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가(社歌)의 힘 "너도나도 만들어…단결·소통 수단 ‘ 인기’"
입력 2012-09-14 14:48:22
수정 2012-09-14 14:48:22
TV 프로그램 중 ‘청춘합창단’이란 게 인기였다. 이유야 많겠지만 현대 병폐와도 무관하지 않다. 합창 스타일이 파편·개인·분열된 상처를 보듬어줘서일 터다.
여럿이 합쳐진 목소리는 그만큼 조화롭고 안정적이며 감동적이다. 아름다움과 짜릿함이 물밀듯 다가온다. 동질감과 유대감의 클라이맥스마저 느껴진다. 잘 부르든 잘못 부르든 합창이라 어울리는 법이다.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만큼 끈끈한 감정 공유도 없기에 합창은 곧 ‘우리’다.
사가(社歌) 재조명 한창
그래서일까. 요즘 일본에선 사가(社歌)가 인기다. 정확하겐 재조명이 한창이다. 사가는 1980년대까지 대부분 직장에서 직원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고도 성장기의 영향으로 사가 합창은 필수였다. 매일 아침 조례는 라디오 체조와 상사 지시가 있은 후 사가 합창으로 끝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 사가가 1990년대 복합 불황 이후 음지로 사라졌다. 있지만 불리지 않았고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입사식·창립일·연수 등 공식 행사에서 명맥만 유지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달라졌다. 사가를 새로 만들거나 내용을 고치려는 기업이 줄을 잇는다.
사가의 재평가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결속 강화가 핵심 목적이다. ‘사가(社歌)’란 책에선 이의 유행 시즌을 경기 흐름에서 찾는다. 그래서 호황·불황 정점일 때 사가 부활이 본격적이다. 한 발 나가기 위한 긍정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다.
결국 지금의 인기 비결은 불황 극복의 단합 차원이다. 그만큼 일본 기업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직장은 딱딱하고 어두워졌다. 경쟁 우선 탓에 인간미·동료애가 상실됐다.
답답한 직장 공기는 불통의 커뮤니케이션을 낳았다. 직원은 살맛을 잃었다. 이 와중에 일본 기업의 장점이던 집단 동력이 약화됐다. 사가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할 훌륭한 무기다. 집단 결속의 지름길로 이해된다.
이제 사가는 한층 진화 중이다. 내부의 결속 강화뿐만 아니라 밖으로의 메시지 발신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인터넷 등 다종의 신규 미디어가 늘어나면서 소통 채널이 확대된 것도 한몫했다. 고객과의 접점을 찾고 이를 강화하려는 차원이다. 일부 회사는 홈페이지에 사가를 올려놓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한다. 내용도 달라졌다.
애초 사가는 회사·직원을 위한 응원가이자 주제가답게 회사 철학이 응집돼 제작됐다. 전향적인 데다 스케일도 클 수밖에 없었다. 조직력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독특한 기업 문화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엔 노랫말과 멜로디가 대중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이폰 등에 넣어 혼자 가볍게 듣거나 흥얼거릴 정도로 친숙한 형태로 변신했다. 몇몇 사가는 ‘제이팝(J-Pop)’에 버금가는 높은 대중성을 자랑한다.
사가 특유의 딱딱하고 편협한 이미지 탈피에도 성공했다. 전체 직원이 직립 부동으로 질서 정연하게 부르는 공식 노래로 이해하면 오산이다. 길거리 장삼이사조차 흥얼거리는 쉽고 익숙한 멜로디로 입과 귀를 사로잡았다.
실제 유튜브 등엔 재미있는 사가에 클릭이 집중된다. 그중엔 비공식적으로 노출된 대기업 사가도 많다. JR규슈의 사가(‘浪漫鐵道’)가 인기 절정이다. 여행 이미지와 결부된 멜로디는 일반적인 사가를 뛰어넘어 회사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제작 방법은 다양해졌다. 과거 사가는 제작 원가가 비쌌다. 유명인에게 거액을 들여 만드는 게 보통이었다. 그 자체를 회사 브랜드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일류 회사라면 일류 전문가가 만드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다.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반면 요즘 사가는 직원이 직접 작사·작곡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 로열티를 높이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좋다고 봐서다. 일부는 대중 공모도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사가의 눈높이는 대거 낮아졌다. 개별 부서가나 음식점 개점 노래 등 틈새를 노린 작곡 의뢰도 늘어났다. 인기를 끌다 보니 재미난 사가만 모아 판매하는 앨범까지 출시됐다.
사가의 재조명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는 특이 현상으로 이해됐다. 불황 여파로 대부분의 사가가 여전히 서랍 신세를 면치 못할 때 일부 회사의 사가가 히트를 친 데 그쳤기 때문이다. 당시 사가로 재미를 본 회사는 종합 해체 사업의 ‘일본브레이크공업’이다.
