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로펌은] 로펌 업계 최신 트렌드, 빗장 열리다…해외 인재 영입 공들여

지난 8월 미국계 로펌 쉐퍼드 멀린(Sheppard Mullin)을 시작으로 외국 로펌의 한반도 상륙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7월 한·유럽연합(EU) FTA 발효로 국내 법률 시장의 빗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다. 법무부에 따르면 11월 8일 기준으로 외국법 자문 법률사무소 설립 인가를 받은 외국 로펌은 11개에 이른다.

예비 심사가 진행 중인 로펌까지 합치면 총 17개다. 로펌 업계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법률 시장 개방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다. FTA 발효 이후 2년간 외국법 자문만 할 수 있는 1단계 개방을 거쳐 2016년(한미 FTA는 2017년 3월) 3단계 개방 이후 외국계 로펌은 한국 변호사를 고용해 한국법 자문도 할 수 있게 된다. 무한 경쟁의 각축장이 예상된다.

또 하나의 지각변동은 변호사 수의 양적 증가에 있다. 로스쿨은 2009년 출범 이후 올해 처음 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 2500명이 넘는 신규 법조인이 쏟아져 나왔고 향후 증가세는 계속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변호사의 공급이 증가하는 반면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법률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펌들이 투자해야 하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환경에 처하는 셈이다. 권오창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느냐, 경쟁에 밀려 퇴보하느냐의 중대한 고비가 향후 몇 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성 강화·서비스 정신 강조

1970년대 1세대 로펌이 등장한 이후 1980년대부터 몸집을 불려가며 ‘팽창기’를 지나 ‘전환기’를 맞고 있는 로펌들은 ‘전문성’과 ‘서비스 정신’을 대응 과제로 내놓는다. 특히 외국 로펌과의 경쟁에서 고급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대형 로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반응이다.

김재훈 광장 대표 변호사는 “처음 서비스 시장 문호 개방 이슈가 불거진 것은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도하 라운드 때부터”라며 “문호 개방의 핵심은 실력 있는 변호사를 얼마나 갖췄느냐이고 이를 위해 1990년대 초부터 인재 육성에 힘써 전문화와 대형화를 이뤄 왔다”고 말했다. 특화된 분야를 외국 로펌에 대항하는 무기로 내세우기도 한다. 윤세리 율촌 대표 변호사는 “국방공공계약팀과 관세통상팀을 앞서 발족하고 의료 제약 산업에서 전문화를 이뤄왔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서비스 마인드’는 외국 로펌들의 장기로 꼽혔다. 이 때문에 최근 서비스 정신은 변호사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덕목이다. 로펌마다 이를 강조하고 관련 교육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다. 김앤장은 변호사의 제1 덕목으로 ‘고객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보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태평양은 사내 교육(CLE: continued legal education)을 통해 회의 진행 요령, 파워포인트 작성법, 프레젠테이션 노하우 등 교육 훈련을 강화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건을 수임할 때 로펌이 제안서를 제출하고 입찰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달라지는 풍경도 한몫을 차지한다.

로펌 차원의 마케팅 활동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자사의 전문성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법적 이슈를 정리하고 고객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특히 찾아가는 ‘고객 맞춤형 세미나’를 적극 펼친다. 세종은 최근 건물 한 층을 모두 고객 응대용 회의실과 세미나실로 바꿨다. 올해 3월 홈페이지도 전면 개편해 변호사 주요 활동 및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세미나도 고객에 따라 세분화해 특정 단체에특정 상황에서의 법률 지식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 등은 공익재단 센터를 갖추고 공익 활동을 활발히 하며 마케팅에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경쟁 못지않게 협력 사례도 증가

시장 개방과 함께 로펌 업계에서 눈에 띄는 흐름은 ‘스카우트 경쟁’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평 이동이 적었지만 국내 로펌 업계 간 이직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이준기 태평양 변호사는 “예전에는 일을 잘못하는 사람들이 옮긴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기회나 대우를 생각하고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수 문화가 옅어지는 것은 물론 로스쿨 졸업생의 배출로 이런 분위기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더 두드러지는 사례는 해외 인재의 영입이다. 외국 로펌과의 본격 경쟁에 대비해 세계 각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태평양은 올해 미국 캘리 드라이 앤드 워런(Kelley Drye & Warran, LLP)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있던 유규홍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지난해 7월 법률 시장 개방 이후 16명 이상의 외국인 변호사를 채용했다. 광장에선 인수·합병(M&A) 전문가로 미국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한 에드워드 김과 국제 조세 전문가 제이 심을 영입한 게 대표적이다. 김앤장은 올해에만 15명의 외국 변호사를 채용했다.

해외 변호사를 영입할 때 스카우트 대상 1순위는 외국 로펌 경력이 있는 3~5년 차 변호사가 꼽힌다. 미국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될 가능성은 전체 10% 이내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파트너 변호사는 ‘몸값’이 너무 높고 이직 수요도 적다. 그 아래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분야별로 볼 때는 최근 국내 로펌 간 경쟁이 심한 중재·지식재산권·공정거래 분야에서 영입이 활발한 편이다. 또한 외국 로펌과 본격 경쟁이 예상되는 ‘아웃바운드(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시장을 두고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로펌이 아웃바운드 시장에 눈을 뜬 건 2~3년 전 무렵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최근 각광받고 있다.

해외 로펌의 국내 진출 못지않게 국내 로펌의 해외 진출도 두드러졌다. 치열해진 경쟁 속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움직임 이외에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법률 서비스 수요가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율촌은 베트남 호찌민 법인과 하노이 사무소를 개소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사무소 문을 열었고 미얀마에 사무실 개소를 검토 중이다. 세종은 베이징과 상하이 사무소에 이어 지난해 독일 뮌헨에 유럽 대표 사무소를 내고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로펌들은 사무실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의 법률적 문제들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 투자 법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부가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장 개방으로 빚어진 결과는 경쟁만이 아니다. 동시에 협력이 증가한 점도 특징이다. 국내 로펌들이 미국 등 선진 시장보다 이머징 시장, 후진국 등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 세계 유수의 로펌과 직접 부딪칠 일이 적다. 이머징 시장에서도 현지 로펌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는 분위기다. 김재훈 광장 대표 변호사는 “해외에 사무소를 열더라도 현지 로펌의 전문가와 협력하는 것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 로펌이 국내에 들어올 때도 국내 로펌들과 제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직 시장 개방 1단계 상태로, 외국 로펌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한정돼 있다. 국내 로펌과의 격돌보다 외국 포럼끼리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로펌이 특장점이 있는 분야에서 부분적 제휴를 통해 일종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한국 시장에 사무실을 내지는 않았지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로펌들에서 협력 제안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단계 개방이 이뤄지는 2016년 이후에는 외국 로펌이 한국 변호사를 채용할 수 있고 거의 모든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장기적으로 로펌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신규 진입 변호사 또한 임금 격차가 심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경제적 관점에서 변호사들의 개인 보수는 떨어질 수 있지만 로스쿨 졸업생 변호사들이 기업과 정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면서 국가 전반적인 법률 서비스는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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