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세계경제 대전망] 글로벌 경제 - 미·EU 긴축 모드…신흥국 소비시장 부상

금융 위기가 터진 지 4년째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듯 하다가 다시 부진에 빠지는 일이 반복된다. 올해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세계는 또 한 번 동반 침체를 경험했다.

전문가들은 2013년 세계경제는 올해보다 다소 나아지겠지만 본격적인 회복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탈출구는 있다. 동남아·중남미·중동 등 신흥 국가의 소비 시장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내년 미국 경제의 핵심 변수는 경제정책이다. 낮은 성장과 높은 실업률에서 벗어나려면 강력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된 감세 조치들과 오바마가 금융 위기 탈출을 위해 동원한 각종 세금 감면 조치들이 올해 말 대부분 종료된다.

더구나 2011년 만든 예산통제법에 따라 내년부터는 재정지출을 강제로 줄여야 한다. 경기 부양은커녕 재정 긴축이 불가피한 것이다. 미 의회 예산국은 예정된 사실상의 재정 긴축 조치들이 모두 실행되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내년 상반기 마이너스 1.3%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YONHAP PHOTO-0164> U.S. Federal Reserve Chairman Ben Bernanke addresses U.S. monetary policy with reporters at the Federal Reserve in Washington September 13, 2012. The Federal Reserve launched another aggressive stimulus program on Thursday, saying it will buy $40 billion of mortgage-related debt per month until the outlook for jobs improves substantially as long as inflation remains contained. REUTERS/Jonathan Ernst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BUSINESS)/2012-09-14 05:48:58/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장기 저성장에 대비해야

하지만 정부 돈을 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돈을 풀면 당장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미래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무디스는 재정 긴축 조치들이 모두 유예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급락을 피할 수 있지만 향후 10년간 미국 경제성장률이 매년 0.5% 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예정된 재정 긴축 조치들이 모두 시행되거나 모두 유예되는 양극단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에서 단행한 3차 양적 완화 정책도 효과는 미지수다. Fed는 매월 400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무기한 매입하고 초저금리 정책도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양적 완화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하고 모기지 금리를 낮춰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현재의 경기 부진이 고금리나 유동성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장기 저성장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기 향방은 최대 수출 시장인 유럽연합(EU)의 경기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유럽은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남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했고 그나마 탄탄했던 독일과 프랑스도 올 들어 경기 둔화가 뚜렷해졌다.

대부분의 유로존 회원국들이 허리띠 졸라 매기에 나서고 있다. 2013년까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수요 창출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EU의 고용 지표는 유로화 도입 이후 최악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남유럽 재정 위기로 극심한 혼란을 보였던 유럽 국채 시장과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EU는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부채 축소(디레버리징)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13년 EU 경제의 회복이 저성장 기조에서 제한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의 재정 위기는 살아나는 듯 하던 일본 경제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글로벌 침체 도미노다. 20년 복합 불황 탈출은 더 요원해졌다. 내년 일본 경제는 ‘감속·정체·악화’ 등의 단어로 요약된다.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대로 예상된다. 내년 전망은 이보다 낮은 1%대가 주류를 이룬다. 향후 10년간 일본 경제의 실질성장률을 1.1%로 예상한 곳도 있다.

내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내수 불황 때문이다. 버블 붕괴 후 20년을 괴롭혔지만 그 기세는 여전하다. 1992~2011년 실질 민간 소비지출 증가율이 연평균 0.9%에 불과한 지경이다. 과거 소비 침체는 높은 가계 저축률 때문으로 봤다. 과다 저축이 가처분소득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18%(1980년)이던 가계 저축률이 2.5%(2010)까지 떨어졌다. ‘저축=소득-소비’라는 점에서 저축 감소, 소비 정체의 원인은 결국 소득 감소일 수밖에 없다.

국민총소득(GNI)의 부문별 가처분소득 비율을 보면 이는 한층 뚜렷해진다. 1980~2010년 가계(67%→62%), 기업(15%→23%), 정부(17%→14%)로 비율이 변했다. 성장 과실이 기업에 집중된 채 가계에 원활하게 배분되지 않은 것이다.

소비가 힘들면 기업 수출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수출도 만만치 않다. 엔고 때문이다. 엔고는 2013년 일본 수출 전선의 최대 복병이다. 수출 시장의 먹구름을 예고하는 악재는 또 있다. 선행 지표인 기계 수주 증가 트렌드가 피크를 치는 등 설비투자가 줄어들고 있다. 수출 정체로 가동률이 하락한 제조업도 많다. 탈출구는 신흥 시장이다. 아세안 등에 대한 작지만 꾸준한 수출 확대가 고무적이다.

중국도 나 홀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올 3분기까지 7분기 연속 성장률이 둔화됐다. 소비지출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수출과 투자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2008년과 같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도한 인프라 건설이 과잉투자로 연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추세라면 중국은 올해 7% 후반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2013년 전망은 다소 낙관적이다. 무엇보다 10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정치 지도자 교체가 끝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새 지도부는 향후 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할 수 있다. 임기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대규모 경기 부양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다. 탄탄한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다른 국가에 비해 풍부한 편이다.


국제 유가 하락…금값은 더 오를 듯

내년은 북한에도 매우 중요한 해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선포한 ‘새 경제관리 체계’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북한의 새 경제관리 체계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언론에 단편적으로 흘러나온 내용들 중에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원자재 구매와 제품의 생산 판매에 자율성을 보장하며 이익금의 30%를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동남아시아는 5.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수출증가율이 하락하고 있지만 5~6%대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민간 소비가 성장을 이끌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가 몰리면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던 2011년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내년에도 동남아시아 각국 정부는 대외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고 민간 소비를 확대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내년 중남미 경제를 좌우할 변수는 수출보다 대내적 요인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유럽·중국 등의 성장세가 불확실해 수출 증가율은 올해보다 소폭 증가하는데 그치는 반면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힘입어 가계 소비, 투자, 정부 지출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부진을 보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제는 빠른 회복이 점쳐진다. 중남미 경제의 최대 성장 엔진인 브라질은 올해 실시한 공격적인 금리 인하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2014년 월드컵을 대비한 대규모 인프라 공사로 소비와 투자가 빠르게 살아날 전망이다. 브라질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르헨티나도 브라질 경제의 호전에 힘입어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는 하락이 예상된다. 석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는 반면 비 석유수출국기구(OPEC) 공급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 둔화로 수요가 줄면서 금속 가격도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금은 예외다.

국제 곡물가도 하락이 점쳐진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곡물 생산국인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이 2013년 봄 사상 최대 규모의 풍작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 수출 제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밀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