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 ‘열혈강호’ 10만 부 돌파…승승장구

조한열 북잼 대표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일을 하지?” 어떤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 또는 어떤 기회를 만났을 때 ‘닥쳤으니 해야지’ 하면서도 의미를 잘 모를 때 많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 중 상당수에 대해 우리는 이유와 목적, 방향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지나고 나서 보면 그때 겪었던 일들이 나중에 자신의 삶에 자양분이 될 때가 많다. 때로는 직접적인 생존 또는 성공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비교적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방향이 조금만 틀어지면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이 자신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한열 북잼 대표는 자신도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금의 사업을 착실하게 준비해 창업한 케이스다.

이 과정의 대부분을 그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매 순간 그가 막연하게나마 어떤 지향점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나온 과정들이 협력해 선한 결말을 맺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4학번이다. 졸업하고 그는 넷사랑컴퓨터라는 벤처기업에서 병역특례로 일했다. 소프트웨어를 제작해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유닉스 윈도에서 작업한 내용을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에서 작업할 수 있는 에뮬레이터를 제공했다.

다른 수많은 창업자들의 스토리처럼 그도 이 회사에서 사람을 하나 만났다. 그게 넷사랑컴퓨터에서 가장 보람된 일 아니었을까. 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96학번 출신의 유찬 씨는 그 당시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경쟁자였다. 물론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함께 창업을 계획할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

항상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일에 골몰하던 조 대표는 병역특례를 마치고 2005년 칩셋미디어라는 회사에 입사했다. “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드웨어를 너무 모르겠더라고요. 하드웨어를 알고 싶어 들어갔습니다.”

2008년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드웨어 칩셋과 동영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는 그저 하드웨어가 궁금해 들어갔지만 하필이면 이 회사가 동영상 인코딩·디코딩 및 관련 칩을 만드는 회사여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모바일 환경에서의 동영상 및 각종 프로그램의 구동 원리를 배우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기회

회사를 잘 다니던 그가 창업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2006년부터다. “사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으니 창업했죠. 하하. 그런데 당시엔 어린 마음에 이런 치기어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최고경영자가 어떤 것들을 고려해 결정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답답한 부분도 있었고, ‘나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거죠. 나중에 창업해 보니 창업자의 고충을 알겠더라고요.”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2006년 첫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있는 많은 콘텐츠를 수집하고 편집해 보여주는 그런 일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큐레이션인데, 그 당시엔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지만 그에겐 일을 같이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때 넷사랑컴퓨터에서 함께 일했던 유찬 씨가 회사를 나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식을 듣자마자 조 대표는 그를 찾아가 함께 창업하자고 설득했다. 함께 일해 봤기에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머릿속에 그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인터큐비트라는 회사를 2008년 설립했다. 이미 결혼한 상태여서 돈을 버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외주 용역을 계속 따서 했다. 한 사람이 외주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은 본업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6000만 원짜리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용역을 따내기도 했다. 나름대로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용역을 했다고 한다. “돈만 보고 덥석 하지 말고 미래에 도움이 될 용역을 하자.”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출판사에서 그를 찾아왔다. 2010년이었다.

“전자책을 내겠다면서 용역을 해 줄 수 있느냐고 찾아왔어요. 2000만 원을 불렀는데,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 정도의 액수인 줄 상상도 못했겠죠. 우린 우리대로 출판 시장을 전혀 몰라 나름대로 금액을 많이 낮춰 불렀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니 그냥 돌려보내고 끝났을까. 그렇지 않았다. 출판사를 만나고 호기심이 든 그는 그때부터 전자책 시장 스터디를 시작했다. 시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출판사와 다시 만난 그는 돈을 계속 낮추다 결국 공짜로 만들어 주고 이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바꿨다.

앱을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었다. 그때 나온 책이 ‘청춘을 뒤흔든 한 줄의 공감’이었다. 처음 만든 책이 앱스토어에서 2위까지 올랐다. 생각만큼 돈이 많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시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봤어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효율적으로 잘 전환하고 제작비를 낮추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죠.”



10년을 해도 질리지 않을 일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자책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도 북잼으로 바꿨다. 위즈덤하우스와 계약하고 2011년 1월 31일 ‘사소한 차이’라는 전자책을 출시했다. 이 역시 전체 2위까지 올랐다. 게임이 아닌 전자책으로는 대단한 판매량이었다. 유료인데 1만7000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여러 회사에서 전자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북잼이 만든 것은 확실히 달랐다. 왜 달랐을까. 이들은 책 만드는데 완전 초보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2008년 외주를 했다고 했죠? 그때 웹브라우저 용역도 했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일이 완전히 전자책과 똑같은 일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전자책을 오랫동안 준비한 셈이 됐죠.”

히트작이 줄지어 나왔다. ‘닥치고 정치’는 3만 부가 넘게 팔렸고 올 9월 3일 출시한 ‘열혈강호’는 한 달도 안 돼 10만 부를 돌파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들이 만든 책들 중 자신들만이 독자적으로 만든 게 거의 없었다는 점.

‘열혈강호’는 북잼이 만들기 전에 이미 여러 회사들이 개발, 출시했었다. 하지만 북잼이 만든 ‘열혈강호’는 그전에 다른 업체들이 만든 ‘열혈강호’ 전자책 버전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 왜 그럴까. “이퍼브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답이다.

무슨 소리일까.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퍼브는 외국에서 만든 것이잖아요. 그런데 미국만 해도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시장이 나눠져 있어요. 재생 용지로 만들고 한 번 읽고 버리는 그런 소설책을 비롯해 가볍게 읽는 책들은 대부분 페이퍼백으로 나오죠. 이퍼브는 하드커버와 비교되는 게 아니라 페이퍼백과 비교되죠. 충분히 읽을 만해요.

그런데 한국은 전혀 달라요. 하드커버가 아니더라도 책들이 다 고급스럽고 예쁘죠. 그래야 팔려요. 페이퍼백은 한국에서는 불편하고 낯설어요. 그러니 페이퍼백 느낌의 이퍼브를 좋아할 리 없죠. 완전히 다른, 우리만의 제작 툴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BXP다. 북잼 만의 이른바 독자적인 전자책 포맷이다. 독자적인 포맷이 성공 가능성이 있을까. 일단 시장이 아직도 초기 상태라는 것. 이퍼브 체제가 한계를 보였다는 것. 자체 서점을 오픈해 확장을 꾀한다는 것이 조 대표가 생각하는 가능성이다.

북잼 포맷의 장점은 여러 해상도에 대응해 최적의 색을 낼 수 있고 디자인이 예쁜 데다 종이책의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는 것. 이 장점을 앞세워 10월 말 저작 툴을 공개하고 11월 중에는 독자적인 전자책 서점도 선보일 계획이다. 10년 넘게 초기 시장 상태라는 전자책 시장의 암울함이 그와 북잼엔 오히려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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