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이기는 마케팅] 중고·렌털 비즈니스 전성기 "‘소유’보다 ‘소비’…부담 적고 만족도 ‘굿’"

미국의 트렌드 분석 기관인 트렌드와칭닷컴이 선정한 2012년 트렌드 중에는 보상 판매, 교환 등 재활용 산업의 부상이 포함돼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부각된 트렌드 중 하나인 협력적 소비, 즉 공유 경제는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남들과 나눠 쓰고 바꿔 쓰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소비 형태는 지출 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요즘 같은 불황에 적합한 소비의 대표적 예로 떠오르고 있는데, 단순히 비용의 문제를 넘어 환경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해 물질적·심리적 만족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디지털 기기에서 도서까지 중고 붐

경제 불황과 맞물려 대표적 그린 산업인 중고 시장이 국내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개인 간 중고 물품 거래뿐만 아니라 중고만 취급하는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고 기업들도 중고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중고 물품 판매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11번가 중고 상품 거래액은 2010년 대비 지난해 50% 상승했고 올해 8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중고 매출이 무려 150%나 뛰어오르며 초고속 성장 중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반영해 11번가는 지난 2월 아예 ‘중고 스트리트(중고 STREET)’를 오픈, 디지털 기기에서 가전, 명품 잡화, 유아 용품, 도서 등 인기 중고 상품을 판매 중이다.


11번가 관계자는 “중고에 대한 인식이 ‘남이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에서 ‘숨은 진주’로 변화하는 추세”라며 “안심 구매 서비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셀러를 검증하고 철저한 애프터서비스와 보상 서비스 혜택을 더하는 등 중고 시장에 만연한 불신을 해소하고 안전한 중고 거래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트북·TV·냉장고·세탁기 등 기존 중고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디지털 기기가 여전히 인기 품목인 가운데 스포츠 용품과 가구 등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스포츠 용품 수요가 증가하는 가을이 되면서 최근 중고 용품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의류 및 트레이닝복은 중고 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게 커진 아이템 중 하나다. 최근 한 달간 스포츠 의류 중고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70%나 급증했다. 등산화와 골프 용품의 중고품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등산 의류 및 용품의 중고 판매량은 1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션에서도 중고 제품 판매가 활발하다. 역시 최근 한 달 간 중고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TV와 냉장고 등 주방 생활 가전에 대한 수요가 많고 책장·테이블·침대·침구세트·커튼 등 흠집이 있거나 재고로 남아 있는 ‘중고 아닌 중고’ 가구들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G마켓 관계자는 “최근 불황이 지속된 원인도 있겠지만 중고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중고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고 휴대전화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2G 서비스 종료와 함께 단말기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중고 상품 거래가 증가한 면도 있지만 비싼 스마트폰 구매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중고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SK텔레콤이 시행 중인 중고 휴대전화 거래 서비스 ‘T에코폰’ 판매량은 지난 8월 6만 대로, 지난해 8월 280대에 비해 무려 200배 이상 급증했다.

모바일 포털 세티즌의 중고 휴대전화 거래량도 올 상반기 10만6200여 건으로 전년 동기(5만100여 건)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거래 금액은 더 큰 폭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200억 원 규모로 전년 동기(79억 원) 대비 153% 증가한 것. 세티즌 측은 2012년 말 40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게 성장 중인 중고 품목은 다름 아닌 도서다. 2008년부터 중고 도서 시장에 뛰어든 알라딘은 연평균 19%의 매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종로점을 시작으로 서울 강남점과 신촌점·부산점·분당점 등 5개 중고 도서 오프라인 매장을 열면서부터 매출이 34%로 급증했다.

2010년 중고 도서 판매 서비스를 시작한 교보문고도 올 상반기 매출 신장률이 53%에 달하고 인터파크·예스24 등 온라인 서점에서도 중고 도서 판매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중고 도서 시장의 활성화는 경제적·환경적 이유를 넘어 문화적으로도 선순환을 낳고 있다.

알라딘 관계자는 “처음에는 중고 도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깨끗한 책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경제적 선택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객들이 선호한다”면서 “중고 도서를 사는 고객이 대부분 본인이 갖고 있는 책을 파는 경우가 많아 책을 깨끗하게 보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유 경제’의 또 다른 축인 렌털 시장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 중이다.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렌터카 시장을 제외한 렌털 시장은 2006년 3조 원에서 지난해 10조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새 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원하는 기간 동안 빌려 쓰는 렌털은 부담 없이 원하는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만족도가 높은 방법이 바로 렌털인 것이다. 더구나 가전·가구 등 지출이 큰 생활 품목은 과거에는 재산 개념이 강했지만 지금은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렌털 시장은 향후 더 급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1~2인 가구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목돈이 들어가는 구매보다 렌털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고 소비자들의 의식도 ‘소유’보다 ‘소비’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렌털 시장 규모 10조 원, 폭풍 성장 중

렌털 서비스의 인기로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털 사업을 시작한 웅진코웨이는 매트리스·음식물처리기·안마기 등으로 아이템을 계속 확장 중이며 이용 고객도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침대 매트리스 렌털은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1만5000건을 넘어섰다. 가격이 비싼 매트리스를 월 사용료만 내고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거기에 ‘관리’까지 받을 수 있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가전제품 렌털도 계속 증가세다. 올 초 가전 렌털을 시작한 이마트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 1월 계약 건수가 965건이었으나 4월에는 1210건, 7월에는 1700건으로 증가하는 등 렌털 사업이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상반기 렌털 가전제품 매출이 전체 가전제품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렌탈인과 KT렌탈 등 대표적인 렌털 업체들도 렌털 종류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TV 홈쇼핑과 온라인 몰도 렌털 사업에 뛰어드는 추세다. 지난 5월 온라인 몰 업계 최초로 렌털 전문몰 ‘GS렌탈샵’을 오픈한 GS샵은 80여 종의 렌털 전문 상품을 구비하고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TV 홈쇼핑을 통해서도 1주일에 렌털 서비스 상품을 3회 정도 방송하며 방송 평균 1200건의 상담 신청을 받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11번가도 지난 7월 오픈 마켓 최초로 렌털 사업에 진출했다.

11번가 관계자는 “짧아지는 제품의 라이프사이클과 유행의 급격한 변화 등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고가의 상품을 초기 가격 부담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 앞으로도 렌털 서비스 이용자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특정 상품 렌털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인기를 끌고 있다. 어쩌다 행사 때 한두 번 입는 드레스 대여 전문몰 라라힐, 면접 복장을 대여하는 코소, 영어책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와우키즈북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쇼핑몰 구축 업체인 카페24를 운영하는 이재석 심플렉스인터넷 대표는 “무조건적인 구매보다 필요한 시기만큼 빌려 쓰는 ‘알뜰족’이 많아지고 있다”며 “향후 온라인 전문몰을 통해 대여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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