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한류 3.0 시대 열까 "면세점 판매 ‘ 쑥쑥’…중국·일본 진출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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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촉발된 ‘한류’가 케이팝을 통해 ‘한류 2.0’ 시대로 바통을 이어받은 이후 최근 ‘새로운 한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식·뮤지컬·전통문화 등이 한류 3.0 시대의 콘텐츠로 떠오르는 가운데 ‘화장품’의 상승세가 주목된다. 관광객 1000만 시대를 맞아 몰려오는 외국인들에게 화장품이 필수 구매 목록으로 꼽히고 있고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일본 등에서의 현지 유통도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은 포화 상태인 한국 시장을 넘어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해 신규 매출 창구의 교두보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면세점이 올해 상반기 최대 매출을 올렸다.30일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7.30

롯데 면세점 국산 화장품 매출 65% 증가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서 국내 화장품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환잉(환영합니다).” “아리가토(감사합니다).” 명동 거리 브랜드숍 등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 소리는 점차 백화점과 면세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관광객 덕에 면세점은 역대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소공점에서만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늘었다. 신라면세점도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대비 131% 증가했다.

아이돌 한류 스타 모델을 등에 업은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인기가 돋보인다. 롯데면세점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매출을 분석한 결과 수입 화장품 브랜드가 15% 증가한 데 비해 국내 브랜드 매출은 65%나 늘었다. 한 화장품 바이어는 “화장품 매장 방문이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며 “이전엔 일본인들이 한국에 오면 ‘김’을 사갔듯이 이제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화장품 선호 현상은 매장 면적의 변화에도 반영됐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6월 국산 화장품 편집매장인 ‘BB크림존’을 기존에 비해 4배 규모로 확대했고 잠실점에 국내 화장품 전용 매장을 오픈했다. 코엑스점에는 국산 화장품과 의류 등을 모은 ‘한류 명품관’을 열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에서 전용면적은 중요한 이슈로, 그만큼 국내 화장품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한 매장은 매출의 90%가 중국인 고객에게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통 큰’ 중국인 덕에 아모레퍼시픽의 고급 브랜드 ‘설화수’는 프리미엄 라인인 진설라인 세트(면세점가 886달러, 백화점가 116만 원)를 3~5세트까지 판매하기도 한다.
면세점들이 올해 상반기 최대 매출을 올렸다.30일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7.30

해외 면세점에서도 국내 화장품 강세가 주목된다.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면세 시장에서 2009년 18억 원, 2010년 47억 원, 2011년 98억 원의 매출을 올려 연평균 133%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3대 허브 공항인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에서는 월평균 13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중국 싼야 시내 면세점과 일본 간사이공항 면세점에 설화수와 라네즈 브랜드가 공식 입점하기도 했다. 현재 설화수는 일본 공항 주요 면세점인 나리타와 하네다 공항에도 입점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국제 면세사업부가 몇 년 사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뷰티 한류’의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록시땅그룹은 지난 7월 한국 한방 화장품 회사 심비오즈를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화장품 강국인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가 한국의 중소기업을 인수한 것은 그만큼 달라진 한국 화장품의 위상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상승세가 돋보이며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더페이스샵은 2011년 해외 매출액이 350억 원으로 2010년 270억 원에 비해 약 30% 늘었다. 미샤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도 일본·홍콩·대만 등 해외시장에 1000여 개의 매장을 내고 있다.




중국·일본 시장 전략적으로 공략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던 것은 2005년 무렵이지만 당시 시장 공략은 쉽지 않았고 적자를 면치 못한 곳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최근 한류 열풍과 현지화 전략 등에 힘입어 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화영 리딩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 매출이 매년 30~40%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해외시장 공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까닭은 한류의 영향으로 국내 브랜드 이미지가 개선된 점도 있지만 현지인의 성향을 고려한 타깃 마케팅이 주효했다. 국내 화장품의 기술력은 아직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이지만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비크림이나 진동 파운데이션 등은 모두 한국의 히트 상품이다. 또한 달팽이 크림, 뱀독 크림과 같이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성분을 활용해 상품을 개발한 것도 ‘뷰티 한류’의 요인으로 꼽힌다.

또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한 점도 있다. 국내시장의 화장품이 이미 성숙 시장에 들어선 가운데 해외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찾으려는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다소 미진했던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 LG생활건강은 더페이스샵 확장에 공을 들이면서 일본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 초 일본 통신판매 업체 긴자 스테파니를 인수했다. 국내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화장품 사업을 키운 것을 고려할 때 일본 진출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은 에뛰드하우스 브랜드가 올 초 일본 도쿄 신주쿠에 일본 1호점을 오픈하고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에는 마몽드와 라네즈의 매장 확대와 함께 4월에는 이니스프리를 새롭게 론칭했다. LG생활건강이 유통 대리상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는 전략을 삼은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현지 직접 진출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을 내려는 전략이다.

국내 브랜드가 아시아권과 넓게는 유럽 시장까지 진출해 있지만 본격적으로 매출이 느는 대표적인 곳은 중국과 일본 시장인데, 이는 성장하고 있는 현지 시장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연 11%씩 고성장하고 있다. 화장품 시장 내 유통 채널도 다변화해 기존 백화점에서 최근 들어 대형 마트, 화장품 전문점, 드러그 스토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다양한 유통 경로로 중국 시장에 침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고가 위주의 시장을 글로벌 화장품 기업이 장악한 것과 달리 중저가 시장은 경쟁을 시도해 볼만하다.

일본은 화장품 시장 규모나 역사 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지만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며 합리적인 가격대와 제품력을 모두 갖춘 국내 화장품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중저가 브랜드가 각기 다른 이유로 중국과 일본 시장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화장품 업체의 본격적인 해외 성장이 이제 시작되고 있어 향후 더 많은 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과도한 기대감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양지혜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 분명하지만 속도가 기대하는 것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을 우려했다. 또한 아직 수출입 통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지적된다.

코스앤프의 고인호 대표는 “정식 수출입 문제를 해결하고 진입하는 제품들은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많은 국내 업체들이 수출입 관련 문제와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착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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