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핵심 산업이 흔들린다. 3분기 기업 실적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하곤 대부분 하락했다. 세계 조선 시장의 30%를 장악했던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후 첫 희망퇴직에 돌입하고 신용 등급이 떨어진 포스코는 계열사를 팔아치운다.
9월 이후 뚜렷해진 원화 강세는 내년 전망마저 어둡게 한다. 수출의 힘으로 번번이 위기를 넘겨온 한국 경제가 이번만은 사면초가에 빠진 것일까. 기로에 선 한국 핵심 산업의 위기 원인을 진단했다.
철강·조선·반도체·전자·자동차·화학….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온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핵심 산업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최근 3분기 실적 시즌을 맞아 웃고 있는 것은 전자와 자동차 업종뿐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만 영업이익으로 8조1200억 원을 벌어들였다.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고 실적이다. 최첨단 스마트폰 갤럭시 S3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1%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기업이 본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의미한다. 삼성전자의 나 홀로 고공 행진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와 그 밖의 기업’으로 양극화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비교적 선전했다. 두 회사는 3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3.1%, 4.0% 늘어났다. 7~8월 양사 노조의 부분 파업으로 총 15만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서 수출이 급감한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성적이다. 현대차의 영업 마진은 10% 안팎으로 6%대인 폭스바겐과 도요타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다른 기업들은 이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이 35.1%나 쪼그라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에 3년 연속 올랐던 포스코도 17.6% 줄어든 영업이익에 만족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화학(-17.0%)·현대제철(-19.3%)·두산인프라코어(-79.1%)·OCI(-86.9%) 등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심각한 부진을 보였다.
올 들어 선박 수주가 반 토막 난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른 기업에서는 이미 일반화됐지만 퇴직자들을 재고용할 만큼 호황을 누려온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경제 침체와 유럽의 재정 위기로 선박 발주가 크게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울산조선소의 9월 말 수주 잔량은 100척 수준으로 2008년 337척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믿었던 수출마저 적신호
세계적인 철강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포스코는 계열사 매각, 비용 절감, 보유 자산 처분 등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생산능력 3000만 톤을 유지해 온 포스코는 2008년 설비 증설로 돌아섰는데, 채 1년도 안 돼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수요 감소가 시작됐다.
지난 10월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의 신용 등급을 ‘A-’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철강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로 내년에도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삼성전자(12조5700억 원)와 현대차(4조7800억 원)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대한 의존도가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두 회사 가운데 하나라도 부진에 빠진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단번에 휘청이는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심상치 않은 환율 흐름이다. 9월 초 달러당 1137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불과 두 달 만에 1090원까지 하락했다. 10월 하순부터는 거의 매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의 모범생으로 꼽히고 세계 신용 평가사들이 지난 9월 일제히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올린 걸 떠올리면 원화 강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선진국들이 신흥 시장의 고통을 대가로 경제 회복을 도모하는 자국 우선의 생존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을 거의 무제한 공급하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의 양적 완화 정책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강력한 통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화 강세는 유가에 크게 의존하는 항공 등 일부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 큰 타격을 준다. 당장 국내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부담 떠넘기기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시장 개입에 뛰어들고 여기에 투기적 자본이 가세하는 대혼란을 우려하기도 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9월 이후 뚜렷해진 원화 강세는 내년 전망마저 어둡게 한다. 수출의 힘으로 번번이 위기를 넘겨온 한국 경제가 이번만은 사면초가에 빠진 것일까. 기로에 선 한국 핵심 산업의 위기 원인을 진단했다.
철강·조선·반도체·전자·자동차·화학….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온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핵심 산업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최근 3분기 실적 시즌을 맞아 웃고 있는 것은 전자와 자동차 업종뿐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만 영업이익으로 8조1200억 원을 벌어들였다.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고 실적이다. 최첨단 스마트폰 갤럭시 S3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1%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기업이 본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의미한다. 삼성전자의 나 홀로 고공 행진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와 그 밖의 기업’으로 양극화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비교적 선전했다. 두 회사는 3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3.1%, 4.0% 늘어났다. 7~8월 양사 노조의 부분 파업으로 총 15만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서 수출이 급감한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성적이다. 현대차의 영업 마진은 10% 안팎으로 6%대인 폭스바겐과 도요타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다른 기업들은 이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이 35.1%나 쪼그라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에 3년 연속 올랐던 포스코도 17.6% 줄어든 영업이익에 만족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화학(-17.0%)·현대제철(-19.3%)·두산인프라코어(-79.1%)·OCI(-86.9%) 등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심각한 부진을 보였다.
올 들어 선박 수주가 반 토막 난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른 기업에서는 이미 일반화됐지만 퇴직자들을 재고용할 만큼 호황을 누려온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경제 침체와 유럽의 재정 위기로 선박 발주가 크게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울산조선소의 9월 말 수주 잔량은 100척 수준으로 2008년 337척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믿었던 수출마저 적신호
세계적인 철강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포스코는 계열사 매각, 비용 절감, 보유 자산 처분 등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생산능력 3000만 톤을 유지해 온 포스코는 2008년 설비 증설로 돌아섰는데, 채 1년도 안 돼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수요 감소가 시작됐다.
지난 10월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의 신용 등급을 ‘A-’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철강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로 내년에도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삼성전자(12조5700억 원)와 현대차(4조7800억 원)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대한 의존도가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두 회사 가운데 하나라도 부진에 빠진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단번에 휘청이는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심상치 않은 환율 흐름이다. 9월 초 달러당 1137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불과 두 달 만에 1090원까지 하락했다. 10월 하순부터는 거의 매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의 모범생으로 꼽히고 세계 신용 평가사들이 지난 9월 일제히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올린 걸 떠올리면 원화 강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선진국들이 신흥 시장의 고통을 대가로 경제 회복을 도모하는 자국 우선의 생존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을 거의 무제한 공급하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의 양적 완화 정책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강력한 통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화 강세는 유가에 크게 의존하는 항공 등 일부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 큰 타격을 준다. 당장 국내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부담 떠넘기기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시장 개입에 뛰어들고 여기에 투기적 자본이 가세하는 대혼란을 우려하기도 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