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선거와 뇌물 그리고 경제

미국을 필두로 내년 상반기까지 나라 안팎으로 선거가 유난히 많이 예정돼 있다. 우리도 12월 19일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이 때문인지 연일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부패가 각국의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에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도 국제금융 시장에서 이 문제를 투자 장애 요인으로 지목해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 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를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YONHAP PHOTO-0678> 시민단체, 대선후보자 반부패정책 요구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경실련, 참여연대, 한국투명성기구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8대 대선 반부패정책 요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이날 대선후보자들에게 독립적 반부패국가기관 설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2012.10.10 jeong@yna.co.kr/2012-10-10 13:20:3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뇌물지수, 조사 대상 28개국 중 13위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랫동안 각국이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선진국·개도국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나 커지고 횟수가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우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뇌물 등과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각국의 부패지수(CPI)와 뇌물공여지수(BPI)를 보면 우리는 두 지수 모두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 말에 발표된 CPI는 43위로 2010년에 비해 오히려 4단계나 떨어졌다.

우리처럼 한번 개선됐다가 다시 악화되면 체감적으로 느끼는 부패 정도는 약 2배에 달한다. 2~3년마다 뇌물을 주는 쪽인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 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BPI가 그 나라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는데 중시된다.

작년 말에 발표된 BPI를 보면 우리는 조사 대상 28개국에서 13위를 차지해 2008년 조사 때에 비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TI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홍콩의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의 부패지수를 보면 민간 분야에서 조사 대상 아시아 1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그레이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 재량권 등을 우선적으로 꼽았고 ▷관료의 질 ▷공공 부문의 임금 수준 ▷정당의 자금 조달 등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 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해된다.

문제는 경제와 증시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ies)를 초래하면서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접어들 때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한 나라의 경제가 좀비(zombie) 국면에 처하면서 성장이 멈춘다.

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한다. 신흥국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시대에서 권력층의 부패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론’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 잇달아 발표되는 각국의 수정 전망치를 들여다보면 그 어느 때보다 ‘좀비 국면’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은 ‘비관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좀비론’이라며 향후 세계경제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한 변수로 꼽고 있다. 좀비 경제를 낳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은 권력층의 부패다.

‘좀비’는 본래 조직 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근로자가 직장에 출근하지만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정책도 정책 당국의 ‘신호(signal)’대로 정책 수용층이 ‘반응(response)’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잘 작동되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이 그만큼 지연되고 세계경제는 다시 침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마라도나 효과’ 절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회장은 이미 오래전에 미국 경제 앞날의 최대 적(敵)으로 ‘좀비 소비자’를 꼽았다. 총수요 항목별 국민소득(GDP) 기여도에서 민간 소비가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상 정책 당국의 의도대로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일본 경제가 좀비 국면에 처한 지는 오래됐다. 1990년대 이후 거듭된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다. ‘제로’ 금리와 GDP의 230%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채무 등이 장기간 좀비 국면을 대변해 주는 후유증이자 상징물이다. 경제 구조적으로 5대 함정에 장기간 빠져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지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등을 겨냥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쏟아내다 보면 우리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7위다. 하지만 뇌물과 부정부패 사건이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물며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 지도층 인사와 연루돼 있어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한풀이성 소비와 같은 위기 일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당국은 각종 판단 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여러 요인 가운데 잦은 정책 변경,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이 국제금융 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우리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현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는 시급히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규제와 조세 혜택과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갈수록 문제가 될 정당의 자금 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각국이 우려되는 ‘좀비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고 하다고 예측 기관들은 권고한다. ‘마라도나 효과’는 펠레와 함께 월드컵 영웅인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래 예측해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정작 골을 넣기가 쉬웠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현시점에서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는 것은 각국의 정책 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면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고 세계경기와 우리 경기도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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