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타워팰리스와 기초노령연금

팍팍한 노후 생활에 방어벽이 돼야 하는 기초노령연금. 하지만 설계의 허점 때문에 빈곤층 대신 이득을 보는 부유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가구 소득을 합산해 분석한 결과 상위 10%의 고령자를 포함한 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은 기초노령연금을 받아갔다. 정치권이 제도의 효과보다 ‘수혜 인구’ 자체에 집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복지 정책들을 지금부터 차분히 진단해야 하는 이유다.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소득과 재산 기준으로 하위 70%에게 지급된다. 노인 한 명은 최대 9만4600원, 부부는 15만1400원을 받는다. 가구 경제력과 상관없이 고령자 본인이나 배우자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은 자녀와 사는 고령자도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구 기준을 벗어나 가구 소득을 합산해 보면 부유층이 수혜를 본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KDI는 10월 25일 ‘기초노령연금의 대상 효율성 분석과 선정 기준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가구 소득 분위별로 기초노령연금을 얼마나 받아갔는지를 분석했다.

65세 이상 고령자를 포함한 가구에서 소득 1분위(하위 10%)의 수급률은 89.7%(2009년 기준)였다. 2분위(78.2%), 3분위(68.1%) 등 소득 하위 집단이 기초노령연금을 활발하게 받아갔다.

그런데 이 같은 혜택은 고소득 가구에도 비슷하게 돌아갔다. 소득 상위 10%에 속한 고령자 가구 25만1300가구 가운데 54.2%(13만6200가구)에 연금이 지급된 것이다. 바로 아래 구간인 소득 9분위의 수급률은 59.5%에 달했다. 소득 4분위(58.6%)보다 오히려 높다.



부유한 노인 가구 절반 기초노령연금 수혜

윤희숙 KDI 연구위원은 “가구 소득으로 보면 취약 고령자 지원이란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노인 빈곤의 사각지대를 이 상태로는 정조준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는 2008년 기초노령연금 도입 때부터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이 수혜 인구수에 집착, 빈곤 수준을 따지는 데 중요한 가구 소득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수급 절차의 허점도 지적됐다. 기초노령연금은 주민센터나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가서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생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홀로 살거나 부부끼리만 사는 고령자 가구는 이 같은 정보에 어두울 가능성이 높다. 자녀의 대리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고령자가 있는 가구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자녀와 동거하는 고령자 가구의 기초노령연금 수급률은 1~4분위 모두 80%를 넘어섰다. 반면 고령자만으로 구성된 가구의 수급률은 2분위 75.9%, 3분위 58.9%, 4분위 35.7% 등으로 훨씬 낮았다. 홀몸노인이나 부부만 사는 빈곤 고령자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고령자만 사는 가구의 빈곤율이 2006년 53.8%에서 지난해 59.3%로 악화한 점을 감안하면 제도가 거꾸로 가는 셈이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선정 기준이 빈곤층을 정확히 겨냥할 수 있도록 ‘최저 생계비 140% 이하’로 바꾸는 안을 18대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유야무야됐다. 윤 연구위원은 “동거 자녀의 경제력을 고려하고 인구 비율이 아닌 빈곤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빈곤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수혜 금액을 높이고 대상을 좁히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겹쳐 효과적인 복지제도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온다. 기초노령연금이 근로 연령대의 노후 대비 노력을 줄인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KDI는 제도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던 만큼 제도의 대폭 개혁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윤 연구위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장기적으로 축소되면 기초노령연금 제도의 존재 여부를 다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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