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어색해진 아빠의 자리

요즘 TV를 틀면 비슷한 구성의 CF 2개를 볼 수 있다. 보험과 세탁기에 관한 CF인데, 모두 엄마를 찾는 내용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을 때, 주사를 맞을 때, 음식을 엎질러 옷에 묻었을 때처럼 힘들고 난처한 상황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처럼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의 자리도 그러한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엄마만큼은 아닌 듯하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내게 근엄하지만 가끔은 자상한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너무나도 친근하고 가까워 쉽게 나오는 ‘엄마’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말인 것 같다. 겨우 한 달에 한 번씩 외식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들에게 뽐낼 수 있는 옷이나 신발 등을 사고,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 놀러가는 일련의 행사를 진행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때는 그런 것이 훨씬 편했던 것 같다. 밖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집에서는 엄마와 보내는 것이 더 재미있고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은 기회를 가지려는 아버지에게 거부의 몸짓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서운해 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마주하는 시간을 더 줄였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은 아버지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나의 핑계였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장이 되겠다는 생각이 그런 나를 정당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도 나이가 들어 가정을 갖고 아이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계획은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른 살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까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고 주말은 가족과 보내려는 계획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사회라는 이름의 싸움터에서 죽지 않고 버티며 내 존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내 계획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이는 점점 커나갔지만, 사업도 같이 커져갔기에 항상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결국 나도 아버지처럼 한 달에 한 번 외식하고 쇼핑하면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아버지보다 더 적었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화목한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사업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간과 정신의 여유를 함께 보낼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가끔은 마음이 상당히 울적하다.

아버지는 이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을까. 그래서 술과 담배를 많이 하신 것일까. 그것 때문에 또래 분들보다 건강을 쉽게 상하신 것일까. 6년 전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계셨고 그 후에도 약 2년의 병원 생활을 하실 때, 그 수발을 하는 것으로 예전의 냉정하게 대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아버지에 대한 효도는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는 많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사업에 대한 시간 투자를 좀 줄이고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야겠다. 우선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고 딸에게도 후회가 없도록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야겠다. 이러한 노력이 그들에게는 낯선 시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살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꼭 노력하자.


신준호 대신교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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