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핵심 산업] 위기 탈출 전략, 아시아 시장 주목…셰일·전기차도 기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경제는 큰 침체를 경험한 이후 유럽 재정 위기로 또다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유례 없는 장기 경기 침체이고 향후에도 우리가 바라는 만큼 세계경제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들뿐이다.

더군다나 위기의 근원지도 아닌 우리나라는 이번 위기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수출 부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110.3%로, G20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 강국으로 우리나라와 자주 비교되는 독일 95.1%, 일본 31.3%에 비해서도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즉, 세계경기가 둔화 또는 둔화세가 장기화되면 한국은 타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주력 수출 산업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 환경 개선의 3대 걸림돌

이렇게 볼 때 한국 경제가 다시 정상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의 회복과 동시에 외수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세계경제는 물론 수출 환경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빨리 회복될지 의문스럽다.

그 이유는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은 가운데 환율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선진국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각국들과의 수출 시장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선 세계경제가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경제는 다행스럽게도 실업률이 7%대로 하락하면서 2012년 3분기에 2%대 성장세로 회복됐다.

하지만 위기의 근원지였던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은 여전히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투자 회복세도 다소 지연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본격적인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유로 경제는 막대한 정부 부채로 저성장이 불가피하고, 또 저성장이 정부 부채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중국도 지난 수십 년간 수출과 투자 중심의 고도성장을 달성하면서 발생한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점들에 직면해 있어 8%대 내외의 중성장 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본 경제는 이대로 성장 엔진이 멈추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경기가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향후 세계경제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리스크 요인들이 잠복돼 있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고성장 시대 즉, 골디락스(Goldilocks)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골디락스에서 다소 낮은 수준에서 중·장기적으로 안정화돼 가는 시대, 즉 대안정(Great Moderation)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는 원화 가치 상승세가 지속될 우려가 상존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무디스와 피치가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한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일본이 잇달아 추가 양적 완화를 결정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다.

9월 초 113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약 2개월 만에 1090원대로 하락한 것이다. 최근의 환율 급락은 저조한 국내 경제 실적을 바탕으로 볼 때 다소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여전이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등 타국들에 비해 경제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향후 선진 각국들의 양적 완화로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성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환율을 더욱 하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면 원화는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고평가되면서 국내 수출 가격 경쟁력 하락과 동시에 경기 둔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즉, 원화의 안전 자산으로서의 가치 상승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되면서 안전 통화의 저주가 국내에서 실현될 가능성도 상존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각국들과의 수출 시장 내 경쟁 심화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한국과 독일 같은 제조업 강국이 위기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했다는 점에 주목,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8%로 인하하는 가운데 제조업에 대해서는 25%까지 세율을 낮추기로 결정한 바 있다. 또한 유턴 기업에 대해서는 이전 비용의 20%를 현금 지원하고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는 등 제조업 온-쇼어링(on-shoring)을 촉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제너럴모터스(GM)·제너럴일렉트릭(GE)·포드와 같은 미국 대표 기업들이 자국 내 제조 부문 회귀는 물론 제조업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과 일본 같은 제조업 강국이자 우리의 경쟁국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수출 기업 고용 창출, 투자 등을 포함 총 7조7000억~13조7000억 엔 규모의 재정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신흥국들 가운데도 중국은 ‘저우추취(走出法)’를 통해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이를 통한 수출 및 해외 진출 확대를 장려하는 전략을 추진 중일 뿐만 아니라 경쟁 열위 산업에 대한 보호 정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이처럼 향후 수출 환경 개선이 다소 미흡한 가운데에서도 업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회는 있다. 우선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미흡한 가운데에서도 개도국들의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빨라지면서 경제 중심이 이동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OECD·아시아개발은행(ADB)·세계은행(World Bank)·골드만삭스 등에 따르면 아시아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개도국은 2012년에 세계 GDP의 35.5%에 달할 전망이고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볼 때 개도국 전체 GDP는 이미 세계 GDP의 약 5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 지역만 세계 전체 중산층 인구의 68.4%인 14억6000만 명에 이르는 실정으로, 이미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 수요도 향후 2020년까지 약 80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셰일가스 개발 붐과 같은 비전통 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셰일가스 개발이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유럽·중국 등지에서의 개발이 가속될 전망이다.

이때 개발국들의 경기 진작에 따르는 수출 증대 효과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마케팅 등 시장 공략이 이뤄진다면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뿐만 아니라 관련 기계나 장비 제조업체들의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재생에너지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보급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개도국은 인프라 시장 차원에서 접근해 관련 전후방 산업을 연계한다면 수출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산업이 가진 장점들을 잘 살린다면 산업 간 융합 등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조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자동차와 같은 차세대 자동차, 미래형 선박과 같은 분야는 지금의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정보기술(IT)·환경 등 다양한 기술들의 융합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분야이다. 기존 자동차·IT 기기 등이더라도 디자인, 소프트웨어, 각종 서비스 등을 융합한다면 한 차원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미 세계는 IT 인프라를 활용한 새로운 제조업 혁명기에 접어들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크라우드 소싱이 확산되면서 개발자와 생산자 및 소비자의 협업 생산 체제가 갖춰져 제조업 자체의 생산 비용 절감은 물론 혁신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IT 인프라와 활용 기반을 갖추고 있고 가장 열정적인 소비자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을 잘 활용한다면 제조업의 생산성은 물론 혁신을 가속화해 수출 시장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성장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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