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바른 양육법을 몸소 가르쳐 주시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세 아이의 부모인 나도 아이들이 바르고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항상 신경 쓰고 있다. 이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 시대 그 어느 아버지와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버지도 직장 일로 바빠 자주 얼굴 뵙기가 어려웠다. 모든 국민이 바쁘게 일하던 시절이라 출장도 잦았고 늦게 귀가하시는 날이 많았다.

한창 입시 준비로 바쁘던 고교 시절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직장 일로 늦은 밤에 집에 도착하셨는데 그날따라 식구들이 깊은 잠에 빠져 초인종을 눌러도 집 안에서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문을 크게 두드리면 되셨겠지만 공부하다가 곤하게 잠든 자식들을 깨우고 싶지 않아 담을 넘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셨다. 너무 놀라 깨어난 나는 아버지와 응급실로 급히 갔고 아버지는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나는 너무나 죄송한 생각에 아버지 손을 꼭 잡았고 아버지는 손을 잡는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든든하다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공부하라고 한 번도 채근한 적은 없지만 공부하는 자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당신의 집 담을 넘으신 아버지를 보니 공부를 게을리 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 암기를 매우 싫어한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사회 과목이었고 그중에서도 가본 적도 없는 곳에 대해 단순 암기를 해야 하는 지리가 가장 싫었다. 당시 아버지는 국영기업에 몸담고 있어서 전국의 여러 지점들을 2~3년마다 옮겨 다니셨는데, 그때마다 방학 때면 그 지역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셨다.

어릴 때 멀미가 심했었기 때문에 다닐 때마다 고생을 좀 했지만 아버지의 배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전국 구석구석을 다녀보는 드문 경험을 했다. 그 덕분에 지리 과목에도 자신이 좀 생겼고 그 당시에 국내 곳곳을 방문한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진로를 위해 고민하는 고3 때, 나는 의대와 공대 중에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었다. 그 당시 다른 부모들은 공대보다 의대 진학을 원하는 분위기였지만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강요를 하지 않으셨고 내 의지대로 가도록 선택권을 내게 주셨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힘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했지만,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사람은 부모를 보고 배운 대로 산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우리 세 아들에게 바쁜 아빠가 해주는 것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방학 때마다 아들들과 반드시 여행을 가고 있다.

가을인 지금도 이번 겨울방학 때 아들들과 갈 여행지를 고르느라 즐거운 고민을 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미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 내가 아는 정보를 최대한 주려고 노력하지만 결정은 아이들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는 교육 방법, 이것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바로 그 교육 방법이다. 이 양육 방법이 아이들이 바르고 성숙한 성인이 되도록 하는 왕도라고 믿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의 현명한 양육법이 지금 손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하늘에서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있을 듯하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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