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 3인방’이 뜬다 "기술력 으뜸·실적 짱짱…은둔의 강자들"

비즈니스 포커스

‘비철금속 3인방을 아시나요.’ ‘비철금속 3인방’은 금·은·동·구리 등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고려아연·풍산·LS니꼬동제련 등 3사를 말한다. 최근 이들 ‘3인방 기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상장사인 고려아연과 풍산의 주가가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3차 양적 완화(QE3)를 결정한 후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Fed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금속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6월 초 33만 원대를 기록하다 상승세를 거듭해 9월 18일 49만 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풍산은 올 들어 가장 낮은 주가를 기록했던 지난 6월 4일과 비교하면 주가는 53%나 오른 상태다.

LS니꼬동제련은 비상장사로 고려아연과 풍산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경영 실적만은 뒤지지 않는다. LS니꼬동제련의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는 LS 주가는 9만7000원대로 올해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3인방 기업’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은둔의 강자’로 불리기도 한다. 전형적인 원자재 기업인 데다 오너 경영인들이 바깥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소리 없이 강한 기업이다. 회사 규모도 크고 경영 실적도 준수하다. 한경비즈니스가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조사하는 ‘대한민국 100대 기업’의 단골 멤버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매출 4조9100억 원, 영업이익 906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5조 원, 영업이익 1조 원 돌파가 기대된다. 풍산은 작년 2조8881억 원의 매출과 123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 매출 3조 원 영업이익 1700억 원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LS니꼬동제련은 작년 9조5064억 원의 매출과 3604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들 3인방이 소리 없이 잘나가는 이유는 뭘까. 고려아연은 세계 최고 비철금속 업체다. 시장점유율 8%로 세계 1위다. 국내 아연 시장점유율도 약 80%(자회사인 영풍 점유율 합계)로 파악된다.

아연과 함께 은도 제조하고 있는데,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매출에서 은이 약 45.1%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영업 이익에서 은이 차지하는 비중도 26.2%로 아연(37.4%)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고려아연의 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은 은 가격의 상승에 기인한다.



고려아연·풍산·LS니꼬 ‘주목’

고려아연이 최근 얼마나 잘나가는지는 영업이익률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분기 매출은 1조3000억 원, 영업이익은 2595억 원이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19.9% 다.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률이 20% 안팎이라면, 이는 ‘꿈의 실적’이다. 비결은 독보적인 기술력에서 찾을 수 있다.

해외에서 아연 정광(광물질)을 매입해 아연과 연(납)을 만드는 과정에서 퓨머(fumer: 잔재 처리 시설)를 활용해 부산물을 은·금 등의 금속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쓸모없는 부산물을 고가의 은이나 금으로 변환하다 보니 이 회사의 이익률이 탁월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술은 경쟁 기업이 따라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아연은 1974년 고 최기호 회장이 설립했다. 아들 삼형제가 릴레이식 경영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고 최 회장은 삼형제에게 각각 경제학과 경영학, 금속공학, 자원공학을 전공하도록 했다. 고려아연 경영에 필요한 3가지 공부를 나눠 시킨 것이다. 장남인 최창걸 명예회장, 차남인 최창영 명예회장에 이어 1996년부터 셋째인 최창근 회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풍산은 세계적인 동 전문 기업이다. 특히 소전(素錢: 액면가와 그림이 새겨지지 않은 반제품 상태의 동전)이 유명하다. 세계 소전 입찰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60여 개국에 40만여 톤의 소전을 공급해 왔다.


풍산은 신동(伸銅: 구리 합금을 가동해 판·관·봉 등으로 만드는 일) 산업 부문과 방위산업 부문으로 나뉘는데, 신동 산업 부문에서는 동 및 동합금 판·대, 관봉, 로드(rod), 커넥터 소재, 리드프레임재, 주석 도금재 등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전기·전자, 조선, 플랜트 등 최첨단 사업의 핵심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풍산의 경쟁력은 초박막(매우 얇은 막) 동판을 생산하는 기술에 있다. 얇은 동판은 최신 트렌드다.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 부품 등이 얇아지고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와 자동차 대기업들이 일본 제품을 쓰다가 풍산 제품으로 옮겨올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상용 가동하는 압연 새 설비는 국내 최대 규모다. 월 생산 규모가 2000톤이다. 동판재 두께는 종잇장보다 얇은 0.01mm까지 가능하다. 자동차 부품에도 동박판은 없어선 안 되는 소재다.

풍산 울산 공장은 신동 종합 공장으로 세계적인 공장이다. 동합금 생산량으로 연산 31만 톤 규모를 자랑한다. 구리와 관련된 거의 모든 반제품을 생산하는 셈이다. 실제 올 상반기 풍산 전체 매출(1조1568억 원)의 80% 이상이 울산 공장(9345억 원)에서 나올 정도다.

풍산은 방위산업 분야의 실적도 좋다.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윤관철 BS투자증권 연구원은 “풍산의 방산 매출이 상반기 2483억 원에서 하반기 4000억 원으로 61% 늘어나고 내년 매출은 7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너 경영’ 외부 노출 꺼려

풍산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풍산 비전 50’이 그것이다. 2018년까지 그룹 매출 12조 원, 사업이익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풍산은 글로벌 생산 기지와 해외 판매망을 확충하고 선진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풍산은 1968년 10월 창업자 류찬우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 달러로 출발한 회사다. 류 창업자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진 회장은 19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19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LS니꼬동제련은 LS그룹의 계열사다. 전기동·금·은·황산 등을 제조 및 판매하고 있다. 일본과의 합작회사로 일본계 회사인 JKJS(Japan Korea Joint Smelting)가 49.9%, LS가 50.1%를 나눠 갖고 있다.

주력사인 LS전선이나 LS산전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고 보면 알짜배기 회사다. 구리 제련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자리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 지금은 전기동·금·은·백금 등 다양한 금속을 생산하는 제련 사업을 비롯해 금속 리사이클링 사업,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인 자원 순환 사업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근 활발히 벌이고 있는 도시 광산 사업도 그 일환이다. 이 회사 구자명 회장은 도시 광산 사업의 2020년 매출 목표를 7조 원으로 잡았다. 도시 광산(urban mining)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동(銅) 부스러기와 버려진 휴대전화·TV 등에 들어 있는 인쇄회로기판(PCB)을 녹여 구리·금·은 등을 회수하는 자원 순환 사업이다. 희소금속을 캐낸다는 뜻에서 ‘도시 광산’으로 불린다. 지난해 6월 자회사 GRM에 1100억 원을 투자, 충북 단양에 국내 유일의 자원 순환 회사 공장을 완공했다.

추출률에 관해서도 LS니꼬동제련의 기술력은 수준급이다. GRM에서 생산하는 ‘블랙 카퍼’라는 검은색 분말에 들어 있는 구리 함량은 75%다. 일반 동광석에 포함된 구리 함량은 4~5% 수준이다.

이들 ‘3인방’의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 신성장 동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제품력은 잘나가는 제조업체의 기본이고 신성장 동력은 장수 기업의 조건이다. 현재까지는 ‘비철금속 3인방’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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