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로 본 한국의 외화보유액 "일본 압력 ‘ 끄떡없어’…국제 공조 필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독도 문제로 야기된 한일 간 마찰이 경제 분야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일본 정부는 통화 스와프 규모를 줄이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국내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의 이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 경제로서는 그 모두가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적 압력에 우리 경제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화보유액을 충분히 확보해 놓아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외화보유액은 교환성이 있고 시장성이 높은 자산으로서 국제수지 불균형 보전 등의 목적으로 통화 당국에 의해 즉시 사용 가능하고 통제되는 대외 자산’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자본자유화 진전과 이에 따른 외환위기 등의 영향으로 외환위기 방지 또는 해외 자본의 갑작스러운 유입 감소나 유출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다. 신흥국들의 정책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화보유액 확충이 가장 효과가 크게 나타난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YONHAP PHOTO-2440> 외환보유액 사상 첫 3천억달러 돌파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3천억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화폐정리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유로화, 파운드화 등의 강세로 이들 통화표시자산의 미국 달러화 환산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데다 보유 외환의 운용수익이 발생해 외화보유액이 증가해 4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3천72억달러로 집계됐다고 3일 밝혔다. 2011.5.3 jieunlee@yna.co.kr/2011-05-03 15:42:41/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그동안 국제 금융 기구와 학계에서 적정 외화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 지급 수요를 예상 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화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화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가지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화보유액 보유 동기에 따라 IMF 방식과 그린스펀·기도티 모형, 캅테인 모델 등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고 하더라도 적정 외화보유액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나고 우리도 적정 외화보유액 규모를 놓고 논란이 끝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신흥국들과 마찬가지로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도 각종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각 대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논란이 있지만 다른 신흥국들과 달리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외화보유액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쌓아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표 접근법에 따른 세 가지 기준별로 우리가 처해 있는 여건과 특수성 등을 감안해 그 적합성을 따져보면 ‘기준 1’은 갈수록 자본시장을 통한 자본거래의 영향이 증가되는 여건 하에서는 부적합해 보인다. 최근 들어 이뤄진 적정 외화보유액과 관련된 논의와 연구에서도 ‘기준 1’에 의해 외화보유액을 쌓으라고 주장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신흥국들의 적정 외화보유액 개념으로 많이 거론되는 ‘기준 2’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이 급증하고 국내 외환시장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의 대치라는 우리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 기준에 의한 적정 외화보유액도 부족해 보인다.



적정 외화보유액 3300억~3500억 달러

‘기준 3’은 가장 보수적인 입장으로 자본 이탈에 대응하는 가장 안전한 방안이나 불태환 개입 비용, 대체 투자 상실 비용 등 외화 보유에 따른 부담이 극대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제2선 자금인 인접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과 IMF 쿼터 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면 ‘기준 3’을 완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세 가지 지표 접근법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적정 외화보유액을 챙길 것인지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자본 유출입과 당시 국제 환경, 외채 구조 등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 이탈이 발생하면 다른 위기와 달리 피해가 큰 점을 감안하면 각국은 ‘기준 2’나 ‘기준 3’에 의해 적정 외화보유액을 평가하고 확충하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추정한 적정 외화보유액(기준 시점 2010년 6월 30일)을 보면 ‘기준 1’에 의해서는 1050억 달러, ‘기준 2’는 2993억 달러, ‘기준 3’으로는 3814억 달러로 나온다. 우리의 적정 외화보유액을 ‘기준 2’와 ‘기준 3’ 사이로 설정한다면 3300억~3400억 달러대로 추정된다.

독도 문제를 계기로 일본이 어떤 경제적인 제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 안정성을 지킬 만큼 외화보유액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외화보유액 확충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대외 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외국 자금 이탈(exodus)에 따른 위기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 경험국들이 겪는 고질적인 ‘낙인 효과(stigma effect)’ 때문이다.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외화보유액 등에 금이 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처럼 담보 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시스템 위기로 비화된다. 돈을 공급해 주는데 시스템상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위기 경험국들의 전형적인 경로다.

우리 경제 관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처럼 초기에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 현상으로 투기적인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렵고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각료들이 주장했던 ‘펀더멘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최근 독도 문제처럼 대외 여건이 조금만 불리하게 돌아가면 으레 고개를 드는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갈수록 지연되는 시스템 위기 극복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용어 설명●
불태환 개입 비용은…
외화보유 확충에 따라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기 위한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에 따른 제반 비용을 말한다.

제2선 자금은…
각국이 보유한 실제 외화보유액 제1선 자금(first facility)에 대비한 자금을 제2선 자금(second facility) 이라고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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