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정책 선택과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화가 제기된 배경은 이해할만 하지만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를 추구한다면 기업의 활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어떤 경제 정책이든지 득과 실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금리를 낮추면 투자와 소비 같은 내수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물가나 주택 가격이 들썩거리는 부정적 효과도 발생한다.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환율 상승을 유도하면 수출이 늘어나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경제정책은 항상 선택의 문제다.

최근 우리 경제에서 많은 논의가 펼쳐지고 있는 이런 경제 민주화도 선택의 문제다. 경제 민주화를 등한시하면 소득 면에서 소외돼 궁핍해지는 계층이 많아지게 되며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면 기업 활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경기가 침체가 상시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왜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이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는 위기 재발 방지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가 증가한 반면 보유 외환이 부족해 발생한 것이 외환 위기였으므로 기업의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억제해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필요에 따라 우리 경제는 기업 및 금융회사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고환율 유도 등과 같은 정책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기업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또한 안정적인 수준의 외화보유액을 쌓을 수 있었다. 기업의 경쟁력이 좋아지자 엄청난 이익을 내는 ‘글로벌 스타 기업’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이익 증가가 가계에는 별 보탬이 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수반됐다. 생산성을 중시한 기업들은 자동화 설비에 투자했고 정책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용 위축과 비정규직 증가라는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다. 또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환율 정책도 수출 기업에는 유리하지만 가계에게는 물가 부담을 줬다.

이런 정책들이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개인의 소득 증가는 크지 않았던 반면 법인 기업들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처분가능소득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4년 동안 2.5배로 커졌다.

그런데 세부 항목별로 보면 개인 소득은 2.1배로 커진 반면 법인 소득은 무려 8.9배로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민처분가능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포인트 정도 줄었고 기업이 대신 그만큼을 가져갔다.

최근 고소득과 저소득 가계 간 소득 양극화는 다소 완화됐지만 기업과 가계, 대기업과 자영업자 간의 격차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부문에 대한 시정의 목소리가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견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를 추구한다면 기업의 활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양극화를 시정하면서도 우리 기업으로 하여금 활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경제는 상당히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놓여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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