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한국 정부 상대 2조 원대 소송 제기“매각 지연시켜 손실”…ISD 투자자·국가 간 소송 첫 사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인준 과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돼 주목받았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위험이 현실화됐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2조 원대의 첫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투기 자본 논란 속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며 한국을 떠났던 미국계 사모 펀드 론스타다.

관계 부처에 따르면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한·벨기에 투자협정(BIT)을 위반했다며 국제 중재 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 ICS ID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론스타는 국제 중재 신청서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 자금 회수와 관련해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조치를 취했고 론스타에 부당하게 과세해 결과적으로 수십 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론스타의 제소로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결국 국제중재재판으로 비화됐다. 이에 따라 양측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여부와 론스타에 대한 과세의 적법성 등을 놓고 앞으로 3~4년간 지루한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됐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14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1014

스타타워 등 매각 차익 법인세 부과도 논란

론스타는 이번 소송에서 외한은행 지분을 매각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해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론스타는 손해액을 향후 재판 과정에서 명시하겠다고 했지만 최소 2조 원 이상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론스타는 과거 KB국민은행·HSBC와 추진했던 외환은행 지분 매각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2006년 5월 KB국민은행에 외환은행 지분을 6조3346억 원, 이어 2007년 9월엔 HSBC에 5조9376억 원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금융 당국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점 등을 들어 인수 승인을 1년 가까이 미루면서 투자금 회수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고 결국 지난 2월 하나금융과 3조9156억 원에 매각 계약을 체결해 결과적으로 2조 원 이상을 손해봤다는 것이다.

또한 론스타는 외환은행과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극동건설 등의 매각 때 한국 정부가 법인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벨기에 소재 자회사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기 때문에 한·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라 한국에 과세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론스타의 ISD 국제 중재 신청과 관련해 론스타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론스타가 중재 제기 의향을 밝힌 이후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비해 왔다. 정부는 론스타의 국내 투자와 관련해 국내법과 국제 법규, 조약에 따라 투명하고 차별 없이 업무를 처리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과세 문제와 관련해 벨기에에 있는 론스타의 자회사는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인 만큼 이중과세방지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국세청의 과세가 적법하다는 것이다.

론스타의 정식 제소로 ICSID는 중재 재판 절차를 곧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재 재판이 결정되면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중재재판관 선정 작업을 벌이게 된다. 중재재판관은 양측에서 1명씩 추천하고 양측이 동의한 제3의 인물이 의장 역할을 맡는다. 변론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중재 재판의 결론이 나려면 통상 3~4년이 걸린다.

일각에서는 론스타가 펀드 투자자들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국제 중재 소송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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