통화 350분, 데이터 6GB를 제공하는 것을 반값인 3만100원에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또한 월 1만 원만 내면 자사 가입자끼리 문자와 통화를 무제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재문 KMI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통신 요금을 20%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임기 중 기본료 1000원 인하한 게 고작”이라며 “와이브로가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강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30% 이상 요금을 낮출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네트워크 기술 발전으로 통신망 투자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때는 5조~6조 원의 투자비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절반 수준인 2조5000억 원이면 전국망 구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가 LTE 전국망 구축에 투입한 돈은 1조3000억 원에 그쳤다. 또한 기존 이통3사는 이동전화·초고속인터넷·IPTV 등 각각의 서비스마다 별도의 망을 운용하지만 신규 사업자는 와이브로 기반의 올 아이피(All-IP) 네트워크를 구축해 운영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있다.

이 고문은 “WCDMA에서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으로, 다시 LTE로 서비스 중심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감가상각 연한 7년인 통신 장비들이 2~3년 만에 교체되는 중복 투자가 이어졌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며 “신규 사업자는 와이브로 장비 하나만 들여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제4 이동통신이 출범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통신 시장의 대세는 이미 LTE가 장악한 지 오래다. 세계 최대 와이브로 사업자인 미국 스프린트가 2011년 LTE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크리어와이어, 러시아의 요타, 대만의 FET 등 와이브로를 적극 추진하던 사업자들도 LTE로 돌아섰다.

게다가 강력한 후원자인 인텔과 삼성전자마저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OVUM은 2015년 시장점유율을 LTE 82.9%, 와이브로 17.1%로 전망한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LTE와 와이브로의 경쟁은 1970년대 벌어진 VHS와 소니 베타의 비디오테이프 표준 전쟁을 연상시킨다”며 “소니의 독주 우려 때문에 베타가 밀린 것처럼 국제 관계의 역학 구조상 한국이 주도한 와이브로가 승리하기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리얼 4G ‘와이브로 에볼루션’으로 승부

와이브로가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단말기나 통신 장비 확보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KMI는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로 부상한 중국 화웨이와 적극인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이 고문은 “화웨이와 5억 달러 규모의 밴더 파이낸싱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최근 스마트폰 사업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KMI와 IST는 모두 현재 와이브로보다 한 단계 발전한 와이브로 에볼루션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엄밀하게 보면 와이브로와 LTE가 3.9세대(3.9G)에 속하는 반면 와이브로 에볼루션은 이보다 훨씬 빠른, 진정한 4세대(4G) 기술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와이브로가 중국이 미는 시분할(TD)-LTE와 융합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고문은 제4 이동통신 회의론에 대해 “불과 3년 전만 해도 저가 항공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국내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저렴한 요금과 합리적 가격의 단말기, LTE보다 빠른 리얼 4G 기술을 제공하면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겠지만 2~3년 후에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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