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의 함정] 경제성장률의 운명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가파른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하반기 들어 국내외 기관·연구소에서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대대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유난히 올해 경제성장률을 두고 전문가들도 혼선을 빚고 있다. 심지어 기존 전망치를 3.5%로 내놨던 세계 4대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최악의 경우 1.5%에 그칠 수도 있다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무려 2.0% 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올해는 변해도 너무 변한다. 그만큼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러 요인과 리스크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고 또한 한국 경제가 급격히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인 2007년 3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정식에서 이 후보는 5년간의 대통령 임기 중 ‘연평균 7% 경제성장’을 달성해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7대 경제 강국’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MB 노믹스의 대표 브랜드인 ‘대한민국 747 공약’이다.

747 공약은 발표 직후부터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연간 7%씩 성장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모든 생산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 가능한 성장률)은 불과 4~5%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7% 경제성장률이라는 장밋빛 미래 제안은 이 후보의 당선에 적지 않은 공을 세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2012년, ‘7% 성장’을 약속한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 성장률은 2%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무리 하반기 성장률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 중반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경기 악화로 소비 심리가 위축돼 내수가 부진한 데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라 수출 또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을 3.6%에서 2.5%로 낮췄다. KDI는 민간 연구소보다 전망을 긍정적으로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망치는 최근 8월 이후 경제 전망 수정치를 발표한 국내외 민간 연구소보다 더 비관적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노무라증권과 JP모건 등 해외 투자은행들이 발표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의 평균은 2.6%이고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2.8%)도 KDI 전망치를 웃돌고 있다.



경제구조 변화 담아내지 못해

올해 성장률을 두고 정부의 전망은 약간 거리가 있다. 정부 전망치는 가장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 올해 성장률을 3.3%로 전망했다. 만일 정부의 전망대로 3.3%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2008년 이후 5년간 성장률 평균은 3.2%가 된다. 747 공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며 참여정부의 4.3%에 비해 1% 포인트 이상 낮은 실적이다.

5년 전 대선 후보가 발표한 성장률 계획, 그리고 불과 연초에 발표한 성장률과 실제 수치가 왜 이리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만 달라도 일자리 7만 개, 가구 소득 0.5%, 정부 세수는 2조 원 가까이 줄어들 만큼 파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망이 큰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구 기관들의 능력이 떨어져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 경제 예측이 갖는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경제구조의 변화를 무시한 채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계산된 경제 예측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제 예측 모형은 경제성장·소비·투자·수출·수입·물가·환율·금리 등 많은 변수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파급력이 막강한 ‘블랙 스완’의 변수를 모형에 넣지 못하는 것이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이유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우고 수능에 출제되는 것처럼 ‘경제성장률은 민간 소비, 기업 투자, 정부 지출, 순수출 등 주요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이것이 실업률·물가 등과 상호 연관된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기존의 경제성장률 산출 공식대로 정확히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성장률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리스크 요인이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함정이 있고 경제 위기가 엄습해 오는 데도 불구하고 마냥 순진한 아이처럼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는 일만은 적어도 이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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