2003년 우연히 알려진 사가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국 CD와 DVD로까지 판매됐다. 현장 사무소의 단가표 등을 넣은 CD에 사가를 추가한 게 계기였다. 만화 리듬의 멜로디가 입소문을 끌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해체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부심을 갖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이때부터 일부 기업이 사가에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2008년 사가는 재차 언론주목을 받았다. 2008년 마쓰시타에서 개명한 파나소닉이 사가를 만들어 화제를 낳았다. 초호화 작사·작곡자로 뉴스거리가 됐다. 다만 이때는 사내에 한정된 채 외부엔 노출되지 않았다.
경기 부진에 대지진까지 겹쳤던 2011년 사가는 본격적인 부활 무대에 올랐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소홀해진 연대감을 강화하고 ‘사연(社緣)’을 재구축하려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일례로 편의점 메이커인 ‘로손’은 2011년 5월 사가(‘Heart to Heart’)를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국내 1만 개 점포 달성을 계기로 단합 필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곳곳의 거리를 행복하게 하자”는 내용의 가사는 지금도 개별 점포에서 들을 수 있다. 효과는 좋다. 로열티가 낮은 아르바이트 직원조차 사가의 자연스러운 공유로 연대감이 높아졌고 고객과의 친밀성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식품 메이커 ‘깃코만’은 사가를 아예 마케팅 도구로 적극 활용 중이다. 식품 회사답게 ‘맛있는 기억’과 ‘맛있는 게 뭐야’라는 2곡의 사가를 내놨는데 반응이 뜨겁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얼마든지 듣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노래를 자유롭게 부르며 율동을 펼치는 콘테스트까지 실시했다. 지명도가 워낙 높아지자 이들 노래는 노래방에까지 진출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식·접대 때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직원·거래처 등과의 일체감이 확실히 높아져 만족스럽다”며 반긴다.
마케팅 도구로 활용도 늘어
스미토모생명은 사가를 경영 이념 확산 수단으로 활용했다. 최근 새로운 브랜드 전략에 착수하며 임직원에게 경영 이념, 추구 가치를 알릴 필요가 높아졌는데, 그 소통 수단으로 사가를 선택했다. 작년에 고객·업무·동료를 위한 메시지를 사내에서 공모했고 이를 가사로 채택했다. 그 결과가 ‘미래에 함께’라는 사가로 2012년 5월 공식 발표됐다. 발표회장은 뜨거웠다.
당시 상황을 회사는 “유명 가수가 부르고 직원이 코러스로 합창하자 발표회장은 박수와 함께 자연스레 일체감이 극대화됐다”고 표현했다. 이후 회사는 사가를 담은 CD·DVD를 개별 지점에 배포했다. 일부에선 조례 때 합창하며 그 효과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함께 부르며 변화 의지를 확인한 결과다. ‘미래’라는 제목에서 보험 특유의 고객 지향성까지 심화됐다는 평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여럿이 합쳐진 목소리는 그만큼 조화롭고 안정적이며 감동적이다. 아름다움과 짜릿함이 물밀듯 다가온다. 동질감과 유대감의 클라이맥스마저 느껴진다. 잘 부르든 잘못 부르든 합창이라 어울리는 법이다.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만큼 끈끈한 감정 공유도 없기에 합창은 곧 ‘우리’다.
사가(社歌) 재조명 한창
그래서일까. 요즘 일본에선 사가(社歌)가 인기다. 정확하겐 재조명이 한창이다. 사가는 1980년대까지 대부분 직장에서 직원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고도 성장기의 영향으로 사가 합창은 필수였다. 매일 아침 조례는 라디오 체조와 상사 지시가 있은 후 사가 합창으로 끝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 사가가 1990년대 복합 불황 이후 음지로 사라졌다. 있지만 불리지 않았고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입사식·창립일·연수 등 공식 행사에서 명맥만 유지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달라졌다. 사가를 새로 만들거나 내용을 고치려는 기업이 줄을 잇는다.
사가의 재평가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결속 강화가 핵심 목적이다. ‘사가(社歌)’란 책에선 이의 유행 시즌을 경기 흐름에서 찾는다. 그래서 호황·불황 정점일 때 사가 부활이 본격적이다. 한 발 나가기 위한 긍정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다.
결국 지금의 인기 비결은 불황 극복의 단합 차원이다. 그만큼 일본 기업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직장은 딱딱하고 어두워졌다. 경쟁 우선 탓에 인간미·동료애가 상실됐다.
답답한 직장 공기는 불통의 커뮤니케이션을 낳았다. 직원은 살맛을 잃었다. 이 와중에 일본 기업의 장점이던 집단 동력이 약화됐다. 사가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할 훌륭한 무기다. 집단 결속의 지름길로 이해된다.
이제 사가는 한층 진화 중이다. 내부의 결속 강화뿐만 아니라 밖으로의 메시지 발신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인터넷 등 다종의 신규 미디어가 늘어나면서 소통 채널이 확대된 것도 한몫했다. 고객과의 접점을 찾고 이를 강화하려는 차원이다. 일부 회사는 홈페이지에 사가를 올려놓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한다. 내용도 달라졌다.
