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곰의 부동산 산책] 하우스 푸어 대책 공염불? ‘세일 앤드 리스 백’ 적용 쉽지 않다

일부 정치권과 은행에서 하우스 푸어 대책인 ‘세일 앤드 리스 백(Sale & lease back)’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부채의 늪에 빠진 하우스 푸어의 집을 사주고 그 사람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가계 부채도 해결하고 거주권도 보장되니 일석이조의 획기적인 방식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방식은 원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몸살을 앓았던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라는 은행에서 채택했던 방식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왜 이런 방식의 프로그램이 가능한지 먼저 알아보자.



주택을 은행이 매입하고 다시 임대하는 방식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미국의 은행들은 많은 손실을 떠안게 됐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담보물의 가치의 최대 95%까지 대출이 가능했기에 집값의 5%만 있으면 집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이 이야기는 명의만 집주이지 실제 소유권은 은행 95%, 법적 소유주 5%였던 것이다.

그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기준금리에 연동되는 대출금리가 급등하자 부동산 활황기에 대출을 끼고 집을 샀던 채무자들이 원리금 갚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집의 잔여 가치가 담보물의 가치보다 적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평균 집값은 2007년에는 1%, 2008년에는 9%, 2009년에는 11%로 하락 폭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활황기였던 2004~2006년에 집을 산 사람들의 상당수가 집을 처분해도 부채를 모두 갚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러자 은행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돈을 환수하려고 했다. 이럴 때 우리나라에서는 경매에 넘기는 것이 수순이지만 미국에서는 경매보다 숏 세일(short sale)이라는 방식을 선호한다. 일단 경매에 넘기면 법원 관할이 되기 때문에 낙찰가가 예상보다 낮으면 그 손실이 그대로 은행의 몫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숏 세일은 새로운 매입자(실수요자)와 은행이 가격을 협상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경매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매입자(실수요자)에게도 원하는 지역의 원하는 매물을 골라 협상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 경매는 더 싼값에 살 수 있지만 원하는 지역과 시기에 그 매물이 경매로 나온다는 보장이 없고 법적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라고 할 수 있는 현 소유주도 나쁠 것은 없다. 경매에 들어가면 7년간 신용 불량자로 떨어지지만 숏 세일은 정상적인 거래이므로 소유주에게는 불이익이 없으며 채무를 탕감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숏 세일은 집값 하락의 현실을 은행 측이 인정하고 일부 손실을 보지만 나머지 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보이는 숏 세일에도 문제는 있다. 은행에는 손실이 그대로 장부에 잡히는 것이다. 숏 세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커지게 돼 주가 하락 등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더구나 여러 은행에서 숏 세일 물량을 쏟아내면서 주택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손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숏 세일 물량이 많이 나올수록 매수자도 줄어들게 된다. 급하게 매입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세일 앤드 리스 백’ 프로그램이다. 문제가 된 주택의 소유권을 은행이 매입하면서 그 집에서 살고 있던 채무자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으로서는 장부상 채권으로 잡혀 있던 부분이 주택으로 바뀌게 된다는 변화만 있을 뿐 자산에는 아무런 손실이 없게 되며 고정적인 임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과거에 대출이자 형식으로 매달 받았던 돈이 월세라는 형식으로 들어오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채무자도 과거 대출이자로 나갔던 액수만큼 월세로 나가니까 현실적으로 손해가 없고 원금 상환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덤으로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을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두 나라의 상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미국에는 전세 제도가 없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든지, 아니면 월세로 사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수요자에게는 은행에 대출이자를 내나,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집을 은행에 팔고 은행에 매달 월세를 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세입자에게 유리한 전세라는 제3의 방식이 있다. 월세는 매달 자기 주머니에서 현금이 나가야 하지만 전세는 임대 기간 중 추가 비용 지출이 없기 때문에 세입자의 자산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매월 월세를 내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우스 푸어는 자신의 수입에 비해 대출이자 부담이 커서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말만 대출이자에서 월세로 바뀐다고 지불 능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 높다

둘째, 미국은 월세 수준이 상당히 높다. 자기 월수입의 33~40% 정도를 월세로 낸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통상 대출이자는 월세보다 싼 것이 대부분이다. 대출금리를 5% 정도 이하로만 받을 수 있다면 집을 보유하는 것이 월세보다 싼 곳도 많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대출금리 수준이 낮기 때문에 월세로 사는 것보다 집을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자가 보유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것이다. 임대 사업을 하더라도 매입가 대비 세후 연 5%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세일 앤드 리스 백 프로그램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은행이 임대 사업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더구나 집을 사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월세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세입자로 전환한 전 소유주가 (대출이자를 잘 내지 않은 것처럼) 월세를 잘 내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세입자로 바꿀 수 있기에 은행으로서는 리스크가 작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월세 수준이 집값에 비해 턱없이 낮다. 더구나 저가 주택 위주로 월세 시장이 형성돼 있고 고가 주택 시장에서는 월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2012년 8월 말 기준으로 5억2000만 원 정도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60%로 적용하면 3억 원 조금 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월세로 환산한다면 대출금 3억 원에 상당하는 임대료 수준은 월 125만 원인데, 한 달에 125만 원씩 월세를 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만약 이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대단할 것이다. 주택의 순기능 중 하나가 저축이라는 수단이다. 자산 형성이 거의 되지 않은 시기에는 월세로 살다가 돈을 모아 전세로 옮기고, 그러다가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고 그 후에 점점 크고 입지가 좋은 곳으로 갈아타는 것이 전통적인 자산 형성 과정이었다.

그러다 은퇴 후에는 이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 대출을 받아 여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도 전세라는 과정만 생략하면 이 사이클은 같다. 그런데 세일 앤드 리스 백 프로그램은 이 사이클을 역주행하겠다는 것이다. 월세입자가 되면 자산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집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자산이 많은 것은 집값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대출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자산이 많아진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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