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경착륙’에 빠지나 "경기 부양 효과 의문…리스크 관리 힘써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지 꼭 4년이 지났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숨통이 트일 무렵에 시작된 유럽 위기가 2년 반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영향력이 더 커진 심리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위기 상시 체제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2009년 2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세계경제도 꼭 3년이 되는 시점에서 경착륙(hard landing)에 빠지느냐의 임계 상황에 놓여 있다. 올 2분기 이후 미국·중국·독일 등 중심국의 제조업 경기 둔화세가 역력해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더 주목되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경착륙은 아직까지 ‘우려’ 성격이 짙지만 미리 반영해야 할 기업 경영에서는 분명히 ‘리스크’다. 이 때문에 각국은 거시경제 기조를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경기 부양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된 위기로 정책 여지가 바닥이 난데다 각국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모든 정책은 정책 당국의 ‘신호(signal)’대로 정책 수용층이 ‘반응(response)’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리먼 사태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은 비상 국면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잘 작동되느냐 여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작동되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세계경제는 경착륙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유럽 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잘 버티어 왔던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의 경기가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책 당국자에 대한 믿음이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이 상황에서 선진국의 기준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미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 추가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경기 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유동성의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YONHAP PHOTO-0373> A general view shows a shipping container area at Yangshan Port in Shanghai, in this May 11, 2012 file picture. China's inflation, industrial output and retail sales all flagged in May for a second straight month of sluggish growth that galvanised policymakers last week into taking their boldest action yet to combat a sharpening slowdown. REUTERS/Aly Song/Files (CHINA - Tags: BUSINESS POLITICS)/2012-06-11 07:38:2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글로벌 금융사들의 잠재 부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유럽 금융사들은 외부 긴급 수혈로 연명하는 상황이다. 선진국 재정수지는 갈수록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고 국민들의 빚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예측 기관들도 직전 전망치의 잉크가 채 굳기도 전에 또 다른 전망치를 내놓기에 바쁘다.

그리스는 국제금융 시장에서 이미 ‘좀비 위기국’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몇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같은 상황에 처해 금 모으기를 했던 한국 국민과 달리 오히려 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가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경제 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통용된다. 유럽 국가처럼 무늬만 회원국(bad apples)과 건전한 회원국(good apples)을 ‘통합’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건전한 회원국들도 썩는다. 이미 유럽 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현재 유로랜드 회원국이라고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환율 전쟁도 변수

각국 경제에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자 이미 올해 초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부양’ 쪽으로 선회되기 시작한 각국의 거시경제 기조가 갈수록 뚜렷하다. 미국은 지난해 9월에 발표됐던 일자리 창출 위주의 재정정책(일명 오바마 경기 부양책)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꼭 1년 후인 올 9월에는 무제한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도 경기 침체의 주범인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약 10조 엔 규모의 추가적인 자산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두 차례에 걸쳐 각국 기준금리 인하와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을 추진한 가운데 무제한 국채 매입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기준금리를 일제히 내리고 있다.

이번 각국의 부양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점이다. 지난 6월 멕시코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끝나고 채택된 ‘로스카보스 공동 선언문’에 일자리 창출 위주의 성장 정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기 부양책이 성공하려면 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시장과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세계경제를 경착륙에 빠지게 할 변수, 즉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도 많다. 티핑 포인트는 어떤 것이 균형을 깨고 한순간에 전파되는 극적인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경제 현안이 우려되다가 실제로 발생하면 그 순간에 경착륙에 빠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중에서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는 티핑 포인트가 문제다. 미국은 재정 절벽(fiscal cliff)에 대한 우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말로 예정된 연방 부채 한도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재정 삭감은 불기피하다. 미국 경제가 이 상황을 맞는다면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3차 양적 완화 정책 추진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글로벌 환율 전쟁도 변수다. 각국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 궁핍화 정책’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각국 간 협조가 긴요한 상황에서 경쟁적인 평가절하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 이기주의로 나아간다면 세계경제와 글로벌 증시는 각각 경착륙, 제2의 리먼 사태를 넘어 대공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올 2분기 성장률이 7%대 초반으로 떨어지자 금리 인하 등을 통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내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예상되는 변수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시점이다. 리스크를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막상 이런 리스크가 닥치면 기업 경영과 투자에 커다란 혼란이 일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본과 균형을 중시하면서 수시로 발생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시나리오 경영 및 투자 기법과 상시적인 위기 관리 체제를 잘 구축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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