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하우스 푸어 문제 해결할 구원투수

열쇠는 다주택자다①

하우스 푸어가 문제라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정국을 맞아 각 진영마다 하우스 푸어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염불일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우스 푸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실수요든 투자 수요든 자기자본이 부족해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사람 중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 생활에 지장을 주는 사람을 하우스 푸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생활에 부담을 주느냐’라는 문제가 상당히 주관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소득의 10%만 돼도 부담이 된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빚이 더 많아도 부담이 덜 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하우스 푸어라는 것은 딱히 어떤 수준이라고 정할 수도 없고 대출자의 심리적 압박 상태에 따라 본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수준인 것이다. 불행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자고 했는데, 정작 불행한 사람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니 정치권이나 금융권에서 내놓는 하우스 푸어 정책은 모두 공염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S은행에서 나름대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60~70%이고 원금이나 이자를 1개월 이상 연체한 고객에게 1년간 연 2% 이자만 납부하면 나머지는 최대 1년간 유예해 준다는 것이다.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하우스 푸어로서는 1년간 시간을 벌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라고 자평했을 것이다. 실제로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더라도 1년 안에 담보 주택을 처분할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런데 S은행 측에서는 대상자가 약 1만 명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는데, 정작 그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은 55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장의 반응이 싸늘한 것이다.

또 다른 은행에서 내놓은 ‘신탁 후 임대 프로그램’도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 자기 집을 남에게 넘기고 그 집에서 월세를 살다가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쫓겨나가는 프로그램에 누가 동참하겠는가. 이렇듯 정치권이나 금융권에서 내놓는 대책이 모두 실패하거나 실패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은 하우스 푸어 대책의 초점을 모두 금융권의 보호에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의 핵심은 ‘어떡하면 금융권의 손실 없이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러니 정작 당사자인 하우스 푸어는 그런 대책에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대출을 갚기 위해 자신의 주택을 처분하는 순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장부상 손실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 그 누구도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우스 푸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장부상의 손실을 만회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시세가 올라 누군가가 자신이 산 가격이나 그 이상으로 자신의 집을 사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금융권이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하우스 푸어 그 누구도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문제는 ‘하우스 푸어의 집을 비싼 값에 사줄 대상이 누구인지’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이 투입된다면 도덕적 해이라는 또 다른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국민의 혈세를 투기꾼의 투자 손실 보전에 투입하려고 하느냐”는 반발이 당장 나올 것이다. 더구나 그 대상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대책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장에 이를 맡기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은 집을 사게 하고 집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집을 팔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집을 팔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하우스 푸어이겠지만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다주택자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소득이 달라진다. 문제는 소득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자산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가처분소득이 최저 생계비보다 적으면 저축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채가 불어나게 된다. 반대로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월등히 많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잉여 자금을 모두 소비하는 방법이다. 철마다 새로 나오는 명품 가방을 산다든지, 최신의 스마트 폰으로 계속 바꾼다든지, 수시로 해외여행을 다닌다든지,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든지 하면서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삶의 질이나 본인의 만족도는 올라갈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가처분소득이 많고 합리적으로 소비해 잉여 자본을 계속 축적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자산가의 길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이런 후자에게는 하우스 푸어의 집을 인수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있다.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가 더 많을까, 아니면 가계 자산이 많을까.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중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 3분위의 순자산은 1억8963만 원이다.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산이 1억9000만 원 정도 된다는 의미다(이는 미국 가계보다 거의 세 배 가까이 많은 자산 수준이다).

소득 상위 20%라고 할 수 있는 소득 5분위의 순자산 규모는 5억3258만 원에 달하며 그중 금융자산은 1억5666만 원이나 된다. 충분한 동인만 있으면 이들 고소득 계층이 하우스 푸어의 집을 인수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라도 이들이 집을 사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과 각종 규정은 다주택자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거의 징벌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세금 측면에서 살펴보면 주택 구입 시 취득세나 등록세도 다주택자가 더 많이 내야 한다. 집을 보유하는 과정에서도 기준 시가가 6억 원 이상이면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

산 집을 전세를 준다면 3주택 이상이면서 전세금이 3억 원 이상이면 세금을 또 내야 한다. 하다못해 주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건강보험료도 더 많이 내야 한다. 더구나 올해 말로 양도세 특례 조항이 끝나면 2008년 이전에 매입한 주택이나 내년 이후 구입하는 주택을 팔 때 2주택 이상은 양도 차익의 55%를, 3주택 이상은 양도 차익의 66%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집이 많으면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보라. 다주택자에 대해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이런 징벌적 세금 제도를 택했을까.

과거 주택 보급률이 낮았을 시기에는 자본이 있는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마치 죄악처럼 여겨졌었다. 다주택자가 집을 여러 채 보유한다면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한정된 우리나라 특성상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 변화 필요해

하지만 지금은 시대 상황이 변했다. 2008년도에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돌파한 이후 몇 년이 흘렀다. 다주택 보유를 억제한다고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에 따라 소득과 자산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보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이나 자산 축적이 적은 사람이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마련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우스 푸어가 되는 것이다. LTV를 80% 이상 허용해 주는 선진국도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70%가 채 되지 않는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가 보유율이 어느 정도 되면 그 이상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다. 단순히 집이 여러 채라는 이유로 각종 세금을 중과한다면 6억 원짜리 전세를 사는 사람보다 1억 원짜리 집이 두 채 있는 사람이 세금을 훨씬 많이 내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다주택자가 집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우스 푸어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다주택자는 공공의 적이 아니라 하우스 푸어 문제를 해결할 구원투수인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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