애초 사가는 회사·직원을 위한 응원가이자 주제가답게 회사 철학이 응집돼 제작됐다. 전향적인 데다 스케일도 클 수밖에 없었다. 조직력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독특한 기업 문화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엔 노랫말과 멜로디가 대중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이폰 등에 넣어 혼자 가볍게 듣거나 흥얼거릴 정도로 친숙한 형태로 변신했다. 몇몇 사가는 ‘제이팝(J-Pop)’에 버금가는 높은 대중성을 자랑한다.
사가 특유의 딱딱하고 편협한 이미지 탈피에도 성공했다. 전체 직원이 직립 부동으로 질서 정연하게 부르는 공식 노래로 이해하면 오산이다. 길거리 장삼이사조차 흥얼거리는 쉽고 익숙한 멜로디로 입과 귀를 사로잡았다.
실제 유튜브 등엔 재미있는 사가에 클릭이 집중된다. 그중엔 비공식적으로 노출된 대기업 사가도 많다. JR규슈의 사가(‘浪漫鐵道’)가 인기 절정이다. 여행 이미지와 결부된 멜로디는 일반적인 사가를 뛰어넘어 회사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제작 방법은 다양해졌다. 과거 사가는 제작 원가가 비쌌다. 유명인에게 거액을 들여 만드는 게 보통이었다. 그 자체를 회사 브랜드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일류 회사라면 일류 전문가가 만드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다.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반면 요즘 사가는 직원이 직접 작사·작곡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 로열티를 높이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좋다고 봐서다. 일부는 대중 공모도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사가의 눈높이는 대거 낮아졌다. 개별 부서가나 음식점 개점 노래 등 틈새를 노린 작곡 의뢰도 늘어났다. 인기를 끌다 보니 재미난 사가만 모아 판매하는 앨범까지 출시됐다.
사가의 재조명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는 특이 현상으로 이해됐다. 불황 여파로 대부분의 사가가 여전히 서랍 신세를 면치 못할 때 일부 회사의 사가가 히트를 친 데 그쳤기 때문이다. 당시 사가로 재미를 본 회사는 종합 해체 사업의 ‘일본브레이크공업’이다.
2003년 우연히 알려진 사가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국 CD와 DVD로까지 판매됐다. 현장 사무소의 단가표 등을 넣은 CD에 사가를 추가한 게 계기였다. 만화 리듬의 멜로디가 입소문을 끌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해체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부심을 갖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이때부터 일부 기업이 사가에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2008년 사가는 재차 언론주목을 받았다. 2008년 마쓰시타에서 개명한 파나소닉이 사가를 만들어 화제를 낳았다. 초호화 작사·작곡자로 뉴스거리가 됐다. 다만 이때는 사내에 한정된 채 외부엔 노출되지 않았다.
경기 부진에 대지진까지 겹쳤던 2011년 사가는 본격적인 부활 무대에 올랐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소홀해진 연대감을 강화하고 ‘사연(社緣)’을 재구축하려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일례로 편의점 메이커인 ‘로손’은 2011년 5월 사가(‘Heart to Heart’)를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국내 1만 개 점포 달성을 계기로 단합 필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곳곳의 거리를 행복하게 하자”는 내용의 가사는 지금도 개별 점포에서 들을 수 있다. 효과는 좋다. 로열티가 낮은 아르바이트 직원조차 사가의 자연스러운 공유로 연대감이 높아졌고 고객과의 친밀성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식품 메이커 ‘깃코만’은 사가를 아예 마케팅 도구로 적극 활용 중이다. 식품 회사답게 ‘맛있는 기억’과 ‘맛있는 게 뭐야’라는 2곡의 사가를 내놨는데 반응이 뜨겁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얼마든지 듣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노래를 자유롭게 부르며 율동을 펼치는 콘테스트까지 실시했다. 지명도가 워낙 높아지자 이들 노래는 노래방에까지 진출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식·접대 때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직원·거래처 등과의 일체감이 확실히 높아져 만족스럽다”며 반긴다.
마케팅 도구로 활용도 늘어
스미토모생명은 사가를 경영 이념 확산 수단으로 활용했다. 최근 새로운 브랜드 전략에 착수하며 임직원에게 경영 이념, 추구 가치를 알릴 필요가 높아졌는데, 그 소통 수단으로 사가를 선택했다. 작년에 고객·업무·동료를 위한 메시지를 사내에서 공모했고 이를 가사로 채택했다. 그 결과가 ‘미래에 함께’라는 사가로 2012년 5월 공식 발표됐다. 발표회장은 뜨거웠다.
당시 상황을 회사는 “유명 가수가 부르고 직원이 코러스로 합창하자 발표회장은 박수와 함께 자연스레 일체감이 극대화됐다”고 표현했다. 이후 회사는 사가를 담은 CD·DVD를 개별 지점에 배포했다. 일부에선 조례 때 합창하며 그 효과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함께 부르며 변화 의지를 확인한 결과다. ‘미래’라는 제목에서 보험 특유의 고객 지향성까지 심화됐다는 평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